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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과 함께 노천극장 전체에 하얀 꽃가루가 흩날렸다. 막이 내리자 환호성이 터졌다. 일부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남녀노소 출연자들이 백제의 복식을 차려입었다. 백제와 고구려 병사들이 전쟁을 벌이자 실전을 연상케 하는 화염이 피어올랐다. 무려 160여 명에 이르는 배우들이 1시간 10분 동안 과거와 현재를 분주히 오갔다. 공연 중간중간 수상 무대 곳곳에서는 거대한 물줄기가 용 형상을 그리며 솟구쳐 올랐다. 공산성을 재현한 무대 뒤로 고마나루를 감싸고 있는 연미산 실경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강변 바람에 공산성 무대 깃발이 공연 내내 휘날려 현장감을 더했다. 워터스크린, 음향, 폭죽, 불꽃, 대형 출연진의 연기가 어우러져 관객들에게는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강변에서 펼쳐진 백제의 대서사극

  

 

<사마이야기>는 강변에서 펼쳐지는 대서사극이다. 22년 동안 백제를 통치했던 무령왕의 이야기다. 하지만 극중 이야기는 무령왕이 강한 백제를 이뤄낸 통치사를 그린 일대기는 아니다. 그가 태어나 제25대 왕으로 등극하기까지의 백제사다.

 

극은 고구려군의 백제 한성 침략으로 시작된다. 475년, 무령왕의 나이 13세 때다. 고구려군이 몰려오자 백제군은 속수무책이었고 개로왕도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개로왕은 한강정비사업 등 토목공사로 백제 왕권의 힘을 급격히 소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죽는 게 당연하다"며 비통에 잠긴다.   

 

소년 사마와 백성들은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피난했지만 백제 왕실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개로왕의 후임왕인 문주왕이 암살된다. 뒤를 이은 동성왕은 "상처 난 가슴이 있어야 결실을 맺는 법"이라며 "한성의 쓰라린 기억을 가슴 가득히 담고 살아가자"고 호소하지만 그 또한 귀족들의 반란으로 암살된다.

 

무령왕이 말하는 '공생의 미래'... 근현대사와 중첩

 

사마는 귀족들과 맞서 싸워 39세에 왕위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사마왕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는다. 한 여인과 나눈 사랑과 이별은 주된 이야기 구조 중 하나다. 새로운 왕을 맞이한 웅진사람들은 대백제를 꿈꾼다. 실제 무령왕은 국력을 신장해 강한 백제를 재건했다. 

 

무대는 다시 현재로 바뀐다. 무령왕은 현세를 사는 후손들에게 말한다. 공생의 미래로 함께 가자고. 무령왕의 일대기는 백제사의 한 과정을 친근하게 다가오게 한다. 대무녀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할머니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서정적인 노래는 백제의 고마나루 전설과 현세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끈이다. 

 

백성들이 웅진을 향한 피난길에 오른 장면에서는 무대 좌우에 있는 영상스크린을 통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실제 피난민의 행렬을 비추는 인상적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당시의 백제와 근현대사를 중첩시킨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야외무대답게 장치, 출연진 등 모든 면에서 스케일이 크지만 수상무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지는 못했다. 무대 세트에 가려 금강의 모습을 볼 수 없는데다 무대 위 인공 연못은 분수를 뿜어내는 것 이외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수상무대 장점 극대화하지 못한 점 아쉬워  

 

기자가 관람하던 날(19일 밤)에는 작은 사건도 일어났다. 전쟁 장면을 연출하다 무대장치에 불이 옮겨 붙어 소화기를 든 예기치 않은 배우(?)들이 출연해야 했다.   

 

그럼에도 누구도 입장료(S석 기준 어른 2만 원, 청소년 1만4천 원, 어린이 5천 원)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첫 공연날(18일)과 19일 모두 유료객석 1373석이 완전히 매진됐다. 이 때문에 예매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연일 되돌아가고 있다. 첫날에는 400여 명이 되돌아갔다.

 

고마나루에서 보는 마지막 기회?  

 

<사마이야기>는 오는 10월 2일까지 공주 고마나루 수상공연장에서 오후 7시 30분 막을 연다.  

 

문화재 전문가들과 환경단체에서는 4대 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금강보를 전제로 설치된 수상무대가 영구구조물이 돼서는 안 되는 임시무대이며, 대백제전을 끝으로 철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내달 2일 <사마이야기> 공연이 금강 고마나루 현장에서 보는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사마이야기> -총괄프로듀서/ 허주범(에프엠커뮤니케이션즈) -연출/ 박근형(극단 골목길 대표)  -안무/ 서울현대무용단 박명숙, 박해준 -출연진/ 극단 골목길, 극단 새벽, 극단 고도, 서울현대무용단, 대전연기학원, 건양대학교 디지털컨텐츠학과, 대전대학교 연기뮤지컬과, 목원대학교 연기과 외


태그:#사마이야기, #대백제전, #무령왕, #고마나루, #수상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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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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