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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설 명절인데 그냥 지날 수야 있나요?"

 

"먹고 살기도 빠듯하지만 어쩌겠어요? 고기 몇 근이라도 사려면 그래도 마장동 축산물시장이 가장 값이 싸고 좋잖아요? 그래서 지금 고기 사러 가는 길이에요"

 

앞서 걷던 늙수그레한 부부에게 혹시 고기 사러 가느냐고 묻자 대답하는 말이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고기시장이 휑하고 찬바람만 싸늘하다, 지하철 5호선 마장역에서 내려 축산시장으로 가는 길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입구도로를 분주하게 드나들던 축산물유통 차량들이 꽁꽁 얼어붙은 길가에 즐비하게 서있는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우리민족의 큰 명절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온 토요일(29일) 오후 1시쯤이었지만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있는 축산물시장은 입구부터 너무 한산했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작은 운반용 손수레에 재활용 폐지를 주워 싣고 나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추워 보인다.

 

양쪽으로 쭈욱 늘어서 있는 가게들도 추위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오른편의 축산물 가공 가게들은 앞 유리창을 닫고 안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씩 보일뿐이다. 왼편의 가게들도 어쩌다 오가는 사람들을 혹시나 하고 바라보는 상인들의 눈길만 간절해 보일뿐 가게 안으로 선뜻 들어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가게 한 곳은 고기를 진열해 놓는 앞면 탁자가 아예 비어있다. 가게 안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웃 가게에 물어보니 장사를 포기한 것 같다고 한다. 어설픈 방역과 대책으로 전국을 휩쓴 구제역의 여파는 이십 몇 년 만의 추위라는 올겨울 날씨보다도 더 상인들을 추위에 떨게 하고 있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예년처럼 설밑경기로 북적거리는 가게는 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40대 후반쯤의 상인 아주머니에게 설명절 경기가 어떠냐고 물으니 "말도 마세요" 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번 설 대목엔 손님도 별로 없지만 구제역인지 뭔지 때문에 물건(축산물)도 없어요. 뭐 경기랄 것도 없어요, 그나마 날씨까지 이렇게 추워서…아니, 날씨보다도 마음이 더 춥네요"

 

시장 북문 밖으로 나서자 먹자골목이 나타난다. 찬바람만 감돌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골목입구에 있는 순대와 족발 등을 파는 가게 앞에 엄마와 딸들로 보이는 한 가족 세 사람이 서있을 뿐 골목길엔 바람결만 싸늘했다.

 

 

"서울에서 값이 제일 싼 시장인데도 전보다 많이 올랐네요, 소고기는 아예 포기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 목살 조금 샀는데 1KG에 1만 8000원씩 줬어요"

 

남문 쪽으로 걸어 나오다가 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만났던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노부부는 시장 가방을 가볍게 들어 보이고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축산물 판매가격이 서울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시장이었지만 동물재앙이라는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여파는 어느 시장도 피할 수 없나보다. 가게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상인들의 표정도 하나 같이 어두웠다.

 

지난 연말부터 전국을 휩쓴 구제역 여파와 강추위 때문에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마장축산물시장'을 둘러보고 다시 마장역으로 나오는 길, 시장 입구 빌딩사이에 시장상인협동조합에서 내걸어 놓은 '설 고향 길 안녕히 다녀오십시오'라고 쓴 정다운 인사말 펼침막이 상인들과 국민들의 마음인양 휘몰아치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태그:#설밑, #마장축산물시장, #구제역, #이승철, #명절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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