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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2주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트윗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내가 살던 용산이후 마음이 너무 힘들어 다음 만화는 말랑말랑 재미진걸 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시나리오를 짤라치면 그렇게 안 된다.

젠장, 나는 세상의 억울한 사연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용산참사를 그린 만화책 <내가 살던 용산>에 참가했던 만화가 김홍모의 글이었다. 그저 철거민의 이야기로 혹은 불타는 망루로 남았을 그 일이 그에게는 창작이란 과정을 통해서 고통으로 그리고 괴로움의 시간으로 체화된 듯 보였다. 기억이 구체화된 것이다.

푸코는 집단기억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것은 사람들 특히 자신의 역사를 말이나 문서로 남길 수 없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기억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구성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망각과 함께 걸어가는 것처럼 집단기억 역시 망각되기 마련이다. <내가 살던 용산>이나 <이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 역입니다.> 같은 저서들은 이런 집단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책들이다.

기록을 통해서 기억은 역사로 바뀌니 말이다. 하지만 참사의 끔찍함이나 암담함은 그것이 준 충격만큼이나 잊히기 쉽다. 누군가는 용산참사에 대해 그것은 선동이며 가진 자에 대한 모략이라고까지 한다. 또한 개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집단기억은 언젠간 잊히기 마련이고 기록 역시 선택적으로 수용되기에 용산참사도 충분히 집단망각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 2년 전 사람들이 죽어간 망루는 어느새 사라지고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충격으로 새해를 맞이했던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꽝하고 내리쳤던 충격과 짠하게 아팠던 마음이 어느새 약간씩은 풀려 용산하면 아~용산 그랬지라며 0.3초간의 알싸함만이 맴돌기도 한다.

<용산 개 방실이>는 이러한 집단 망각을 붙잡고 집단 기억을 유지시키고자 만든 책이다. 용산참사를 그날 있었던 사건 일에서 벗어나 한 가족의 삶을 요크셔테리어 방실이의 시각으로 담아내면서 기억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오수의 개나 하치 이야기처럼 감동적인 반려견 이야기인 동시에 문화사적 가치를 가진 기록이기도 하다. 반려견의 이야기가 문화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적인 이야기도 모두 문화서적 가치를 가진다.

이를 사적인 기억 생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상의 대화와 개인적 서사, 편지, 일기, 수집품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록하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지만 기록하게 된다면 이는 엄연한 기억이 된다. 방실이의 이야기 역시 그런 관점에서 충분히 문화사적 기록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한 가족의 서사에서 이야기가 출발하여 21세기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여전히 잔존하는 철거민의 문제에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한 것이다.

용산참사 희생자 양회성씨의 '방실이'

책 속에 나오는 방실이 모습
 책 속에 나오는 방실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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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용산참사 희생자인 양회성씨 가족의 이야기를 반려견 방실이를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다. 방실이는 용산에서 삼호 복집을 하던 양회성씨 가족이 기르던 개로 삼호 복집에서 마스코트 노릇을 했던 요크셔테리어이다. 사실 양회성씨와 방실이는 처음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반려견을 낯설어하고 개에 대한 애정이 없던 양회성씨는 방실이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특히 아내 김영덕씨의 강아지에 대한 애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교도 있고 낯가리지도 않는 방실이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양회성씨는 나중에 누구보다도 방실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딸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했다고 한다. 반려동물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중년의 남성과 강아지의 이야기 그 정도로 끝났다면 그저 흐뭇했을 이야기가 용산의 그날 이후 애틋하고 슬픈 이야기로 변하게 된다. 2009년 1월 20일 망루에 오르기 주저했던 양회성씨가 망루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방실이는 그때부터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양회성씨의 장례로 가족들이 돌볼 수 없어 친척에게 맡겨졌지만 방실이는 마치 주인의 죽음을 목격한 것처럼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그러다 정확히 24일이 되던 날 방실이는 세상을 떠난다.

김영덕씨는 방실이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영정사진을 보고 양회성씨의 죽음을 알았고 눈물을 흘렸으며 세상을 떠나던 날은 영정 앞을 두어 바퀴 돈 후 그대로 쓰러졌다고 전한다. 그렇게 방실이는 용산개 방실이가 되었다. 이 책을 만든 출판사 대표 김보경씨는 결국은 용산은 생명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라고 묻는다. 관계와 생명의 이야기로 이를 볼 수 있지 않냐고 말이다. 그간 동물의 관한 책을 냈던 출판사 대표다운 말이다.

사람의 기억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중에 들어보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지속되어 오던 재개발 문제의 상징으로 기억하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MB정권의 레임덕시작이라고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앞서 언급한대로 도시 개발과정에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비극쯤으로 가벼이 여기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제각각인 기억에도 불구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 책이 전하는 것처럼 그 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 아니겠는가? 반려견을 딸이라 부르고 누구보다 예뻐하며 어쩌면 한평생 방실이가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같이 돌봐주고 싶었던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 아닐까 싶다.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건, 그것이다.

용산 2주기, 어느새 우리는 그곳에 사람이 살았고 그곳에서 사람이 세상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남겨진 가족들이 울었음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용산개 방실이> / 최동인(지은이) / 정혜진(그림) / 책공장더불어 / 2011-01-06 /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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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개 방실이

최동인 지음, 정혜진 그림, 책공장더불어(2011)


태그:#용산개 방실이, #책, #리뷰,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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