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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도 아이들의 학원 순례는 계속된다. 어느 아이들은 학원 순례도 모자라 해외연수까지 떠난다. 천안의 면지역인 한 산촌 마을에서 낳고 자란 김미선양(11. 가명). 변변한 학원도 드문 동네에서 방학 때면 매일 지역아동센터를 찾는다.

15분쯤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한다. 지난 주에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캠프도 다녀왔다. 지역을 벗어난 캠프로는 미선양에게 이번 여름방학기간 유일한 캠프였다.

미선이는 작년 봄 지역아동센터와 처음 만났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속히 기울며 낮에는 집에 할머니만 남았다. 칠십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가 혼자서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를 돌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인근 마을에 지역아동센터가 있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학기 중에는 수업이 끝나면 지역아동센터로 향한다. 센터 교사들의 지도 속에 숙제를 하고 프로그램 참여 뒤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문화와 학습, 정서 등 다양한 프로그램 가운데 미선양은 지난해부터 가야금 강습에 푹 빠져 있다. 한 번도 학원에 다녀 본 적 없는 미선이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처음 가야금을 배웠다.

새 친구도 여러 명 생겼다. 수줍음이 많아 먼저 말 건네기를 주저했던 성격은 지역아동센터를 다니며 활달한 편으로 바뀌었다. 지역아동센터가 제2의 학교, 제2의 가정이 된 셈. 지역아동센터 없는 생활, 미선양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말했다.

저소득 아이들의 '돌봄터', 지역아동센터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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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 빈곤 아동들의 든든한 돌봄터인 지역아동센터가 지역사회에 등장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가장 어두울 때, 빛이 생성되듯 지역아동센터도 아이들의 건강한 삶이 가장 위협받을 무렵 태동했다.

1998년 IMF 경제위기 여파로 가정해체가 이어지며 결식아동 문제가 사회 이슈로 전면에 부상했다. 당시 천안은 종합사회복지관 2개소를 빼고는 딱히 결식아동들에게 따뜻한 밥을 비롯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나 기관이 부재했다. 학기 중에는 그나마 학교가 돌봄 역할을 수행했다. 방학 때면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였다.

비슷한 시기 천안에서 결성된 시민단체인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이 겨울방학 중 결식문제가 심각한 지역 두 곳을 선택해 파랑새겨울학교를 진행했다. 98년부터 99년까지 3회에 걸쳐 운영된 파랑새방학교실은 오늘날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이 됐다.

2000년 들어 방학뿐만 아니라 학기중에도 상시적으로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지지해 주는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공부방이나 방과후교실 형태로 2000년 한해 동안만 6개소가 출발했다. 명칭은 몇해 뒤 이름은 지역아동센터로 바뀌었다. 이들 센터를 주축으로 2006년에는 천안지역아동센터연합회가 창립했다.

지난 7월말 현재 천안의 지역아동센터는 47개소. 3백 여명의 저소득 빈곤가정 아동들이 오늘도 지역아동센터에서 급식을 제공받고 보호와 교육, 문화와 복지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아동 대학 진학률 30% 

지역아동센터 1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역아동센터 1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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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지역아동센터연합회는 지역아동센터 10주년을 맞아 2000년 지역아동센터 역사를 개막한 센터 6개소를 포함해 현재 운영되고 있는 38개소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는 지역아동센터 10년의 명암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창립 10년이 경과한 지역아동센터 6개소의 이용아동 예후가 그렇다. 광덕푸른, 낮은울타리, 서로사랑, 중앙파랑새, 열린문화교실, 햇살가득파랑새 등 6개소 지역아동센터를 원년부터 이용한 아동 가운데 35명의 현재가 확인됐다.

