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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책이 참 귀했다. 학교 다니던 아이가 있는 집에는 교과서는 있었지만, 첫째인 내가 입학하기 전 우리 집에는 교과서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외삼촌에게 부탁해서 붓글씨로 '가나다라마바사' 써 달래서 벽에 붙여 내게 한글을 가르친 엄마 덕에 입학 전에 한글은 읽었다. 하지만 정작 책이 부족했다.

 

책이 귀했던 만큼 책에 대한 집착도 컸다. 감기 걸려 앓아누우면 엄마가 이웃집에 가서 책을 빌려왔다. 이웃집 형이나 누나들이 쓰던 교과서 주로 빌려왔고, 어쩌다 만화책을 빌려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이불 쓰고 엎드려 읽고 또 읽었다. 그래도 질리지도 않았다.

 

그 습관 남아 요즘도 책을 자주 읽는다. '간서치' 이덕무 정도는 못 되고, 만 권 책 속의 좀벌레가 되면 좋겠다던 허균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지만 책이 좋아서 읽기도 하고, 서평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읽기도 한다.

 

이른바 '서평'이라는 이름 아래 쓰여지는 글처럼 재미없는 글이 또 있을까. 재미만 없는 게 아니라 숫제 읽을 수 없는 것이니, 얼추 메마르고 딱딱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만이 안다는 듯한 이른바 '전문지식'으로 빠가드럽게 말하고 있는데, 그나마 깊고 넓은 독서와 사색 끝에 얻어진 제 생각이 아니라 서구 먹물들 것을 '슬갑도적질' 해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성각이 쓴 '서평'들은 다르다. 진활하고 활발발하다. (책 속에서)

 

작가 김성동이 최성각의 서평 모음집에 대해 쓴 서평의 한 부분이다. 글을 읽으며 가슴이 뜨끔했다. 어쩌다 서평 쓰는 시민기자가 되어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깊고 넓은 독서와 사색을 바탕으로 쓰지 못했다. 그러니 재미있는 글이 되지 못했던 건 당연지사. 쥐구멍이라도 찾아야할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굳이 김성동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제목을 달고 출판된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을 손에 들고 읽던 아내가 "이 책 참 재미있네!"란 말을 입에 달고 읽는 것으로 보아도 재미있는 서평임에 틀림없다.

 

아내는 평소 책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어쩌다 책을 읽어도 무거운 주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좋아했다. 읽다가 다른 일 생기면 접어 두었다가 며칠 뒤 생각나면 다시 집어 들고 읽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는 제목에 감전이라도 된 듯 "재미있다"를 연발하며 책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재미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평들로 넘쳐나는 세상에 최성각의 서평은 어떤 매력이 있어 김성동의 칭찬을 받고 아내의 마음을 쏙 빼앗았을까.

 

살아있는 책벌레로서 나는 오늘도 시골의 여러 표 안 나는 일들을 마치고 나면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채워진 내 대단찮은 서가에 파묻혀 이 공간을 충분히 누리고 즐길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 모든 '서가의 짧은 수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어쩌면 책을 사랑하고 있다기보다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이 가르쳐준 책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삶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찰진 인절미에 듬뿍 묻은 떡고물처럼 생태주의 작가의 싱그러운 삶이 듬뿍 묻어 있는 글을  읽을 때마다 색다른 맛이 난다. 따뜻한 인절미 떡고물처럼 고소한 맛도 느껴지고, 더운 여름날 바위 틈새에서 흐르는 맑은 물처럼 싱그러운 맛이 느껴진다.

 

그 맛에 취해 흠뻑 빠져들다 보면 책에 묻혀 살아온 작가의 삶과, 환경운동가로서 생명 사상가로서 살아온 작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최성각/동녘/2010.8/15,000원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동녘(2010)


태그:#생태주의, #최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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