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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는 5~10cm가량의 눈이 내릴 것이라고 했지만 산간 내륙인 이곳(강원 횡성 안흥면 상안리)에는 20cm에 육박하는 폭설이 내렸다. 옆에 사는 선배의 복분자 하우스 한 동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운데가 폭삭 내려앉았다.

"잡혀있던 집수리 봉사는 예정대로 할 거여. 눈은 오늘 하루 햇빛만 쐬면 어느정도 녹을 것이고, 하기로 맘먹었던 것이니 해치워야지. 명록이네 하우스는 일정 봐 가며 도울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고."

강릉 출신인 박용은 청년회장은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구수하다. 회원의 하우스 피해도 도와야 하지만 혼자 사시는 마을 할머니의 집수리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을회관 뒤 곰둔이골에 사시는 손병남(78) 할머니는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와 무릎 신경통으로 겨우 거동을 하는 정도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를 오막살이집에 혼자 사시는데, 여기 저기 손 볼 곳이 생겨나지만 혼자 손 볼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이다.

지난해 면 통합복지협의회에서 지붕을 말끔히 새로 단장해 주었지만, 오래 전 합판으로 바람만 막아놓은 처마 밑은 바람이 마음대로 들락거리고 현관 겸 베란다 겸 창고로 쓰는 공간을 돌려막고 있는 플라스틱 함석은 여기저기 낡고 깨져 비바람도 막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손병남 할머니의 낡은 구옥
 손병남 할머니의 낡은 구옥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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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초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날을 잡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마을 청년회에서 올해는 손 할머니 댁 집수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던 폭설이 내려 약간의 혼란이 빚어진 것. 예정대로 집수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와 함께 청년회원의 하우스가 폭설 피해를 당함으로써 도와야 할 일이 또 하나 생긴 것이다.

의견을 모은 결과 당초대로 집수리를 하기로 하고, 무너진 하우스 복구 작업은 눈이 녹는 대로 다시 날을 잡기로 했다.

토요일(26일), 아직 해도 들지 않은 이른 시각에 청년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제각각 전기드릴이며 절단기, 망치 등 장비를 챙겨왔다. 하얗게 쌓인 눈을 스치며 골짜기를 휘감아 쓸어내리는 바람이 제법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회원들은 주저 없이 달려들어 낡은 함석울타리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서까래 밑에 각목을 대고 합판을 붙여야지 이 사람아."

"아니지요 형님, 먼저 처마 밑을 합판으로 메운 후에 밑 부분을 고쳐야지요."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 모두가 나름 전문가이다. 이러다가는 종일 걸려도 집수리를 끝내지 못하겠다면서도 제각각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다행히 건축일을 하는 청년회 막내 뻘 길형군이 연장을 손에 잡고서야 뭔가 질서가 잡혀가는 모습이다.

실력 발휘하는 청년회원들
 실력 발휘하는 청년회원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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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름 전문가
 모두가 나름 전문가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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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이 훌쩍 지나갔지만 예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집 모양을 내는 것 보다 혼자 사시는 연로하신 할머니가 춥지 않게 지내시도록 세밀하게 손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체 낡은 구옥이라 작업은 더욱 더디기만 하다.

말끔하게 단장된 집
 말끔하게 단장된 집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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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회원들이 준비한 삼계탕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청년회원들은 3시쯤 작업을 마무리 했다. 초록색 투명 함석으로 말끔하게 집이 새 단장되고, 처마 밑 휑하던 공간들은 모두 메워졌다. 집 주변 곳곳을 돌아보는 손 할머니의 표정이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할머니, 회원들이 재주가 없어 예쁘게 고쳐드리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바람 새는 곳은 없을 테니 따뜻하게 지내세요. 어려우신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요."

"아유, 새집을 만들어 주셨네요. 늘 이렇게 도움만 받아도 되는 건지. 늙은이가 마땅히 대접할 것도 없고…. 정말 고마워요."

"고마워요." 손병남 할머니
 "고마워요." 손병남 할머니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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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안1리 청년회는 지난해에도 정신지체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원○○군의 집 울타리 교체 봉사를 실시했다. 청년회원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연 1회 꼭 필요한 이웃에 대해 사랑을 실천하기로 정한 것. 필요한 자재는 자체 자금으로 구입하고 회원 전원이 참여하여 직접 몸으로 봉사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박용은 청년회장
 박용은 청년회장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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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마을회관 마당에서는 작은 삼겹살 파티가 이어졌다. 무사히 예정된 봉사활동을 마치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이다. 박용은 청년회장의 얼굴은 일찌감치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가슴 뿌듯함을 미소에 가득 담고 회원들 하나하나에 술잔을 권하다보니 취기가 먼저 오른 것이다.

"우리 청년회원님들 정말 수고르(를) 마이(많이) 했서(어)요. 아, 거기 후배님들 잔만 들구(고) 있지들 말구(고) 한잔씩 쭉 들 마세(셔)."

청년회장 특유의 걸쭉한 강릉 사투리에 회원들이 한바탕 웃음으로 술잔을 들이킨다. 이웃에 대한 자그마한 사랑실천이 산골마을에 따스한 봄을 몰고 왔다.


태그:#집수리, #봉사, #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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