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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오후 3시쯤 나는 대한산업안전협회에서 회사가 규정한 산업안전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거의 모든 교육생이 졸고 있는 그 나른한 시간,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했대요!"

23일 오후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져 폭발하면서 섬 곳곳에서 시커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평도를 방문한 한 시민이 제공한 화면.
 23일 오후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져 폭발하면서 섬 곳곳에서 시커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평도를 방문한 한 시민이 제공한 화면.
ⓒ 시민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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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웅성 시끄러워진 교실. 많은 이들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DMB 방송으로, 트위터로 진위 파악에 나섰다. 뭐지? 설마 전쟁이 났나? 내가 들어간 트위터도 역시 난리였다. 수많은 트위터들이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으며,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대해 한 마디씩 덧붙이고 있었다. 무조건 전쟁은 안 된다는 의견에서부터 좌빨 때문에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까지….

곧이어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전쟁은 안 나는 거지? 그네들이 원하는 건 뭐야? 어찌 민가에 그럴 수 있어?"

아마도 동생에게는 대학원 때 전공이 북한학과였던 나의 대답이 가장 믿을 만한 소식통이었으리라. 이어지는 나의 답문.

"전쟁 안 나. 국지전은 계속 날 가능성이 높지만, 전면전은 없을 거야. 남북 모두 손해라는 건 서로 잘 알고 있거든."

비록 문자는 무덤덤하게 날렸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평도가 낯설지 않았던 탓이다. 또 연평도라니….

1999년 6월의 연평도와 백일휴가

내게 연평도가 그리 낯설지 않은 까닭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1999년 6월의 기억 때문이다. DMZ 내 수색중대 배치 후 RCT(연대 전투단 훈련)로 1개월 정도 늦춰진 백일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던 바로 그때.

당시 뉴스에도 최고의 이슈는 단연 연평도였다. 6월 서해 꽃게 철을 맞아 남북의 어선들이 대치하자 남북한군 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 한가운데 연평도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백일 휴가를 가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이 긴장이 하루빨리 해소되길 기원했지만, 6월과 함께 시작된 연평도 타령은 열흘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듣기도 지겨웠던 연평도. 진짜 이러다가 전쟁이 일어나 휴가 못 가는 것은 아닐까?

결국 사건은 백일 휴가 당일인 6월 15일에 벌어졌다. 나는 오전 9시에 부대에서 나와 민통선을 넘어 40분쯤 문산 역전 식당에 들렀는데, 그곳 TV에서 오전 9시 28분에 터진 연평도 해전을 보도하고 있었다. 휴가 나간 장병들은 모두 대기하라는 자막. 순간 아득해졌다.

멍하니 뉴스만 바라보고 있는데 함께 나간 말년 병장이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TV를 끄더니 결연하게 말했다.

"우리, TV 못 본 거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는 헌병에게 잡혀 부대로 끌려갈 수 있었다. 우리는 시킨 음식도 나오기 전에 무작정 열차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설마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또 하필 우리 부대에 아무 일이 없길 바라며….

드디어 집에 도착. 곧바로 부대에 전화를 걸었더니 고참은 TV를 봤느냐며 전화기 옆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 4박 5일이 지나고 드디어 복귀 날. 막상 부대로 돌아가려니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아하니 이제 연평도 해역은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았지만, 최전방을 책임지던 우리 부대는 아직까지 비상일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혹여 고참들이 이런 비상시국에 막내만 쏙 빠졌다고 갈구는 것은 아닐까?

군용 트럭에 실려 민통선을 지나 임진강을 건너 도착한 부대. 연병장에 내리니 저 멀리 고참들이 줄지어 밥을 먹으러 가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어깨에는 반공멸공 피아식별 띠가 매달려 있었고, 허리춤에는 방독면이 묶여 있었으며 얼굴은 얼룩덜룩 위장을 한 채였다. 이야기인즉슨 내가 도착하기 바로 전 4박 5일간의 비상이 풀렸다는 것이다.

고생했음에도 고참들은 다행히 내게 별말이 없었고, 그날 밤 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바로 위 고참에게 4박 5일간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전해 들었다. 96년 강릉 지역 무장공비 침투 이후로 가장 긴박했다는 바로 그때의 이야기를….

손톱 발톱 깎고 유서 쓴 최전방

비극의 시작은 역시나 우리가 백일 휴가를 출발한 뒤 28분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훈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더니 실제 상황이라며 행정병들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오더라는 것이다. 북한과 전쟁이 났다는 긴박한 외침과 함께.

부대원들은 곧바로 완전군장에 위장까지 한 뒤 집결했고, 중대장은 대원들에게 실탄과 수류탄을 나눠주었다고 했다. 언제 전장으로 투입될지 모르니 계속 대기하라는 명령과 함께. 그러나 위기는 당장 그날 밤 찾아왔다. 부대원들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추진철책(MDL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있는 철책으로 DMZ 안에 있는 GP들을 잇고 있다) 앞에서 매복을 서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문제는 그날 우리 부대가 매복을 서는 지역이 휴전선 155마일 중 근처의 판문점 때문에 유일하게 추진절책 없이 북한군과 직접 맞닥뜨리는 지역이라는 점이었다. 전부터 내려온 이야기에 따르면 추진철책이 세워진 이유가 1960~1970년대 북한군이 MDL을 넘어와 매복을 서고 있는 우리 군인의 목을 많이 땄기 때문이라던데 연평도 해전이 일어난 바로 오늘, 하필 그 추진철책이 없는 곳에서 매복을 서게 된 것이다. 영화 <JSA>를 보면 남북한 부대가 만나 멋있게 악수하는 바로 그 지역이다.

