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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탓이죠."

 

13일 오후, 잰 걸음으로 광화문 광장을 지나던 김아무개(44)씨는 세종대왕상 앞에서 '예산안·법안 날치기 무효 걷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을 바라보며 멈칫멈칫하다 걸음을 멈췄다. "공무원이라 말하기 곤란하다"며 인터뷰를 극구 거절한 김씨는, 이번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여당 탓"이라고 곧장 답했다. 

 

걷기대회 행렬에 밀려 잠시 가던 길을 멈춘 권기범(30)씨 역시 "자기 형 돈만 따로 꿍쳐놓는 등 MB가 워낙 시대에 역행하고 있지 않냐"며 "본래 한나라당, 민주당 둘 다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민주당 편을 들 수밖에 없다"고 민주당을 옹호했다. 쪽수 싸움에 밀려 국회가 아닌 장외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민주당을 향한 긍정적인 시각이었다.

 

"요즘은 민주당 편 들 수밖에"... "국회의 최악 사태 양쪽 다 잘못"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광화문 광장 한 편에 서서 옆 사람에게 "저 사람이 손학규"라고 설명해 주던 유동수(28)씨는 "몸싸움하는 걸 보니 정말 질렸다"며 "국회는 최악의 사태를 보여주고 있고, 이는 양쪽이 모두 잘못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유씨는 "민주당 쪽을 지지하던 후배들도 이번에는 (민주당을) 욕한다"며 "장외투쟁에 성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광화문 광장을 돌아 보신각으로 향하는 걷기대회 참가자들을 지켜보던 김아무개(53)씨는 "열심히 목소리를 높여도 모자랄 판에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우르르 몰려가는 모양새가 코미디"라며 "날치기를 했고 안 했고를 떠나 국민들은 '여의도'에 관심 끊은 지 오래"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을 향한 호불호를 떠나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많았다. 낮 12시, 점심시간이 막 시작된 즈음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가던 시민들은 걷기대회 행렬에 눈길을 주며 한 번쯤 돌아봤고,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뿌린 전단을 손에 쥐고는 "너무하긴 너무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시작해 광화문을 거쳐 보신각, 롯데백화점을 돌아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걷기대회 현장에서 마주친 '민심'이었다.

 

"세금은 우리가 내는데, 예산을 실세쪽으로 편중한 듯"

 

남성 의원들과 당직자, 시민 300여 명이 걷기대회를 할 동안 여성 의원들은 롯데백화점 앞에서 가두 피켓시위를 벌이며 지나는 이들에게 '4대강 예산·날치기 법안 무효화를 위한 서명'을 받았다. 서명부스를 지키고 있던 최영희 의원은 "서명하는 이들의 80%가 여성이고 20%가 남성"이라며 "대한민국은 여성이 변화시킬 것"이라고 서명을 독려했다. 

 

"꼭 서명하고 싶었다"며 이름을 적은 은행원 유아무개(52)씨는 "세금은 우리가 내는데 자기들 돈 아니라고 예산이 실세 쪽으로 너무 많이 편중된 것 같다"면서 "(한나라당은) 돈을 모아주는 국민을 설득할 생각은 안 하고 시간이 촉박했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9일 오후부터 장외투쟁에 돌입해 걷기대회, 서명운동 등을 펼치며 시민과 만난 민주당은 민심이 자신들을 향해 쏠리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손학규 대표는 13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8일 이후 둘째 날까지도 폭력국회, 날치기 국회가 야당 책임이라는 국민들의 반응이 있었지만 주말에 서울역에 나가 서명운동을 벌여보니 국민들은 '좀 바꿔 달라, 4대강 사업 막아 달라'며 서명을 했다"며 "시민들의 반응은 분명 달라져 있으며, 민심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조배숙 최고위원도 "한나라당 예산 날치기 과정에서 '형님 과메기 예산'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주도하는 '한식 세계화' 지원의 일환으로 '뉴욕 한국식당' 예산 50억 원도 함께 통과됐다"며 "'마누라 예산' 등의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고 있어 국민들의 (여당을 향한) 반대 여론이 급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학규 "시민들의 달라진 반응, 민심은 바뀌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겨레>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번 예산안 강행 처리가 잘못됐다는 답변이 60%고, 법안을 강행 단독 처리한 것이 잘못이라고 답변한 것이 61%"라며 "특히 20~30대 청년들은 73~74%가 이런 의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하면 그렇게 자랑하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국민이 이렇게 반대하는 건 왜 말하지 않냐"고 꼬집었다.

 

손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국민들이 이제 진실을 알게 되었다"며 "국민과 역사가 우리 편"이라며 다른 의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한편, 민주당은 이러한 '민심' 만나기 장외 투쟁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13일 오후 10시부터 14일 오전 1시까지 촛불집회를 열어 '100시간 서울광장 투쟁'의 마무리를 장식하고, 이후에는 전국 순회 규탄대회를 벌일 예정이다.

 

손 대표는 "14일 오전 1시면 서울광장에서 이뤄지는 사죄와 결단의 100시간이 끝난다"며 "우리의 대장정은 끝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시작돼 인천을 시작으로 28일까지 16개 광역시도 전국을 순회하면서 서명을 받고 국민들의 결의를 다질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민주당, #예산안 처리, #100시간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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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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