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낫으로 벼베기 작업하는 마들농요 회원들
 낫으로 벼베기 작업하는 마들농요 회원들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초가을 장마와 폭우로 일조량이 부족해서인지 벼이삭이 신통치 않네요"

벼 베기 작업을 하던 사람이 하는 말이다. 추석명절이 지난 3일째인 토요일(25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벼 베기 작업이 있었다. 그런데 벼이삭이 아직 완전히 영글지는 않았지만 노랗게 익어가는 이삭들은 정말 탱글탱글하지 않고 왠지 푸석한 모습이었다.

이날 벼베기를 한 논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근린공원 안에 있는 농사체험학습장 벼논이었다. 이곳은 서울지방 전래 전통농요인 마들농요보존회 회원들의 연습장이기도 했다. 벼베기에 참가한 사람들도 마들농요 보존회원들 30여명이었다.

"아직 덜 익은 올벼를 베는 것은 옛날 이맘 때 식량이 떨어진 농민들이 올기쌀을 만들어 먹었던 것을 우리들도 체험해보기 위한 것입니다."

벼베기를 주관하는 마들농요보존회장 김완수(65)선생의 말이다. 올기쌀은 벼가 완전히 영글기 전인 이맘때 벼를 수확하여 가마솥에 쪄낸 것을 말려 절구통에 방아를 찧어 생산한 쌀을 일컫는 이름이다.

서울 도심에서 벼베기 작업에 나선 마들농요보존회원들

작업에 참가한 마들농요 회원들 몇 사람은 논에서 벼를 베어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옛날에 썼던 탈곡기인 '홀태'로 이삭들을 훑거나. 수숫대를 이용하여 벼이삭 한 줄기씩을 훑어냈다. 이런 탈곡방법은 1960년대까지 우리 농촌에서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홀태로 벼훓기
 홀태로 벼훓기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올해 농사가 풍년인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소출이 너무 적은데요. 예상보다 어림도  없겠어요."

홀태를 이용하여 탈곡작업을 하던 사람들도 홀태 앞에 떨어져 내리는 알곡이 너무 적다며 혀를 끌끌 찬다. 대부분 농촌출신인 이들 회원들은 지난봄에 구청에서 연습장 겸 체험학습장으로 마련해준 이곳에 삽과 괭이, 그리고 호미를 이용하여 논을 만들었다. 여름동안 모내기를 하고 김매기를 하며 가꾼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의 정성으로 비료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벼농사를 했지만 그동안 병충해 한번 입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영글어 이날 첫 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모처럼 도심 한복판에서 첫 벼베기와 탈곡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저 옛날 시골에 살 때 농사일 많이 해봤어요. 저 벼베는 솜씨 한 번 보실래요?"

있는 오택선(51)씨가 익숙한 낫질 솜씨로 벼를 벤다. 옆에서 함께 벼를 베는 다른 사람들도 거침없는 낫질이 뒤지지 않는 솜씨다. 벼논 아래 웅덩이 옆에서는 이재호(73)노인이 역시 익숙한 솜씨로 벼베기에 사용할 낫을 숫돌에 갈아주고 있었다.

가마솥에 쪄내기
 가마솥에 쪄내기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오늘은 100평 정도만 베려고 합니다. 나머지는 완전히 영근 다음에 추수해야지요."

농사가 잘 되어 약 200여평의 논에서 쌀 400kg 정도 수확을 예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수확을 해보니 그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여 오늘 베어내는 벼에서는 올기쌀 50~60kg도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초가을 장마와 폭우, 태풍으로 수확량이 많이 줄어든 벼농사

홀태와 손으로 탈곡한 알곡은 바로 옆에 걸어놓은 가마솥으로 옮겨져 장작불로 쪄내고 있었다. 그리고 쪄낸 알곡은 다시 마당에 펼쳐놓은 마대멍석 위에 널어 말렸다. 햇볕이 쨍하다. 추석을 앞두고 가을장마처럼 며칠씩 쏟아지고, 추석 전날 서울과 수도권에 퍼부은 집중호우로 많은 수재민을 발생시켰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은 모습이었다. 파아란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이 그렇게 곱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 이리오세요, 점심 먹고 합시다"

작업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점심시간이 된 것이다. 김완수 회장 부인이 준비해온 점심은 김치찌개에 쌀밥이었다. 모두들 벼를 베고, 탈곡을 하고, 알곡을 쪄내어 멍석에 말리던 일을 잠시 멈추고 마당가에 쳐놓은 채일 밑 그늘에 앉아 막걸리 한잔씩을 곁들여 먹는 점심 맛이 일품인가보다.

통나무 절구통에 방아찧기
 통나무 절구통에 방아찧기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오후에는 벼베기 작업은 끝나고 대신 지난 폭우로 물이 불어난 논에서 맞두레로 물을 퍼내는 작업을 했다. 탈곡 작업도 곧 끝났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마솥에서는 알곡이 삶아지고, 내려쬐는 햇볕 아래에선 쪄낸 알곡이 말라가고 있었다.

마들농요 회원들은 멍석 위에서 말라가는 쪄낸 알곡들을 뒤저어 주며 빨리 잘 마를 수 있도록 한다, 알곡을 뒤저어 주는 방법은 갈퀴를 이용하기도 하고 맨발로 골을 내며 밀어걷기도 하는 모습이, 요즘 우리농촌에서는 볼 수 없는 옛날 농촌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고소하고 맛있는 올기쌀은 노인들에게 전달할 예정

"이 정도 말랐으면 방아 찧어도 될 것 같네요?

맨 처음 쪄낸 알곡을 만져본 사람이 방아 찧기를 권하자 몇 사람이 나섰다. 통나무 절구통에 널어 말린 알곡을 넣고 절구공이로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마주서서 번갈이 찧는 모습이 여간 정겨운 것이 아니다.

방아찧어 키질한 올기쌀
 방아찧어 키질한 올기쌀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방아 찧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성회원 몇 사람이 우리민요 '방아타령'을 부르기 시작한다. 구성진 노래 소리와 통나무 절구통에 올벼 방아 찧는 모습이 절묘하게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한번 찧은 올벼는 키로 벗겨진 벼 껍데기를 날려버리고 다시 찧었다. 그렇게 세 번 만에 드디어 기대하던 올기쌀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벼 베고 방아 찧느라 고생하셨는데 한 줌씩 맛보세요?"

너도나도 한 줌씩 손바닥에 담아들고 올기쌀 맛을 본다.

"히야~ 고소하고 맛있는데요,"

누군가 맛있다고 탄성을 지르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고 한다.

50대에서 대부분 60대 이상인 회원들이 서울 도심에 손수 만든 논에서 심고 가꾸어 추수한 벼농사. 초가을에 올벼를 수확하여 쪄낸 올기쌀을 맛보는 마들농요 회원들은 남다른 감회에 젖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생산된 올기쌀은 회원들이 조금씩 맛을 보고 대부분의 올기쌀은 노원지역 가난한 노인들에게 나누어 드린다고 한다.


태그:#올기쌀, #벼베기, #홀태, #이승철, #마들농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