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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뎬무'의 영향으로 적지 않은 비가 내렸다는 낙동강에 4대강사업으로 일자리를 잃고 500일 넘게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골재원노조 소속 노동자 4명이 지난 12일 모터보트를 타고 낙동강에서 수상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의 보트에 동승해 그 현장을 취재했고, 그 첫 번째 이야기 "뎬무가 훑고 지나간 낙동강, 모터보트로 돌아보니"에 이어 그 후속 이야기를 실어봅니다. - 기자 말

 

 

보트는 강물을 가르면서 유유히 나아간다. 준설선과 모래산은 지겹도록 반복되고, 비슷하게 망가진 강변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강물 위를 보트는 시속 70km로 달리니 우리가 달리고 있는 그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나타나는 교량과 강변에 들어선 정자, 지천들이 그곳이 대략 어디쯤인 알려주기도 한다.

 

확실히 물 밖에서 보는 풍경과 물 안에서 보는 풍경은 달랐다. 마치 강이 되어 흘러가면서 인간세상을 조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아일체인가? 보트의 속도가 더 느렸다면 분명 강이 되어 흘러갔을 것이다.

 

민중미술을 하시는 천광호 선생이 매주 토요일 문화해설사 봉사를 하고 있다는 서원 건축의 백미 도동서원을 지난 보트는 지율 스님이 또한 그렇게 사랑한 '이노정'을 지난다. 이어서 보트는 올 여름 살아있는 강의 원형을 찾아 숱하게 드나들었던 '회천', 살아 흐르는 강을 만나러 지나다녔던 우곡교를 지나고, 이어 재첩이 아직 '싱싱하게' 살고 있는 그 회천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장면도 보여주며 나아간다.


물길과 물길이 만나는 곳은 어김없이 습지가 형성이 된다. 또 그곳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 서늘한 기운이 올라와, 우리는 그곳에서 더 큰 존재에 대한 어떤 경외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저 깊은 강의 근원을 찾아 잠시 상념에 빠져들게 하는 이런 감정들도 자주 나타나는 준설선과 길게 이어진 철제관로, '삽질의 잔해'들로 인해 금세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곤 누군가가 말했듯 마치 월남전의 그 메콩강 같다는 그 황톳빛 강물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 진한 황톳빛을 따라 보트는 나아가고 저 앞으로 합천댐이 서서히 보인다. 그러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조금 전 달성댐을 바로 눈앞에서 만나면서 그 대단한 위용에 놀란 나는, 저 멀리 합천댐이 강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 보이자 이내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을까? 우리는 쌓아둔 준설토가 강물 위로 불쑥 솟아올라 작은 섬이 된 곳에 잠시 배를 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 멀리 합천댐을 응시하면서 서 본다. 그랬다. 그것은 합천보가 아니라, 분명 합천댐이었다. 그리고 그 합천댐 공사현장은 전부 물에 잠겼고, 댐 기둥들만이 물 위에 우뚝 서 있다.

 

 

일행은 준비해간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그들은 합천댐을 뒤로 하고 서서 자신들의 주장이 그대로 담겨 있는 현수막을 펼쳐들고는 힘찬 팔뚝질을 해본다. "생존권 대책 없는 4대강 정비사업, 골재노동자 다 죽인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힘차게 결의를 다진 일행은 다시 보트를 타고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는 합천댐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이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터보트 서너 대가 우리 보트를 에워싼다. 그 보트에 탄 이들 중 하나가 메가폰을 들고서 이쪽을 향해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린다. 싸이렌 소리를 틀어 대략 무시하고 댐의 기둥으로 점점 다가가 본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그 규모에 압도된다. 높이가 족히 30~40여m는 넘어 보이는 기둥이 강물 위로 불쑥 솟아있고, 그 위를 공사현장 관계자들이 점거하고 있다.

 

그리고 합천댐 기둥에도 '삽질'의 잔해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벌목한 나뭇가지와 공사장의 스티로폼, 피브이씨 등등이 얽히고 설켜 있다. 오탁방지막은 한쪽이 끊어진 채 너덜너덜 춤을 추고 있고, 그것 자체가 쓰레기가 되어 둥둥 떠 있다.

