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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편지>
▲ 표지 <세계사 편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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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가 한창 달아오를 무렵, 직장 동료들과 점수 맞추기 내기를 했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우루과이 등 한국 경기가 열릴 때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그리스와의 첫 경기 점수를 맞춘 동료가 있어 진 사람들이 만 원씩 내서 점심을 먹었다.

두 번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그리스 전 점수를 맞춘 동료 둘이서 바람을 잡아 다시 내기가 시작됐다. 객관적 전력으로는 이기기 힘든 경기였음에도 그리스를 이긴 기세를 몰아 아르헨티나를 꺾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점차 승리에 걸거나, 최소한 동점이라도 만들어야 16강 진출에 유리하다며 무승부에 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 동료가 한 점차 패배에 걸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지는 데 걸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걸어 내기 이기면 기분 좋겠느냐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지만 그 동료는 한 점차 패배를 고수했다. 다행히 세 점차로 패해 내기에 이기고 눈총 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국민 그만두라 하지 않을까 걱정

'우리'라는 주어가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자주 등장하다 보니, 이런 서술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우리'로 묶이는 국가와 민족이 항상 존재해왔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니?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늘 존재해온 실제라고 느껴지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겠지.(책 속에서)

<세계사 편지>의 저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란 말이 널리 애용되고 있다. 문근영, 김연아를 '국민 여동생'이라 불렀다. 국민들 모두가 좋아할 만큼 인기가 많다는 뜻이겠지만, 행여 이들에게 호감을 갖지 못하면 국민 그만두라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국민이란 테두리를 벗어나면 두려움을 느껴야 했던 때도 있었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우며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황국신민에서는 벗어났지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국정 역사 교과서로 배우고 외워 시험을 봤다.

사물의 이치를 따지고 비판정신을 길러주는 역사 교육의 필요성

사실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각하나 김 장군이나 식민지 시기 일본의 국가 숭배 제의나 지도자 숭배, 국체 이데올로기 등 제국적 국민 통합정책을 각각 남북한의 국가적 목적에 맞게 전유한 것은 부정할 수 없잖아요. 단지 의례의 주체가 황국 신민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나 공화국 인민으로, 또 충성의 대상이 일본 천황과 제국에서 각하와 김 장군, 그리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바뀌었을 뿐이죠.(책 속에서)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해방 후 남과 북에서 진행된 정치 상황은 '황국 신민화'의 또 다른 변종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통해 국가가 요구하는 규범과 기준이 주입되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역사 교과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외워야하는 도그마의 텍스트로 존재했다. 그래서 저자는 주장한다. '만들어진 역사'나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리라고. 사물의 이치를 따지고 비판정신을 길러주는 역사 교육을 위해서.

열아홉 역사 인물에게 보낸 편지

저자가 불러낸 역사 인물은 모두 열아홉 명이다.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에 대한 예우를 위해 불러낸 게 아니라 그들이 남긴 자취를 토대로 날카롭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주체사상을 창조했다는 김일성에게 "역사의 주체는 당신인가, 민중인가?"를 따져 묻고, 한강의 기적을 가져온 경제 대통령 박정희에게 "한강의 기적이란 대중의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한 독재 체제의 강화가 아닌가?"고 몰아세운다.

노동자를 위한다던 사회주의가 어떻게 노동자를 사회주의 국가 유지를 위한 톱니바퀴로 이용하려 했는지 비판하고, 이스라엘 국가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신화가 되어 70년대 한국에 상륙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저자의 비판은 열아홉 인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수의 평범한 대중이 어떻게 학살의 주체로 변해가는지 보여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헌신적 추종자들의 대부분은 악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이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 과목을 단 1학점도 듣지 않고 교양과정을 마친 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너와 상관도 없는 먼 과거를 파헤치기보다는 우선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 공식적 역사를 부정하고 밑으로부터 살아 있는 역사를 갈구했던 맨발의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주장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역사 공부' 하지 말거라. (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임지현/휴머니스트/2010.6/17,000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 역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임지현 지음, 휴머니스트(2010)


태그:#세계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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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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