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2월 21일 학과 진행하는 졸업생 사은회가 있어서 학교에 나갔었다. 교정 거닐기, 학생식당 이용, 과방과 동아리 방 출입 등 학생 신분으로 이제 할 수 없는 일을 해보았다. 2006년 새내기로 입학하여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학교 구경을 하고 난 후 졸업생 사은회를 하는 학교 근처 횟집으로 이동했다.

대학 졸업은 불안한 삶의 시작?

학과 졸업생 사은회는 맛있는 횟집에서 진행되었다. 교수님과 졸업생과 과 학생회 후배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자리였다. 테이블 마다 각자의 삶에 대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교수님이 일어나셔서 한 마디 하셨다.

"우리과 졸업식 사은회에 전통이 있는데, 졸업생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미래, 결혼, 포부 등에 대해 말해봅시다."

모두 적당히 술도 한 잔 마신 상태라서 진솔한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휴학을 하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잘 되지 않아 올해 다시 학교에 돌아왔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친구, 여러 곳에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매번 떨어지고 있다는 친구, 진짜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요즘 임용고시 합격이 너무 어려워 다른 길을 선택할 까 고민하는 친구, 취직이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 취집(결혼)이나 가고 싶다는 친구, 그리고 모든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고 안정된 삶을 구성한 다음 하겠다고 말했다.

강의실에서는 모두 학생 이라는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었다. 한 편으로는 공감이 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힘겨워 하는 친구들과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난 나만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것 같아 미래에 대해 말하기 조금 주저했다.

"음... 저는 요즘 행동하는 의사회와 사회당이라는 단체,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8년지방 선거에 출마를 하는 것이 가까운 미래 저의 목표입니다. 철학과 교수님들의 지혜를 본받아 모든 사람들이 생각과 삶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만 혼자 달랑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고민도 나누고 앞으로 살 미래에 대해 개척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졸업 이후에도 만나서 서로의 길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다른 길을 걷기 위한 출발

졸업식 사은회가 끝나고 내가 했던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자랑은 해 놓은 상태이지만 나 또한 2010년 전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물론 대학교 3학년 까지 대학생 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하며 미래에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었다. 하지만 4학년을 앞두고 주위 친구들과 똑같이 미래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했었다. 정치인이 되면 최소한 먹고 살 돈은 벌 수 있을까?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으면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도 못하지 않을까? 정치 활동이 어린 시기의 치기 어린 활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중증장애인치과의원 나눔과 열림 개원식
 중증장애인치과의원 나눔과 열림 개원식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행동하는의사회(이하 의사회)라는 단체에서 상근활동가로서 일을 돕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를 통해서 소개 받은 단체였는데 2010년 올해에 부산에서 '중증장애인치과'를 만들기로 했었다. 학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서툴렀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서 장애인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할 수 있었다.

올해 초 의사회 대표님과 차를 타고 부산 역세권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치과 개설 건물을 알아보았다. 처음 조사를 하였을 때 절망이었다. 모든 건물에 계단이 있어서 휠체어 장애인들이 출입 할 수가 없었다. 간혹 턱이 없는 건물 입구가 있는 곳도 있었으나 굉장히 비싼 보증금과 월세를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의 자금과 맞는 건물을 찾더라도 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아 계약을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건물주가 거절한 이유는 '장애인치과'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일반 치과는 되지만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장애인치과'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 다는 것은 최소한의 건강권도 쉽게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인 치과 개원 준비를 하면서 장애인 분들에게 일반 치과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만난 모든 장애인 분들은 일반치과에 대해 똑 같이 얘기 해주었다. 장애인들이 출입 불가능한 시설, 장애인의 신체 속도에 맞추지 않는 의사 등 일반치과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11월 27일 '중증장애인치과의원 나눔과 열림' 의 개원식을 성사시켰다. 개원식을 마치고 12월까지 나는 행동하는의사회의 일을 돕기로 했었다. 하지만 장애인의 삶에 대해 알아가면서 이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덜컥 대학 졸업 이후에도 행동하는의사회에서 일을 하겠다고 회원들과 약속을 해버렸다.

이런 결정을 해버린 이유는 개원을 준비하면서 장애인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활동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내에서라도 장애인 뿐만 아니라 많은 계층 시민들의 건강권을 보장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사회당 중앙위원이 되다

사회당 중앙위원이 된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필자.
 사회당 중앙위원이 된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필자.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행동하는의사회에서 일하는 것에 더해 사회당 중앙위원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평소 학생 때부터 당원으로 활동하며 지켜보고 있던 당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 할 시점이 되자 20대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취직이 잘 되지 않고 미래의 삶이 불안한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당 중앙위원 선거에 출마하여 20대 중앙위원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이명박 시대 사회당 중앙위원이 되다"라는 기사를 통해 20대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를 밝혔었다. "청년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청년이 진보대연합의 앞서 얘기 하며 이명박 정부를 쓰러뜨리겠다" 등의 약속을 했었다.

미래의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을 선택하겠다

2010년을 통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했다. 행동하는의사회를 통해 지역 사회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을 회복하는 것, 사회당 중앙위원 활동을 통해 20대 문제의 대안을 제출하는 것 등을 결심했다. 이것을 결정 한 후에도 고민을 많이 했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미래는 불투명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불투명함이 삶의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했던 결심을 통해 앞으로 다양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고, 또 그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

무엇보다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보다 현재의 행복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위 많은 친구들은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현재 자신의 행복감이 미래의 행복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현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취직 공부에 올인 하여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또 삶에 치여 행복감을 또 다시 희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 현재의 삶 속에서 좋은 관계를 많이 형성하고 행복한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험난한 과정이 펼쳐지겠지만 현재의 관계를 통해 미래의 삶을 개척해나가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졸업, #행동하는의사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