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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김성열, 이하 평가원) 누리집에는 "학교교육 선진화에 기여하겠습니다"란 다짐이 걸려 있다. 그런 평가원이 2011 대입수능이 끝나자마자 수험생들과 학부모로부터 성토를 당하고 있다. 선진화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그러나 최근 평가원 운영과 관련된 몇몇 사건들을 살펴보면 스스로 이 같은 결과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불거진 수능 출제 오류 논란은 논외로 치더라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인쇄업자 뇌물 확인하고도 수능 시험지 인쇄 맡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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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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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건은 평가원 고위인사와 수능문제지 인쇄업체가 뇌물을 주고받은 사건이다.

지난달 초 평가원 감사실은 본부장급 인사와 모의수능 인쇄 관리담당자 등이 특정 인쇄업자로부터 평가원 발주 시험지 인쇄를 맡겨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를 밝혀냈다.

이들은 곧바로 직위해제 되었으며, 검찰에 고발당했다. 뇌물을 준 해당업체는 '부정당 업체'로 지정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 업체는 향후 최대 2년간 평가원과는 모든 계약과 거래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평가원은 과감했다. 뇌물 제공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 업체와 2011학년도 수능 문제지 인쇄계약을 다시 체결한 것이다.

물론 평가원의 입장도 있다. "단시간에 신규 업체 발굴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12월까지 인쇄본부 운영 후 제재 여부 결정하겠다"는 것. 그리고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평가원은 뇌물 수수 의혹 업체와 계약할 수밖에 없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후 평가원 감사실이 나서서 현행 인쇄제도의 재검토, 청렴계약의 실질화, 윤리교육을 한다고 조치계획을 발효했지만, 이미 2011학년도 수능에서 71만여 명의 수험생들이 뇌물을 주고도 살아남은 업체가 인쇄한 시험지를 풀어버린 후였다.

수능 답안지 자필확인문구 사전 유출

대리시험방지를 위한 자필문구 사전 유출 논란에 휩싸였던 모의 답안지. 붉은색 사각형 안에 있는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라는 부분이 사전에 누출된 문장이다.
 대리시험방지를 위한 자필문구 사전 유출 논란에 휩싸였던 모의 답안지. 붉은색 사각형 안에 있는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라는 부분이 사전에 누출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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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건에 대한 평가원의 대응방식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마련된 장치가 자신들의 실수로 노출되자, 아예 그 보안 문구를 시험 시작 전에 스스로 공개해 버린 것이다.

'자필확인문구'란 대리시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OMR 카드에 수험생이 자필로 써넣도록 한 문장을 말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사전에 공개된 바가 없으며 수능 당일 답안지를 받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문장이 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실수로 사전에 유출된 것이다.

지난 11월 1일에 평가원 누리집에 공개된 견본 답안지 PDF 파일에 따르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우스로 끌기를 하면 이번 수능에서 사용될 자필확인문구가 고스란히 복사되었다. 부정방지 장치가 노출되었으니 이에 대한 신속하고 철저한 대응이 요구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평가원의 대처는 대담(?)했다. "알 수 없는 기술적 이유로 유출되기는 했지만 보안상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명자료를 내면서 아예 해당 문구를 견본 답안지와 함께 공개해 버린 것이다. 이미 수백만 장의 답안지 인쇄를 마친 상태이니 어쩔 수 없었을 터.

그러나 '알 수없는 기술적 이유'라는 설명이 놀랍다. 그것은 대단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파일 제작 과정에서 문장을 지우는 대신 글자색을 흰색 처리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글자를 없앤 것이 아니라 단지 눈에만 보이지 않게 했으니 복사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또한 수험생들을 수험표 등으로 현장에서 확인하기 때문에 보안상 문제가 없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힘들다. 지난 2005학년도 대입수능 당시 발생한 대규모 대리시험 때문에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도입한 제도를 본인들 실수를 덮기 위해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 50% 이상이 박사급 원구원과 직원들로 구성된 국가기관에서 내놓는 변명의 수준 치고는 참으로 군색하다.

수능 샤프는 1회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불량품 논란에 휩싸인 2011년 대입수학능력시험용 샤프연필
 불량품 논란에 휩싸인 2011년 대입수학능력시험용 샤프연필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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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의 안이한 대처 방식은 수능 불량 샤프 취재 과정에서 절정에 달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인터넷과 평가원 누리집에 수험생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었는데, 정작 관계자들의 첫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예민해진 학생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량 샤프 여론 초기에 통화한 한 관계자는 "트럭으로 옮기다 보면 일부 흔들려서 부러질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의도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 (평가원이) 고생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차피 넓게 생각하면 수능 날 하루만 쓰면 될 1회용품의 개념인데 엄격한 품질관리를 요구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참 1회용 같은 반응이다.

시중가 1000원짜리가 243원에 낙찰되는 상황이라면 불량품 유입 개연성을 충분히 알고 품질관리에 전념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해당 업체가 올해 처음으로 선정된 업체이고 공장이 중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말이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80만개의 샤프 연필을 2달여 사이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를 보유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니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연구·개발하고, 각종 학력평가를 연구·시행한 업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능샤프 불량 논란과 관련해서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를 새겨듣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될 것이다. 아쉬움이 너무 많다.


태그:#한국교육과정평가원, #평가원 뇌물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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