출발하기 전, 중대장은 부대원들을 모아 놓고 손톱과 발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뽑고 유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병사들.

이날 DMZ는 부대원들이 평소에 가던 그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살기등등한 공간, 평소 같았으면 DMZ에서 매복을 서더라도 막내 몇 명 세워놓고 졸기 바빴던 고참들은 매복을 서면서 밤새 한순간도 소총 가늠자에서 눈을 뗀 적이 없다고 했다. 동이 터올 때까지 아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전방만을 주시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악몽 같은 5일이 지나고 비상이 풀렸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연평도 해전의 승전보를 울리고 있었지만, 고참은 그와 같은 경험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물론 군인으로서 국가와 가족을 지키는 것이 의무라고는 하지만, 막상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공간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히 그 뒤로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앞서와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더 이상 겪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히 1년 뒤에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군대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할 뿐이었다. 결국 DJ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전쟁의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99년 6월의 악몽은 군 생활 중 한때의 해프닝으로 치부되었다. 한 때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그 경험이 여느 대한민국 예비군들의 시답잖은 이야기 중 하나로 전락한 것이다.

2010년 11월 남한의 최전방

합참은 지난달 23일 오후 해병대 연평부대 K-9 진지가 북한군의 포격을 받는 사진을 26일 추가공개했다.
 합참은 지난달 23일 오후 해병대 연평부대 K-9 진지가 북한군의 포격을 받는 사진을 26일 추가공개했다.
ⓒ 합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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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0년 11년 현재. 시계가 전혀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때의 추억거리로 전락했던 그때의 악몽이 현실로 되살아나고 있다. 북한의 포격으로 최전방의 군인은 물론이요, 민간인도 죽어나가는 현실. 현재 한반도의 정세는 냉전 이후 가장 일촉즉발의 위기이다. 비록 전면전은 나지 않을 테지만 국지전의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민간인의 죽음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으니 넘어가자. 기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최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군인들이다. 과연 그들은 무슨 죄가 있어 현재 생사의 기로에 서 있어야 하는가.

앞서 기자가 거창하게 10여 년 전의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것은, 결국 한때 전쟁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야 했던 최전방 일빵빵 군인들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비록 지금은 웃고 떠드는 술안주가 되어버린 아련한 추억이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면 전쟁 앞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10년 전의 기억도 이리 끔찍한데 그 위기의 강도가 훨씬 강해진 현재 최전방의 병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번 연평도 포격으로 그들은 얼마나 더 큰 시련을 맞고 있을까?

군대는 매일 되도 않는 정신교육을 시키고, 대통령은 가죽 잠바를 입고 지하 벙커 안에서 군인들을 격려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아마도 지금과 같은 긴장이 더 깊고 길게 진행된다면 현재 최전방 병사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될 것이며 이는 제대 후에도 그들에게 꽤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연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누가 최전방 군대를 지원하겠는가. 게다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돈과 빽만 있으면 면제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꽃다운 젊은이들에게 그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가. 보온병을 들고 폭탄이라 우기는 이가 전쟁이 나면 퍽이나 입대하겠는가 말이다.

연평도에 북한군이 포격을 한 다음날인 11월 24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황진하 의원, 안형환 대변인과 함께 연평도 피해현장을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안상수 대표가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이라며 들고 있던 것이 사실은 불에 타다 만 '보온병'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연평도에 북한군이 포격을 한 다음날인 11월 24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황진하 의원, 안형환 대변인과 함께 연평도 피해현장을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안상수 대표가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이라며 들고 있던 것이 사실은 불에 타다 만 '보온병'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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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24개월 연장?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6일 정부는 '군복무 24개월 환원'을 언급하고 나섰다. 대통령 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4년까지 18개월로 줄이기로 했던 사병의 복무 기한을 24개월로 되돌리자고 건의한 것이다.

비록 청와대는 "선진화위의 건의 사항들은 건의일 뿐이고 청와대와 국방부 등에서 타당성 등을 검토한 후 시행 여부를 확정하게 된다"며 선을 그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놓고 볼 때 청와대는 이렇게 말만 던져놓고 여론의 추이를 본 다음 의사결정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복무 24개월 연장은 현재 위기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표적인 대응방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안보 위기와 관련하여 군 개혁의 필요성이 두각되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병의 머릿수를 늘림으로써 이 위기를 뚫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사병 복무 기간 연장이 지금의 위기를 타파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효과적인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참여정부 시절부터 추진하던 군 개혁을 마다하고, 미국으로부터의 작전권 회수까지 연기해가며 고작 한다는 것이 사병 복무 기한 연장이라면 과연 이 정부는 어떻게 국가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일까? 군대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소위 '쪽수'면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결국 군복무 24개월 환원은 4대강 사업과 부자 감세로 인해 국방예산마저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현 정부가 택한 필연적인 결론이다. 군복무 기간은 그 현실적인 필요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국민들에게 가장 민감한 사항인 바, 국민들의 위기의식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생색을 가장 많이 낼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단호하게 응징한다 해놓고는 예전 정부만큼 군 개혁을 위해 예산도 마련할 수 없는 MB정부. 지금까지 국방부가 강력하게 반대함으로써 무산되어왔던 제2 롯데월드가 현 정부 때 승인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현 정부의 안보의식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지금의 연평도발 위기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전쟁을 막아 국민들을 지켜야 함에도 현재의 위기를 빤히 방치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책임을 군복무 연장 등으로 국민에게 전가시키고자 하고 있다. 하루빨리 정부가 자신들의 임무를 복기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 실린 글에 일부 내용을 추가하고 수정한 내용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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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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