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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학교 학생이 곽 교육감에게 "두발자유는 언제 해줄 것이냐"고 묻고 있다.
 한 중학교 학생이 곽 교육감에게 "두발자유는 언제 해줄 것이냐"고 묻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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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 급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저건 진보도 아니라는 둥 소리를 한다. … 하지만 약속 드릴 수 있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개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7일 저녁 2시간여에 걸쳐 서울지역 교사와 학생, 학부모 500여 명과 '즉문즉설'(즉석에서 묻고 즉각 답함)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의 공식 명칭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초청강연'. 행사를 주최한 곳은 서울 북부 교사아카데미와 북부 교육희망네트워크다.

2시간에 걸친 질의응답, 폭소와 박수

즉문즉설 시간에 답하는 곽노현 교육감.
 즉문즉설 시간에 답하는 곽노현 교육감.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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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8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곽 교육감이 이처럼 교육시민단체에서 연 큰 규모 행사에 강연자로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곽 교육감이 행사장인 서울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 들어선 시간은 오후 5시 40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시간에 걸친 '즉석 묻고 답하기' 중간 중간에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행사는 곽 교육감의 요청으로 40여 분간의 인사말 뒤, '즉문즉설'식으로 진행했다. 당초 계획한 1시간 30분의 행사시간에서 30분을 더 넘겨 오후 7시 35분에 끝났다.

곽 교육감은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송통신대 교수 시절 저는 입을 열면 단 한 명도 졸게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부흥사 기질이 있어서 50대 학우 아줌마도 호응한다. 수업 끝나면 10통 이상 편지를 받는다."

참석자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곽 교육감의 입에 눈을 모았다. 인근 중학교 학생 5명도 맨 앞자리에 앉아 곽 교육감을 빤히 바라봤다. 곽 교육감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맨 앞줄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감 위에 너희들이 있다. 교실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꽃 피면 우리 미래 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꽃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는 반부패 의지를 쉽게 풀어 설명했다. "최소한 반부패 선봉에 설 수는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9월 1일자 인사에서 저한테 청탁하는 사람 거의 없었다. 네댓 건 있었는데 눈 딱 감았다. (내가) 얼마나 나쁜 놈으로 소문이 났으면 추석 때도 선물이 교수 때보다 더 없더라."

이어 즉문즉설이 시작됐다. 오후 6시 17분부터 시작한 질의응답은 참석자들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뒤 곽 교육감이 곧바로 답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는 답변에서 ▲ 학생 인권 ▲ 교원평가 ▲ 혁신학교 ▲ 부진학생 교육과 방과후학교 등 서울교육 현안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한 즉문즉설을 정리한 것이다.

"추석 때도 선물이 교수 때보다 없더라"

- 교육감은 (임기) 4년이 아니라 12년을 준비해야 하지 않나.
"4개월도 벅찬데 12년이라니 무슨 말씀을. 분명히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임기 동안 저의 모든 걸 바쳐서 돌이킬 수 없는 개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 체벌금지에 대해 반대하는 선생님들이 있는데, 이 분들을 무슨 말로 납득시킬 수 있겠나.
"감옥에서도 체벌이 금지되어 있다. 강자가 약자의 잘못에 대해 즉각정의, 즉결처분하는 것은 야만시대의 특징이다. 지연된 정의가 문명사회의 정의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교사들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세상 없는 지원책을 내놔도 손에 든 매를 내려놓기는 어렵다. 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이건 결단이다. 체벌을 배제하면 다른 수단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서울지역 교사, 학부모, 학생 500여 명 앞에서 연설하는 곽노현 교육감.
 서울지역 교사, 학부모, 학생 500여 명 앞에서 연설하는 곽노현 교육감.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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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교는 부진아교육 자원학교다. 우등생과 부진아를 나누어 꼬리표를 붙이는 이분법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왜 부진아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학습 부진 학생이라고 하지 않고. 학습 부진 학생에 대한 대책을 면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학습 부진을 바로 잡으려면 학생들이 자존감을 갖게 해야 한다. 가정 형편과 복지, 심리적인 측면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다면 공교육이라고 부르기 굉장히 찝찝할 것이다. 방학 중 종합프로그램을 지역청별로 마련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예비교사 자원을 기존 3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겠다. 답변이 부실하다. 하지만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 혁신학교에 관심이 많은 예비 학부모다. 혁신학교를 강북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성미 급한 사람은 (나를 향해) 저건 진보도 아니라는 둥 소리를 한다.(웃음) 혁신학교TF가 다 준비된 상태다. 혁신학교는 교육력이 빈약한 지역부터 하게 될 것이다. 혁신학교가 성공하려면 교사들의 혁신의지가 중요한데, 그것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토 마나부 교수(배움의 공동체를 연구, 실천해 온 일본 교수)의 책을 보면 교실의 벽, 교과의 벽을 넘어서 교사들이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 수업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연구, 시범, 중점, 거점 학교들이 있었나. 하지만 이들 학교는 가산점 받고 시범 기간이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자는 학교를 깨워야 한다. 선생님들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게 저의 역할이다."

