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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겉그림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겉그림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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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김혜원 저, 오마이북 펴냄)는 <오마이뉴스> 김혜원 시민기자가 독거노인 17분을 취재, 연재한 기사(2009.11.13~12.31) 중 12꼭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첫 주인공은 박복례 할머니. 할머니는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허름한 주택가에 자리한 낡은 주택의 뒷방에서 홀로 5년째 살고 있는데, 요즘 걱정이 많다. 재개발 때문에 조만간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할머니가 가진 돈으로 방을 얻기가 쉬울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가족 하나 없이 50년 가까이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기초생계비조차 지원받지 못하는지라 한 복지재단이 후원해주는 쌀과 김치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50년 전에 이혼한 남편이 버젓하게 남편으로, 전처의 자식들이 할머니 호적에 실려 있는지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휴우, 이젠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내가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살림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도우미 아줌마(정부 파견 독거노인 생활지도사)가 도와줘서 이만큼이나 하고 사는 거야. 입만 살았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나 같은 늙은이 나라에서도 나 몰라라 하는데… 굶어 죽은들 알겠어…사람 집엔 사람이 드나들어야 사는 것 같지. 늙은이 잊지 말고 자주 찾아와"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중에서

할머니는 몇 년 전 낙상으로 허리를 크게 다쳐 돌아눕는 것조차 고통스럽단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지라 도우미 아줌마의 주1회 방문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사람의 정이다. 거동조차 힘들만큼 몸이 불편해 밖에 쉽게 나갈 수 없어 사람이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다.

박복례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동안 이따금씩 보도를 통해 접했던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떠올라 참 쓰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이야기 끝에 취재 이후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할머니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후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었고, 덕분에 병원비와 기초생활비를 도움 받을 수 있게 되었다니 말이다.

하루에 두세 꼭지씩, 쉽게 읽지 못한... 가슴 쓰린 어르신들 이야기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혼의 충격으로 실명한 아들과 청소년기의 두 손자를 먹여 살리고자 하루 종일 골목을 누비며 폐지와 빈병을 줍고 살아가는 성말용 할머니. 그리고 몇 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얻게 된 관절염과 허리통증에 대한 치료는 커녕 공공근로라도 해서 병든 아들과 손자를 먹여 살려야만 하는 주삼순 할머니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이분들뿐이랴. 사실 책을 통해 만나는 어르신들의 사정이 모두 딱한지라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는 쉽게 읽지 못하고 분분한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며 읽은 책이다.

그럼에도 이 두 분의 이야기가 자꾸 밟히는 것은 당신 몸 건사하기도 힘든 연세에 딸린 가족들까지 먹여 살려야만 하는 절박한 삶의 무게가 오죽할 것이며, 언젠가는 건강하지 못한 자식과 어린 손자를 두고 가야만 하는 엄연한 사실 때문에 한순간인들 상심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싶기 때문이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왔던 2009년 겨울. 서울에 살고 계신 열두 분의 독거노인을 만났다. 대낮에도 햇볕 한 조각이 허락되지 않는 손바닥만한 지하 월세 방에서 이불 한 채와 그릇 몇 개가 전부인 초라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는 노인들. 습하고 어두운 반지하방에서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의 삶을 외로움과 가난, 질병을 벗 삼아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의 삶을 책으로 묶어낸 이유는 측은한 삶을 드러내 값싼 동정을 이끌어내자는 것이 아니었다.

사는 모습과 생김새는 달라도 여든을 바라보는 우리의 부모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그분들 삶에 대한 연민과 존경 때문이었다. 또한 지나온 그분들의 삶을 통해 독거노인이 된 지금의 외로운 삶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생의 어디쯤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중에서