 

 

 

괜한 충돌이나 입씨름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공사현장 관계자들을 적당히 무시하고 또다시 만장을 꺼내들고 '선상 퍼포먼스'를 벌인다. 귓구멍을 열고 제발 국민의 소리를 좀 들어라 MB여. 평생일터를 하루아침에 잃고 쫓겨난 이들의 막막한 심정이 어떨지 당신은 짐작이나 하는가? 이들이 오죽했으면 이런 시위까지 벌이게 될까?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골재업자는 또 얼마나 막막했으면 자신의 목숨까지 스스로 끊는 무시무시한 일을 벌였을까? 4대강 삽질은 이렇게 있는 일자리마저 앗아가고, 악에 바친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함께 동승한 골재노조 남상윤 사무국장은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오늘 사실 우리는 강정보나 함안보나 접근이 가능한 곳은 어디라도 올라가려 했다. 올라가서 그 위에서 농성이라도 하려 했다. 그동안 우리는 5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투쟁했다. 삼보일배 3번에, 지난달부터는 아예 거리로 나와서 한달 가까운 노숙농성을 하면서 우리들의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 MB정권에 너무 지쳤다. 그래서 4대강 사업의 상징인 보에 올라가서 농성을 벌이며 국토부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은 아름답다

 

그렇게 합천댐에서의 '선상 퍼포먼스'를 마치고, 보트는 다시 속력을 높였다. 황강 합수부를 지나고, 적포교도 지나고 보트는 물길을 가르고 빠르게 나아간다. 강물을 시원하게 가르면서 나타나는 풍경은 한편으론 안타까운 모습이나, 산세를 낀 강변은 여러 절경을 선보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강이냐"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 억겁의 세월을 지나온 물길이 만들어놓은 풍경이니 오죽할까. 절벽을 이룬 산이 강물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한편의 동양화를 이룬다.

 

길곡면의 낙동강 모래사장이 해마다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사진을 얼마 전 박창근 교수의 사진자료를 통해 볼 수 있었다. 태풍으로 인해 큰물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모양이 바뀌게 되는 모래톱이 자연스레 연출하는 풍경은 강이란 것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렇다. 강변에 자리 잡은 이 모든 것들이 낙동강의 한 부분인 것이고, 이들과 함께 낙동강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내쳐달려온 보트는 청아지, 영아지 마을에 다다르고 낙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라는 '개비리길'을 지난다. 그 개비리길에 서서 낙동강을 보았을 뿐, 강물 안에서 그 길을 조망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개비리길이 하나의 풍경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강을 낀 야트막한 산길인 이 개비리길을 걷는 호젓함을 맛본 이들은 꼭 다시 찾게 된다는 그 길을 이번에는 강이 되어 구경해 본다. 그 '개비리길'을 걷고 있는 나를 찾아보면서. 그러나 그 길을 옆에 끼고 보트는 나아간다. 저 멀리 미루나무 두 그루 선 길가의 풍광이 어린시절의 그 길을 보는 듯해서 너무 반갑고 아름답다.

 

개비리길을 지나자 이어 큰 물줄기가 합수한다. 바로 진주에서 흘러오는 남강이다. 이 큰 두 강의 합수부는 또한 대규모 습지를 만들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물길은 더 넓어지고 황톳빛 강물은 더 풍부해진 낙동강을 달리며 남지철교로 보트를 몰아간다. 남지읍을 관통하면서 흘러가는 낙동강은 남지대교를 지나면서 훌쩍 넓어진다. 저 멀리 곽제우 장군을 기린 망우정이 보이고, 그 아래 남지습지가 또한 넓게 펼쳐져 있다. 

 

함안보 타워크레인을 다시 점거한 이들은?

 

 

보트는 다시 낙동대교를 지나 저 멀리 함안보로 쭉 내려간다. 그런데 함안보 공사현장은 온데 간데 없고, 20일 동안 이환문과 최수영 두 활동가가 고공농성을 했던 그 타워크레인만이 우뚝 솟아있다. 그동안 숱하게 봐서 이제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타워크레인이 반갑게 여겨진다.

 

그런데 어라 저 사람들은 뉘신고? 수장된 함안보를 홀로 지키고 선 타워크레인을 다시 점거하고 있는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작은 보트를 매어단 채 크레인에 올라 있다. 그랬다. 골재노조원들이 뿔이 나서 지금 저 대구에서부터 이곳으로 보트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곳 경찰들과 GS건설 관계자들이 이들을 맞을 채비를 해둔 것이렸다.