- 교원평가에 학부모 참여도가 부족한 학교에 대해 교육청이 경위서를 내라고 했다. 합리적인 교원평가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경위서 문제는 사후에 보고 받고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경위서로 불이익 가는 일 없도록 하겠다. 교원평가에 대한 TF를 만들었으니, 여기에서 중지를 모아나갈 것이다. 방향은 선거에서 얘기했는데 (정부의 교원평가에서) 학부모·동료 평가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생 평가는 정확한 거 같다. 학생평가 위주로 하겠다. 평가항목을 줄이고 서술식 제안도 쓸 수 있는 형식이었으면 좋겠다. 제가 교수 시절 평가를 많이 받아받는데 두려워할 것 없다. 평가 자체를 이념적으로 재단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두발자유? 불난 집에 기름 끼얹지 말라고 한다"

- 방과후학교가 국영수 종합반이 되어 있어 창피할 정도다. 수강료도 결코 싸지 않다. 학교 학원화라는 말도 나오는 방과후학교에 대한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저도 동감한다. 방과후학교는 선행학습, 보충학습을 하면서 교육을 왜곡시키고 학원이 하는 일을 학교에서 대행하고 있다. 곧 방과후학교 혁신 추진단을 선보일 텐데 방과후학교에서 연극이나 낭독, 목공이나 텃밭 가꾸기, 장구, 독서토론을 하면 얼마나 좋겠나. 학교의 탈학교화를 위해 지역사회와 함께 어떤 환경의 아이들이든 최상의 성장기회를 줄 것이다. 하지만 방과후학교를 없앴더니 선행학습 공장만 배부르게 했다, 이런 말 나온다면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여우 같이 가야 된다. 지혜를 함께 발휘하면 못할 것 없다."

- (중학교 학생) 강원도교육청에서는 이미 두발 자유를 주었다고 하는데, 서울은 언제 해줄 것인가.
"두발 자유라, 제 주변에서 자꾸 불난 집에 기름 끼얹지 말라는 말을 한다. 학생인권조례 만든 다음에 시행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조언이 많아서 제가 그걸 따르고 있다. 그러나 아주 멀지 않았다(웃음). 1년을 기다리라고는 안 그러겠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도 머리카락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전통을 따르는 것은 잘 아는데 세상엔 할 일도 많으니까 머리카락 길이로 노심초사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들은 사람에게 중요한 건 머릿속이지 머리카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학부모가 변해야 한다. 학부모 연수를 제안하고 싶은데….
"학부모도 변해야 한다는 것 동의한다. 오죽하면 학부모와 부모를 나눠 놓고 얘기하겠나. 이것은 우리 안의 정신분열이고 이중인격이다. 금년 내로 서울시교육청이 나서서 내 아이 선행학습 안 시키기 결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학부모가 인격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학벌과 대학서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60%라는 불안한 경제 사회 양극화가 있는 것이고 거기에 조응하고 있는 학교 사회의 양극화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공론의 장이 조직되어야 한다. 지역청별로 반부패, 인권과 사회책임을 다룰 거버넌스를 구성하려고 한다. 지역청 단위, 학교단위로 실질적인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내년 1학기엔 이런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활동이 우리를 비겁한 학부모에서 더 큰 부모로 돌려놓을 것이다."


태그:#곽노현, #두발자유,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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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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