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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란 존재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의미인가. 그것이 비록 정규교육에서가 아닌, 학원이었든 공부방이었든, 선생님의 의미는 아이에게 있어 결코 작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도 지난 기억을 되살려보면, 모름지기 오래 전 전학간 친구의 얼굴은 까먹는다 할지라도 선생님의 얼굴만큼은 결코 까먹을 수 없을 것이다.

수업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눈은 선생님만을 향해야 했기에 물리도록 선생님 얼굴만을 쳐다봐야해서였을까? 그 오래 전 선생님들의 말, 내게 했던 행동은 오랜 시간이 지나오는 동안 나에게도 큰 의미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에게 남겨진 선생님에 대한 추억은 마냥 존경할 만한 좋은 의미만으로 기억되진 않았다.

생애 최악으로 남겨진 선생님에 대한 에피소드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과의 일화는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였다. 모둠별로 네 자리로 마주보고 앉으며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나와 마주본 아이가 나에게 장난스레 말을 걸어왔다. 난 그 말이 너무 우스워 같이 맞장구추며 선생님 몰래 그 친구에게 답을 했다. 그 친구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자기 선생님의 손이 나의 뺨을 향해 날라왔다.

책상 바닥으로 나의 몸은 내팽겨쳐졌고 그 충격으로 의자마저 넘어진 상태였다. 그리 심하게 장난치며 떠든 것도 아니었는데 나를 모질게 매질하는 선생님이 너무 야속히 느껴졌었다. 방금 전까지도 같이 웃으며 떠들었던 아이에게는 선생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도저도 따지지 않고 그저 수업시간에 왜 떠드냐는 이유로 그렇게 뺨이 벌겋게 맞고 벌까지 서아야만 했다.

그 순간 들었던 마음은 아팠던 뺨보다, 여학생으로서 많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당했던 수치스러움이었다. 마음 속으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말없이 남은 수업을 듣고서는 화장실로 뛰어가 점심시간 내내 웅크려 앉아 울고 눈물 콧물을 다 빼내었다.

나와 친구가 함께 떠들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맞아야 하는 건지, 내가 이 정도 맞을 만큼의 나쁜 짓을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내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아 더욱 울컥했다. 이 후에도 그 선생님은 나를 향해 단 한 번도 밝은 미소를 내비친 적이 없었다. 다만 나를 향해 한번도 웃지 않는 그 선생님에게 내가 무엇을 밉보인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는지 한참이 지난 이후에 다른 친구로부터 들었던 소식은, 그 선생님이 유난히 촌지를 밝힌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떠들었던 아이의 엄마는 촌지를 주었지만 우리 엄마는 촌지를 주지 않았기에 차별을 한 것이라는 이야기을 학년이 바뀌자 나에게 흘리듯이 한 친구는 말해주었다.

그 선생님과의 일화는 내 기억에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뺨을 맞았을 때의 설움과 화장실 내내 웅크려 앉아 눈물을 흘렸던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내 눈가의 실핏줄이 빨개질 정도이다. 확실히 그 선생님이 촌지를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지금 생각해보아도 영 찝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 장난꾸러기도 아니었고,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리 단단히 선생님한테 찍힌 건지 납득이 안 가는 노릇이었다. 그 일화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림이 뭉크의 '절규'이다. 이 그림에 뭉크는 이러한 이야기를 덧붙였다고 한다.

"두 친구와 함게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 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

"그 날 내 눈에는 핏빛 노을이 보였다"
▲ 뭉크 - 절규 "그 날 내 눈에는 핏빛 노을이 보였다"
ⓒ 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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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중에 외로이 홀로 벌을 받았던 순간의 공포와 수치심을 드러내기엔 아주 적절한 그림이다. 이렇게 최악의 선생님으로 남겨진 이 일화는 어린 소녀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게 만든 이 사건은 많은 선생님들을 대할 때 달갑지 못한 태도를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고의 선생님으로 남겨진 한 일화는 지금 생각해봐도 참 별거 아닌 이유에서 였다.

생애 가장 최고의 선생님으로 남겨진 에피소드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되어갈 무렵 지금도 나는 그녀를 모나리자로 기억하고 있다. 웃는 얼굴이 마치 모나리자의 그림을 닮았던 한 선생님. 모나리자 미소가 별명이었던 그 선생님은 항상 웃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다가 왔었다.

모나리자 선생님은 학생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웃는 얼굴로 답해주고는 했었다. 한창 HOT, 젝스키스가 유행할 무렵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그룹 사진 한장을 들고와서 그것을 보며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조용히 내 곁으로 오시더니, 모나리자 선생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 물어보셨다. 엽서로 된 나의 작은 사진 한장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손을 가르켜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 중 한명을 지목했다. 선생님은 유심히 그 사진을 보시면서 이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우리 OO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특유의 모나리자 미소로 쑥스러워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모나리자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 깊이 따뜻함으로 남아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어쩌면 선생님 입장에서 흘리듯 내뱉은 말이었을지도 모를 저 한마디의 말은 평범한 사춘기 여중생을 참 특별하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성인이 지난 지금도 그 선생님의 이름과 특유의 미소는 나에게 큰 의미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 한명, 한명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은 아무것도 아닌 그 한마디의 말을 너무나도 무궁무진한 의미로 함축시켜 놓게했다.

말 한마디가 첫냥빛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 한마디가 지닌 힘이 그만큼 엄청나게 크다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표면적인 언어적 의미의 말 한마디가 아니다. 우리는 말을 들을 때에 단어, 그 이상을 본다.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얼굴이나 표정, 몸짓 등의 비언어적인 표현을 통해서 그 말을 흡수하고 받아들인다.

아무리 구구절절 유창한 미사여구를 들여 수십여가지의 말을 한다할지라도 진심어린 한 마디 말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있어 말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가치관이 형성될 무렵 아이들에게 던져지는 말 하나, 행동 하나는 이후에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일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에게 던지는 한계와 비교의 말은 아이들을 그 잣대만큼의 크기만으로 제한시키고 더 이상 자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일화는 비단 선생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말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몸의 상처보다 더 뼈아픈 아픔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반면, 진심어린 말 한 마디는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아니, 인생까지는 변화되지 않을지라도, 그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가장 먼저 나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진심어린 말 한 마디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그 한 마디와 그 미소가 그 친구의 평생의 삶을 변화 시킬지 모르는 일이다.


태그:#선생님, #촌지, #모나리자, #체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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