책은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독거노인 한분 한분을 만나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사시는지, 어떻게 독거노인이 되었는지,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등을 인터뷰한 것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는지라 책을 읽자 작정하고 5~6시간 읽으면 거의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넘겨 읽지 못해 하루는 두 꼭지, 또 하루는 세 꼭지, 어떤 날은 그동안 책을 통해 만난 어르신의 삶이 불현듯 떠올라 하던 일을 멈추고 서성거리다가 한 꼭지, 이렇게 며칠 동안 잘라 읽어야만 했다. 어떤 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책을 통해 만나는 독거노인들의 쓸쓸하고 외롭고 남루한 일상들이, 부양할 능력이 전혀 없는 자식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병든 몸이지만 병원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폐지 등을 주워 간신히 생활비를 벌며 살아가는 노인들의 처지가, 나이가 들수록 따뜻한 것을 원하는 우리 몸의 당연한 요구조차 포기한 채 살아가는 노인들의 현실이 너무나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유독 추웠던 지난 겨울 폐지를 주으시며 거리를 헤매던 내 가까운 이웃 할아버지와 자주 이용하는 시장 언저리에서 이제는 거의 쓸모가 없어진 옷핀이며 지퍼 같은 것들을 펼쳐놓고 팔던, 이제는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하나 팔아 달라 내미시던 손을 왜 외면하고 말았던가'하는 후회와 함께.

"복지혜택 받는 노인들, 공무원에게 머리 숙이는 현실"

<나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저자인 김혜원 시민기자
 <나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저자인 김혜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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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든 적든 정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는 노인들 대부분은 일선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해당 업무를 하는 직원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현장조사를 나온 직원들에게 자칫 잘못 보이면 그나마 받던 지원조차 끊기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식뻘 되는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중략)

지금처럼 호적기록과 한두 번의 의례적 방문만으로 수급자를 선정하면 실제 가족과 생활정도를 제대로 알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혜택을 받아야 할 많은 사람들이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반대로 불량수급자가 늘어난다면 이는 현행 수급자 선정 방식의 중대한 허점이 아닐 수 없다.

독거를 택한 노인들이 수급자 지정을 원하는 경우는 대부분 오랫동안 자식들과 연을 끊고 지내왔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자식들에게 도움받기를 거부하는 경우, 혹은 자식에게서 직간접적으로 버림받은 경우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어떤 경우든 자식들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중에서

저자는 단지 어르신들의 어려운 현실과 절박한 사정, 독거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기구한 사연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처럼 우리의 노인복지 현실을 노인들의 현실과 맞물려 이야기함으로써 대안을 제시, 마땅한 대책을 고민하게 한다.

우리 사회 노인복지(문제)에 대한 저자의 이와 같은 고민과 목소리가 전문가들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간 읽은 관련 책들이나 웹을 통해 접했던 어떤 전문가들의 이야기보다 현실적으로 와 닿았노라 말하고 싶다. 책 덕분에 고독사 등과 같은 노인문제가 보도될 때만 잠깐 관심을 두었다가 잊기 예사였던 우리 사회 노인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얘기도 덧붙이고 싶다.

또한, 책 덕분에 시어머니에 대한 섭섭하고 불편한 생각들이 조금 희석된 것 같다. 책을 읽은 뒤 두 분 중 한 분만 남으면 내 살림이 아무리 빈한해도 함께 살리라, 이분들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처참하게 삶을 마치게 하지는 않으리라 마음 다져지는 걸 보면. 의미있는 기획기사로 내게 오랫동안 남아 있던 시어머니에 대한 앙금을 훨씬 부드러워진 아량으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준 <오마이뉴스>와 김혜원 기자님에게 고마운 마음도 덧붙여 전하고 싶다.

"치매에 걸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모시고 가평 할머니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로부터 독거노인 관련 기획기사를 제안받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 쉽지 않은 취재였지만 저 역시 어르신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르신들이 들려주신 이야기 속에서, 치매에 걸리신 이후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가고 있는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 장년 시절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아프고 고되었던 지난날. 어르신들과 만날 때마다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사라지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옹졸함만 사무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난 지금은 존경과 감사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제 삶의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저자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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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글: 김혜원, 사진: 권우성·남소연·유성호, 오마이북, 2011.03.31, 값:1만3000원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 독거노인 열두 명의 인생을 듣다

김혜원 지음, 권우성.남소연.유성호 사진, 오마이북(2011)


태그:#독거노인, #고독사, #노인복지, #기초노령연금,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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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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