확인 결과 지역아동센터 이용 당시 이들 아동의 경제적 상황은 국민기초수급권자 25명, 차상위 2명, 저소득 4명, 일반 4명이었다. 현재 상황은 국민기초수급권자 9명, 차상위 5명, 저소득 15명, 일반 5명, 기타 1명의 분포를 보였다. 10년 전과 비교해 법정 저소득층인 국민기초 수급권자 아동은 25명에서 9명으로 줄었다.

경제적 상황이 좋아진 걸까. 아니다. 아동과 청소년 나이가 근로가능 연령이 되면서 국민기초 수급권자 선정에서 탈락됐을 뿐 경제적 상황은 저소득 가정으로 옮겨져 가난의 굴레는 여전했다.

지역아동센터를 졸업한 35명의 현재 상황은 고졸 이후 취업이 26%로 가장 많았다. 9명은 현재 군복무 중이거나 고등학교 자퇴 또는 중퇴 후 취업 등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학 진학자는 11명으로 30%에 불과했다. 80%를 넘는 우리나라 평균 대학 진학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이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해석됐다.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임금 낮고 이직 잦아

35개소 지역아동센터의 실태조사 결과 종사자들 근무 여건은 10년 역사가 무색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2003년까지 지역아동센터 1개소당 평균 인력은 1.6명으로 '나홀로' 센터가 대부분이었다. 2004년부터는 센터당 2명씩 배치됐다. 센터당 평균 이용 아동이 20~30명 것을 감안하면 행정과 교육, 보육, 가정지원 등 실무자 한 사람이 맡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38개소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평일 하루 근무 시간은 18개소가 8시간이라고 응답했다. 13개소는 8~10시간이라고 밝혔다. 10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센터도 7개소나 있었다.

격무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은 그에 걸맞은 급여를 받고 있을까. 아니었다. 1개소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종사자들이 무급으로 근무했다. 급여를 지급한 5개소도 연봉이 500~700만 원. 2006년 이후에는 50%의 센터가 연봉 1000~1500만 원을 지급했다.

낮은 임금에 많은 업무는 종사자들의 잦은 이직을 낳았다. 38개 지역아동센터 시설장과 생활복지사를 포함한 종사자의 근무기간을 살펴본 결과 1년~3년 미만 63명, 3년~5년 21명, 5년 이상 7명으로 나타났다.

공계순 호서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역아동센터 실무자는 센터의 전반적인 운영과 서비스 제공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로 실무자의 전문성과 직무만족은 아동들 복지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장시간 근무를 막을 수 있는 인력 지원과 급여수준을 높일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아동센터 지역간 불균형 해소 시급
천안지역 지역아동센터 10주년 기념 토론회 열려
지역아동센터 10년 성과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토론의 장이 개최됐다.

지난 29일 천안교육청 5층 대강당에서는 천안시의회와 천안지역아동센터연합회, 미래를 여는 아이들 공동주최로 '천안지역 지역아동센터 10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주제는 '빈곤아동의 삶을 지원하는 천안지역 지역아동센터의 10년 그 역할과 과제.'

주제발표에서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는 적정한 지원체계 마련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역아동센터의 국가책임이 재정지원의 확대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며 "현재는 불충분한 정부의 재정지원 하에 민간이 나머지를 보충하는 형태로 양질의 전문 인력 유출, 아동보호의 질 저하 등의 악순환을 낳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토론자인 김소현 미래를 여는 아이들 사무국장은 지역아동센터 분포의 지역간 불균형 해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현재 지역아동센터 47개소 대부분이 천안시내에 편중되어 있거나 요보호 아동이 많은 지역에는 지역아동센터가 거의 없어 지역별로 고른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지역아동센터 설치신고시 지자체에서 지역 안배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부족한 지역은 지역아동센터가 설치될 수 있도록 권고.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토론자인 전종한 천안시의회 의원은 "빈곤아동의 대학 입학률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며 "빈곤의 대물림 현상 단절 및 기회제공을 위해 장학제도 및 대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빈곤, 소외, 사각지대 아동의 생활실태와 욕구조사를 지역차원에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84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역아동센터, #천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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