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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평생 날카로운 지성의 필발로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워 오신 리영희 선생님이 향년 81세의 일기로 타계하신 5일 새벽, 한국 근현대 지성과 사상계의 큰 별이 지고 말았습니다.

병마와 싸우시다  끝내 소천하셨다는 비보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지난주 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그렇게 쉽게 가시다니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보내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선생님 자서전 성격의 <대화>(한길사 출판)의 책장을 넘기던 중 참담한 비보를 접하게 되니 비통한 심정을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던 이 '야만의 시대'에 선생님께선 왜 꼭 그렇게 서둘러 가셔야 했나요? 야만의 시대, 선생님의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훌쩍 가시다니요.

건강한 몸으로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시다니요

리영희 선생님이 임헌영 씨와 대담 형식으로 출판한 책 <대화>(한길사 출판).
 리영희 선생님이 임헌영 씨와 대담 형식으로 출판한 책 <대화>(한길사 출판).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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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제 손에는 선생님께서 "나의 인생의 마지막 저술이 될 자사전"이라고 출판 즈음에 밝히신,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란 부제와 함께 임헌영 선생과의 대담 형식으로 2년에 걸친 구술과 원고정리 등의 작업을 통해 쓰여진 <대화>라는 책이 쥐어져 있습니다. 책머리(읽는 이를 위하여)에서 시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2000년 말, 나는 느닷없이 찾아온 뇌출혈이라는 손님을 맞고 쓰러졌다. 70세를 넘기려는 순간이었다. 뇌중추신경 타격(중풍)으로 신체의 우(右)반신이 마비되고, 사고도 혼미해지고 언어의 장애를 겪었다. 이제는 내 의지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지적 활동과 글 쓰는 일은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명의 선고로 알고 체념하면서 순순히 승복했다. 그런데 운명의 신의 예정표를 어찌 인간이 가늠할 수 있겠는가! 4년이 지나는 사이에 신체와 정신의 마비가 서서히 그러나 착실하게 회복되어 갔다.
...............(중략)
마지막으로 덧붙일 청이 있다. 이제는 거의 지나가버린 그 시대를 인간적 고통과 분노, 상처투성이의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온 기성세대나, 앞 세대들이 심고 가꾼 열매를 권리처럼 여기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맛보고 있는 지금의 행복한 세대의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 직면했거나 처했다면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 보기를. 그럼으로써 이 자서전의 당사자와 대담자가 책 속에서 진행한 것과 같은 자기비판적 대화의 기회로 삼기를,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나와의 비판적 대화도 가질 수 있기를."

'2005년 2월 군포시 산본 수리산 밑에서 리영희'라고 적힌 이 책이 완성되던 그 해 선생님께서는 힘든 병마와 투쟁 중에도 전주의 한 언론단체가 주최한 행사장에 오셔서 불편한 몸을 탁자와 의자에 지탱하시며 1시간 넘게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만 해도 언젠가는 다시 정상적인 몸으로 우리들 곁에 돌아오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끝내 우리 모두를 남겨 놓고 황망히 떠나가 버렸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소망이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다니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리영희 선생님이 지난 2005년 11월 16일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한 시민언론학교에 강사로 참석해 특강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리영희 선생님이 지난 2005년 11월 16일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한 시민언론학교에 강사로 참석해 특강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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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하나인 새들조차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아울러 가지고 시원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의 원리가 아닐까? 왼쪽 날개로만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싶다. 마찬가지로 오른쪽 날개 하나로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싶다. 그런 외날개 새를 한 번 볼 수 있으면 죽어도 원이 없을 것만 같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러고도 늘 "한쪽으로 나는 새들이 대한민국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며 긴장과 경계의 끈을 늦추지 말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남과 북, 보수와 진보가 날선 대립과 강변을 일삼는 이 야만의 시대에 선생님은 눈을 감으셨습니다. 외날개 새를 결국 보신 건가요?    

남아 있는 저희들은 지금 선생님이 그렇게 강조하셨던 20년 전보다 더욱 불안한 날개를 바라 보고만 있습니다. MB 정부와 여권 실세들의 좌파 이념전은 경계조차 없이 우리 사회 전 부분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좌파타령은 정치·경제·사회정책 등 전통적 좌·우의 기준을 넘어 교육·언론·종교·사법까지 무차별적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한쪽으로 나는 새들이 대한민국 상공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과의 전운이 다시 고조되기까지 하면서 이념적 대척점인 '극'의 병리가 지배하는 형국입니다. 

군사독재 시절, 선생님의 글은 우리를 깨우고 눈 뜨게 했습니다

선생님이 글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그건 8·15 이후 근 반세기 동안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온 때문일까요?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 펜의 힘으로 '반세기의 신화'를 일군 선생님은 1970~80년대가 지나고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민주화를 거둔 1990년대 이후 "내가 할 역할은 다했다"고 줄곧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곤 선생님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도 하셨습니다.

고 리영희 선생님.
 고 리영희 선생님.
ⓒ 권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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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선생님의 혜안과 고언이 절실한 때입니다. 선생님이 병마와 싸우시는 동안 대한민국 상공은 다시 희뿌연한 '이념색'으로 뒤덮여 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그럴진대 선생님은 정령 답을 주시지 않으시고 눈을 감고 마셨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신 이후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고통 앞에서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정신의 크기와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느슨한, 또는 한쪽으로 치우친 불합리한 사회현상을 바라보시며 선생님은 늘 이렇게 질책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여전히 선생님의 글을 읽어야 하는지 들려준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정신을 일깨워 진실을 보게 했던 선생님의 모든 글들이 후세에 길이길이 읽힐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쓰신 <전환 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의 저작들은 군사 독재 시절엔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구속감인 '금서'였습니다. 하지만 당국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돌려 읽히며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거짓인 우상으로부터 참된 진실인 이성에 눈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어 그것에서 그친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하다. 진실은 한사람의 소유물일 수가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좌우의 날개가 균등한 곳에서 이제 편안히 쉬십시오

한국전쟁부터 군사독재 시절을 걸쳐 통역장교, 기자, 교수 등으로 활동한 선생님의 글은 이처럼 당대를 후비고 도려내셨습니다. 때문에 선생님 책들은 많은 이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선생님을 기리는 것은 책에 가득 고인 사상과 논리가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각자의 사상과 논리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군사 독재 시절 단골로 자주 드나드셨던 구치소를 선생님께선 '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언제나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에서였다"고 하시면서도 그 와중에 선생님은 늘 좌·우 균형과 진실을 찾는 노력의 필요성을 글로 강조하셨습니다. 아울러 "의식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며 항상 '핵 없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고언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 고언들, 길이길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지금도 "좌·우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적 권력이든 진실을 은폐·날조·왜곡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인식능력과 지식·사상과 판단력에서 좌우 균형 잡힌 이상적 인간과 사회를 목표로 삼고 염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야만의 시대, 선생님의 메시시가 더욱 분명하고 강하게 다가옵니다. 선생님. 이제 편안히 쉬십시오. 육신의 고통이 폭풍처럼 왔다간 그 자리에서 자유를 누리세요. 좌우의 날개가 균등한 곳에서 새롭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시길 앙망합니다. 선생님 영전에 삼가 이 글을 바치며 명복을 빕니다.


태그:#리영희,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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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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