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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소리 우리춤' 무대가 열린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무대.
 '우리소리 우리춤' 무대가 열린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무대.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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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에서 '우리소리 우리춤' 공연이 23일 토요일 열렸다.

국립부산국악원은 부산과 영남 지역의 전통공연예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2008년 개원했다. 특히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의 이해라는 목적을 세운 이번 공연은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비교적 다른 공연보다 싼 입장료 8000원을 낸 후, 4개 국어로 번역된 팸플릿을 들고 들어간 공연장은 무척이나 한국적으로 디자인이 잘 되어 있었다. 규모는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했고, 한지로 된 창문으로 통해 들어오는 채광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공연장에는 엄마를 따라온 초등학생들, 그리고 국악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음악을 공연하는 자리이다 보니 50~60대 노인층들이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공연장을 찾은 아이들의 대화가 옆의 관객들을 한창 방해 받게 할 때, 곧 "땡"하는 종소리와 함께 무대의 막이 올랐다.

첫 번째 공연은 궁중무인 <포구락>이었다. '포구락'은 송나라 때 전해진 여자들의 춤으로, 궁전을 배경으로 두 틀의 포구문을 놓고 공을 던져 넣어 승부를 가리는 것을 재미있게 형상화했다. 배경음악은 태평소, 대금, 북, 박 등으로 연주됐고, 네 명의 무희들이 춤을 추면서도 공연 내내 공을 던져 넣었다.

박이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가운데 그녀들은 부드럽고 흘러가는 듯한 연주 속에서 웃음과 함께 느린 춤을 추었고, 공을 넣을 때마다 철 모르는 아이들의 환호가 공연장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곧 박이 치자 무대는 끝났다.

그 후 사회자의 짧은 소개와 다음 공연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졌고, 한국인에게 친숙한 판소리가 공연되었다. 판소리는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심청전>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담았는데, 전체적으로 슬픈 내용에 걸맞게 소리꾼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몸짓을 섞어가며 심봉사가 울부짖는 장면을 표현한 소리꾼은 공연장 전체를 그녀 혼자서 사로 잡는 듯했고, 그녀의 감정 표현은 점점 더 깊이를 더해 갔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드디어 심봉사의 눈 뜨는 대목을 부를 때였다. 요즘 인기 있는 '슈퍼스타 K' 참가자들의 감정표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을까. 소리꾼은 갑자기, 그러나 자연스럽게 얼굴에 웃음을 띤 후 분위기를 전환 시켰고, 고수 또한 표정연기를 하며 다소 가라앉았던 무대를 흥겹게 만들었다.

단 두 사람이 관객들을 집중하게 했던 판소리 연주가 끝나자, 바로 생소병주인 <수룡음>이라는 곡을 연주할 무대의 막이 올랐다. 그와 함께 생소병주가 생황과 단소의 이중주로서 맑음과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하는 곡이라는 사회자의 설명에 맞는 산천의 풍경이 그려진 배경과 함께 두 사람의 연주자가 올라왔다.

전의 두 무대에서 보여준 공연장을 울리는 큰 소리와는 다르게 '수룡음'은 고요한 산 속에서 혼자 잠을 청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조용하게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 속, 다른 음색의 두 악기는 서양의 어느 이중주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화음을 창조해내었다. 단소는 흔들리는 특유의 음으로 새가 지저귀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주었고, 생황은 그런 새를 둘러 싼 자연의 느릿느릿한 흐름을 느끼게 해주었다. 맑고 청아한 무대가 관객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한 곡은 아쉬움을 남기고, 하지만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뒤이어 살풀이와 남도민요가 공연되자 의외로 관객들은 지루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앞의 무대들과 그다지 차이가 없고 다소 루즈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몇몇 관객들은 아예 잠을 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을 깨운 것은 창작극인 대금중주곡 <영풍>이었다. 다른 곡들과는 다르게 2000년대에 와서야 창작된 이 곡은 그에 걸맞게 젊은 층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된 국악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했다. 국악에서는 생소할 검은 색의 현대적인 옷을 입고 나온 6명의 연주자들은 대금, 장구, 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마치 만화주제가 같이 빠른 템포에다가 끊어지는 대금 연주는 북의 힘찬 장단과 함께 생동감이 배가되었고, 연주 내내 달리는 듯한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끝날 무렵에는 높은 대금소리가 관객들을 장악했고, 필자를 비롯한 여러 잠오는 관객들을 깨우는 선율이 흥겹게 들려왔다.

'국악의 모더니즘'이라 가히 칭할 만한 연주가 그치자, 곧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판끝이 공연되었다. 때에 따라 재담 등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인 판끝은 겉으로 사물놀이와 비슷해보였지만 사실 그와 명확한 구분점이 있었다.

우선 4명의 춤꾼들이 태평소 연주자와 함께 나와 각각 징, 꽹과리, 북, 장구를 들고 원을 빠르게 돌아가며 흥을 돋구웠다. 여기까지만 했어도 가장 생동감이 있었던 무대였으니 관객들은 서민적 정서에 맞는 이 공연에 눈과 귀를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울려퍼지는 큰 소리를 내며 곧 꽹과리 연주자가 뮤지컬처럼 무대 위를 빠르게 돌며 꽹과리를 빠르게 치자, 공연 도중에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아왔던 관객들은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춤추던 연주가 끝나자 연주자들은 다시 빠르게 강강술래를 하며 신명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곧이어 장구 독주가 시작되었는데, 그 또한 뛰어다니면서 장구를 쳤다. 마치 난타 공연을 보는 듯한 신들린 무대에 더 많은 관객들이 박수를 보냈고, 장구의 뒤에는 그 날 관객에게 큰 인상을 주었을 소고가 등장했다. 그는 전보다 더 격정적인 몸짓으로, 비보이처럼 재주를 넘었고 관객들은 환호성을 보내었다. 소고 연주가 끝나갈 때 즈음 관객들 거의 모두는 박자에 맞추어 더 큰 박수를 보내었고, 무대와 동화되었다.

이어 판끝 공연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그 날 무대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인사를 위해 관객들을 마주했다. 판끝 배경음악이 무대가 막을 내릴 때까지 계속되어 관객들은 박수치기를 쉬지 않았고, 무대에 인사를 하러 나온 참가자들도 그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무대가 다시 어두워질 때까지 흥겨운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우리소리 우리춤' 공연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은 마음 속의 여운을 남긴 채 공연장을 떠났다.

공연관람을 마치고 한 관객이 자신의 가족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빠, 난 정말 국악이 저렇게 좋을진 몰랐는데...... 사직 야구장보다 재밌었어." 그만큼 무대 전체가 하나가 된 박수 퍼레이드는 국악만의 정서와 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텅 빈 공연장에서는 정적이 아닌, 여전히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태그:#국악, #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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