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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대체 : 8일 오후 7시 40분 ]

 

여권 수뇌부의 개헌 드라이브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8일부터 10일까지 이어지는 의원총회를 거쳐 개헌 공론화의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박근혜 전 대표 등 친박계 상당수가 첫날부터 불참하는 등 '김빠진 잔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8일 오후 4시간 동안 이어진 의총에는 총 171명 가운데 125명이 참석했다. 전체 의원 중 70% 이상의 참석률로 성황을 이뤘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홍사덕·박종근·이해봉·이한구·이혜훈·유승민·이성헌·최경환 등 친박 의원들의 공백이 눈에 띄었다. 3선 이상의 중진 남경필·권영세·송광호·이상득 의원의 모습도 의총장에서 볼 수 없었다.

 

▲ 한나라당 개헌 의총, 친이-친박 갈등만 노출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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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개헌 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은 의총이 열리는 시각 트위터에 서너 꼭지의 글을 띄웠다. 의총 참석으로 의원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는 대신 외곽에서 개헌의 군불을 때우는 길을 택한 셈이다.

 

이 장관은 "4년 연임제는 확고한 소신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후보가 된다면 공약으로 걸고 차기정부에서 절차를 밟아 국민투표를 거쳐 할 수 있다"는 박근혜 전 대표를 포함해 2007년 대선주자들의 발언들을 정리해 내놓았다.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도 회의 시작부터 의총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 대표는 "이른바 '87년 헌법'은 민주화와 국민기본권 정착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완료했다. 정파적 이익에 상관없이 의원들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고, 김무성 원내대표도 "오늘 의총은 (17대 국회) 당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려는 자리다. 좋은 방안이 도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인 이주영 의원은 "민생 문제가 있으니 논의를 하지 말자고 하면 어느 세월에 할 수 있겠냐?"며 "다소간 국민들의 마음과 멀어질지 몰라도 국민들을 한데로 몰아가는 것이 집권여당의 책무다"라며 조속한 논의 시작을 호소했다.

 

한편으로, 이 의원은 "17대 국회의 합의대로라면 18대 초반에 했어야 했는데, 그때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였다"며 "사실 이때 논의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룬 것에 대해 한나라당도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회의론자들, 회의 불참으로 개헌 논의 '자연사' 시키겠다?

 

비공개 토론이 시작되자 친이 모임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들이 연달아 단상에 올라 분위기를 잡아갔다.

 

"헌법은 물과 공기 같은 존재인데, 87년 개헌 이후 만 23년이 흘러 소중한 헌법이 '헌 법'이 됐다. 물이 썩은 것처럼 치명적이 될 수 있다. 개헌과 민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게 18대 국회의 소임이다. 현실적으로 전면 개헌은 어려우니 권력 구조 부분으로 논의를 좁혀야 한다." (박준선 의원)

 

"87년 헌법은 6·29 선언 이후 두 달 만인 8월 30일에 만들어졌다. 시간은 충분하다. 자라나는 후손들이 당당하게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개헌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김재경 의원)

 

"선거가 과도하게 많다. 이렇게 선거가 많으면 누가 대통령 돼도 일을 할 수 없다. 대선과 총선 시기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개헌은 대선주자들의 뜻이 중요하니 절충을 해서 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임동규 의원)

 

"구제역을 겪으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더욱 느꼈다. 살처분인지 백신전환인지 대통령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될 때 국민의 많은 지지를 얻어도 재임 시와 퇴임 후 많은 혼란 겪었다. 개헌은 기본적으로 정략적일 수밖에 없다. 논의를 통해 합의점 찾아가야 한다." (김영우 의원)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지만 헌법에는 장애인 차별 금지 조항이 없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18대에서 논의 기구를 발족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정선 의원)

 

"국회에 들어와 개헌 논의하는 공식기구가 없다는 것에 충격받았다.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헌법에 재정건전성 문제를 명시해야 한다. 균형 재정을 명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도 명시해야 한다. 구제역 때문에 개헌을 못 한다면 우리나라 소가 살아있는 한 개헌을 못 할 것이다." (고승덕 의원)

 

"개헌 관련 여러 가지 오해가 싹트고 있다. 이런 것들까지도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 정치 체제만이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강승규 의원)

 

"헌법 내용 관련해 의총을 2단계로 해야 한다. 특위와 대야 협상 전략을 담당할 기구를 구성하는 작업을 이번 의총에서 마무리하자." (권택기 의원)

 

이처럼 개헌 추진론자들은 "당장이라도 당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친박계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찬반 논의 자체에 불참함으로써 개헌 논의를 '자연사' 시키겠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

 

총 25명의 발언자 중에서 반대 의견은 2명에 불과했다.

 

차명진 의원은 ▲ 개헌 논의가 간단치 않은데, 국력소모만 일으킬 것 같다 ▲ 대통령 권한집중의 문제는 법률 개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 권력구조에 손 대려면 권력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직접 얘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김성태 의원도 "3일간의 토론이 끝나면 의원들에게 찬성·반대·중립의 선택을 요구할 텐데 이런 것부터 잘못이다. 3일 동안 개헌 의총을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3일 동안 용비어천가를 들으라는 얘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3일 동안 용비어천가 들으라는 얘기"

 

친이계 의원들의 개헌 당위론에 친박계 의원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들을 회유하려는 제스처도 나왔다.

 

이윤성 의원은 "이번에 개헌을 잘 마무리해야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 개헌 문제에 대한 여러 의구심에 대해 정공법으로 대처하고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현 의원은 "개헌으로 차기 대통령의 힘을 빼려고 한다"는 친박계 의원들의 의구심을 의식한 듯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늘리되 차차기부터 분권형으로 가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친이계의 장제원 의원은 의총이 끝난 뒤 트위터에 "대체로 개헌자체에는 동의하는 분위기여서 개헌논의기구 발족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는 촌평을 올렸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친박계의 윤상현 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국민들이 개헌이 아니라 민생경제 살리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오늘은 안 했지만 반대 얘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병수 최고위원도 "개헌을 찬성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드라이브를 걸고, 개헌을 반대하거나 관심 없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며 "친이계에도 찬반이 있지 않나? 개헌을 정파 간 대립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서 위원은 "이걸 사흘 동안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 아는 내용"이라며 국회를 나섰다.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구동성으로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해주길 바랬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태그:#개헌, #서병수, #이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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