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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바닷길

청산도 도청항으로 접근하는 여객선
 청산도 도청항으로 접근하는 여객선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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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는 완도 동남쪽에 있다. 배가 출발하자 나는 다시 객실로 들어온다. 객실 안에는 청산도 사람과 외지 관광객이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들의 목소리에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곳이 전라도 지역인지라 전라도 사투리가 진하게 느껴진다. 완도읍에 나갔다 청산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특히 크다.

배가 청산도에 가까이 가면서 전복 양식장이 눈에 띈다. 바다에 줄을 매고 다시마를 기른 다음, 그 다시마를 먹이로 하여 전복을 키운다는 것이다. 특히 지리 해수욕장 앞으로 양식장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배는 지리 앞으로 해서 도청항으로 접근한다. 도청항 밖으로 방파제를 쌓고 그 끝에 등대를 만들어 놓았다.

청산도 투어버스
 청산도 투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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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등대 사이로 물길이 있어 배가 그곳을 통과한다. 저 멀리 도청리에서 당리로 이어지는 언덕길이 보인다. 배가 도청항에 접근하자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1층으로 내려가 사람과 차가 뒤섞여 있다. 우리는 짐도 있고 해서 천천히 내린다. 배에서 내리니 청산도라는 표지석이 우릴 맞는다. 정말 슬로시티 청산도에 온 것이다.

아내와 나는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다. 그리고는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선다. 가다 보니 투어버스가 보인다. 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내일 오전 9시 출발하는 투어를 예약한다. 예약자들이 많아 대기예약이라고 하면서 내일 아침 다시 한 번 연락을 해주겠다고 한다. 조금 걱정이다. 만약 투어버스를 탈 수 없다면 택시를 대절해 다닐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도청리에서 당리로 이어진 슬로길

슬로길에서 내려다 본 도락리 해안
 슬로길에서 내려다 본 도락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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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나자 도청리 중심가를 벗어나면서 '느림의 종'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슬로길이 시작되고 길은 오르막이다. 오른쪽으로는 해안선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산줄기가 이어진다. 해안 쪽으로는 도락리 마을이 있고, 산 쪽으로 올라가면 당리 마을이 있다. 오늘의 목표지점은 당리이다.

당리는 당이 있던 동네로 과거 신성시되던 장소였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의 출입에 적었던 곳이다. 그런데 영화와 드라마 세트장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동네가 되었다. 당리로 가는 길 주변 밭에는 보리와 마늘이 한창이다. 사실 논이 많지 않은 청산도에서 주된 작물은 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서편제' 세트장과 '봄의 왈츠' 세트장
 '서편제' 세트장과 '봄의 왈츠'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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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길을 따라 이삼십 분 가니 고개 마루에 이른다. 고개마루에 당리가 있고, 이곳을 내려가면 읍리가 있다. 과거에는 읍리가 청산도의 중심마을이었는데 지금은 교통으로 인해 도청리가 중심마을이 되었다. 당리에는 영화 <서편제> 세트장과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있다. 멀리서 보니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인상적이다. 빨간 지붕의 2층 양옥집이다.

가까이서 보니 '서편제' 촬영장은 경제적이다

경제적으로 활용되는 '서편제' 세트장
 경제적으로 활용되는 '서편제'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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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 주변에는 소나무밭이 조성되어 있고, 작은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비탈면 아래 밭에는 초분도 보인다. 초분이라고 하면 풀로 덮은 임시 무덤이라는 뜻으로 과거 해안지역에서 유행하던 장례문화의 유산이다. 아내와 나는 소나무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옆에 있는 <서편제> 세트장으로 간다.

세트장이라고 해야 초가집 서너 채가 전부다.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그런데 초가의 한쪽 편에서 이 동네 아주머니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와 함께 내는 것이다. 그 외에 음료수도 팔고 있다. 시장한 김에 우리는 부침개를 시켜 먹는다. 도시에서 먹던 빈대떡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소박한 맛이 괜찮은 편이다.

그동안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청산도가 슬로시티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고, 그로 인해 이 동네 노인들에게도 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1박2일 청산도에 묵으며 느낀 것이지만 청산도는 과거보다 경제에 눈을 떠가는 모습이다. 사실 사람 사는 일이 먹고사는 일일진대, 돈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화려한 외관의 <봄의 왈츠> 세트장

'봄의 왈츠'의 무대가 된 청산도 세트
 '봄의 왈츠'의 무대가 된 청산도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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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세트장에서 <봄의 왈츠> 세트장으로 가는 길은 돌담으로 이어져 있다. 세트장에 이르니 건물 밖으로 출연진의 사진을 붙인 판넬이 세워져 있다. 그 중 한효주의 얼굴은 알아볼 수가 있다. 아내의 얘기가 이 드라마가 당시 꽤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효주가 그때 떠서 현재 <동이>라는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까지 하는 모양이다.

<봄의 왈츠> 세트장은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실내장식이 옛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층에 주방과 거실이 있고, 2층에는 침실이 있다. 거실 소파의 쿠션은 봄의 소리를 닮은 듯 녹색과 파랑 분홍색이다. 2층으로 알라가니 창문을 통한 조망이 참 좋다. 동쪽으로는 범바위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돌담길과 당리 마을이 보인다.

'봄의 왈츠' 세트 2층 창문을 통해 본 청산도
 '봄의 왈츠' 세트 2층 창문을 통해 본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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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다락방이 있다. 이곳에는 진분홍에 흰 줄무늬가 있는 침대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도락리 풍경은 정말 시원하고 환상적이다. 맑은 날 낙조를 보면 더 절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세트장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내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가 없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더 이상 내부로 들어갈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이제 오던 길을 되돌아 도청리로 돌아가야 한다. 가는 길은 내리막이어서 올라올 때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주위에 새로 쌓는 성곽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얼굴도 보고, 자연도 즐기며 정말 천천히 걷는다. 슬로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시장에서 만난 청산도 풍경

도청항 어시장
 도청항 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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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로 돌아온 우리는 어시장을 찾는다. 해산물 구경도 하고 적당한 놈을 선택해 회도 먹을 생각으로. 플라스틱 함지박에는 전복, 해삼, 조개, 멍게, 광어, 도다리 등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원하는 것을 사면 회를 뜨거나 손질을 해서 뒤에 있는 식당에 가서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산물 값과 식당에서의 세팅비를 합하면 1인당 이삼만 원 정도면 회와 매운탕을 먹을 수 있다.

저물어 가는 청산도
 저물어 가는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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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그 정도는 써야할 것 같아 흔쾌히 광어회를 떠달라고 한다. 그러자 조개와 멍게를 몇 개 덤으로 준다. 이게 바로 현장에서 얻는 즐거움이다. 해산물을 파는 것은 아주머니고 회를 뜨는 것은 남편이다. 그리고 나서 옆에 있던 딸이 회와 매운탕 거리를 잘 정리해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다. 그러고 보니 어시장의 한쪽을 차지하는 이 가게가 한 가족의 삶의 터전인 셈이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포구를 산책한다. 이제 도청항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배도 없고, 비교적 조용하다. 가게의 간판에서 나오는 불빛이 포구의 저녁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어제만 해도 산속에서 잠을 잤는데, 오늘은 대조적으로 바다가 보이는 물가에서 잠을 자게 된다. 이처럼 변화무쌍하고 빠른 삶이 좋은 건지, 아니면 청산도가 추구하는 느린 삶이 좋은 건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태그:#청산도 , #도청항, #당리, #서편제, #봄의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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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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