 

20일 동안 촛불문화제를 열였던 그 함안보 전망대엔 경찰들이 쭉 도열한 채 수상시위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고, 강물 위에선 새로운 모터보트 다섯 대 정도가 우리 보트가 움직이는 쪽으로 달려들면서 영접(?)을 한다. 일찍이 이런 환영식이 또 있었던가? 그러나 115마력 최강 엔진을 단 골재노조 보트의 속력을 따라올 자는 없었다. 그래서 저들은 타워크레인 주위를 맴돌면서 그곳에 다시 올라가 점거농성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하는 것이렸다.

 

"그래 더러워서 안 올라간다, 안 올라가"하면서 골재노조원들은 뱃머리를 돌려 이들의 수상시위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자들과 버스로 온 골재노조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준비한 '선상 퍼포먼스'를 다시 시작했다. 만장과 현수막을 펼쳐 드는데, 좁은 보트 안에서 현수막이 채 펴지질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현수막을 강물 위에 띄워 펼치고는 보트로 움직이는 수상시위를 펼친다.

 

그랬다. 이들은 남상윤 사무국장의 이야기대로 '태풍 뎬무' 때문에 20일간의 농성을 접고 내려온 두 활동가를 대신해서 다시 함안보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갈 작정이었다. 올라가서 끝장을 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환경문제라는 가치 차원의 접근 보다는 우선 당장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4대강사업을 바라보기에 더욱 간절하고, 명분 또한 분명하기에 그들은 수장된 함안보에 보트를 대고 크레인 위로 올라가 릴레이 농성을 이어가려 했던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답답한 심정이면 태풍이 온 다음날 다시 크레인 위로 올라가려 했던 것일까?

 

실제로 남상윤 사무국장의 배낭엔 생수를 포함한 며칠간의 먹을거리가 챙겨져 있었다. 이들은 모르긴 몰라도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이날 보트에 오른 것이리라. 그래서 이들은 미련을 못 버리고 공사업체 측에 이미 '점거된' 크레인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던 것일 터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이들과의 소통도 거부하고 있으니, 다른 국민들은 안중에 있을까? 그러고도 그들이 국민을 섬긴다는 입 발린 소리를 할 수 있는 배짱에 박수를 칠 따름이다. 그렇다.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고, 급기야 국민의 편을 갈라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이 오만불통의 사악한 정권이 바로 이명박 정권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은 없다. 국민을 극단으로 몰아넣는 정권은 결코 존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이날 4명의 골재노조원들이 보여준 결의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들도 이제 악에 바쳐있다. 그들은 무려 500일이 넘는 기간을 정부를 상대로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아주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러나 돌아온 것은 국민 무시의 기만정책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달이 넘는 기간을 길거리에서 노숙 투쟁도 했다. 이들도 할 만큼 한 것이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빚더미와 독기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장감이 풍겨온다.

 

태풍이여, 어서 오라!

 

 

이들은 이제 보트에서 내려 이날 함께한 전 조합원들과 창녕경찰서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던 이환문 사무처장과 최수영 사무국장 면회를 간 자리에서도 이야기했다. "동지들, 우리가 사실 올라가야 하는데, 미안하다. 동지들의 투쟁을 교훈 삼아 4대강 사업 끝장낼 그날까지 우리는 싸우겠다" 고. 경찰서에 갇힌 두 사람 또한 "빨리 나가서 이렇게 생존권이 걸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워야 하는데, 미안하다. 곧 나가서 낙동강과 여러분들을 위해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렇다. 바야흐로 제2라운드는 시작되었다. 4대강 삽질 저지 제2라운드는 '태풍 뎬무'로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앞으로 뎬무의 벗님들이 몇이나 더 온다고 한다. 태풍이 이렇게 반가운 적이 또 있었던가? 곧이어 상륙할 태풍은 이름도 정겨운 '민들레'라고 한다. 5호가 아닌, 5번(?) 태풍 민들레가 다시 한반도를 강타한다고 한다. 부디 '5번 태풍' 민들레가 이 땅을 광풍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미친 4대강 삽질을 멈춰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전국민적인 환영을 받으며 상륙할 태풍 민들레를 골재노동자들과 함께 기다려 본다. 와서 낙동강을 낙동강으로 다시 만들어놓을 수 있기를. 그렇다. 태풍이여, 어서 오라!

 

한편, 대구경북지역 골재원노조는 지난 7월 14일부터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노숙농성을 벌여오면서 매일 대구 시민들을 상대로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리는 선전전과 서명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또 매주 수요일엔 7시에 2.28기념공원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고, 매주 목요일, 금요일엔 서울 상경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블로그 앞산꼭지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골재노조, #태풍, #수상시위, #개비리길, #함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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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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