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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 12일 전인 2008년 2월 13일, KBS 노동조합(옛 노조, 위원장 박승규, 현 KBS 보도본부 사회부장)은 KBS 노보 첫 머리에 실은 '정연주 사장님께'라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나의 퇴진을 요구하는 첫 글을 내보냈다.(증언 54).

1주일 뒤인 2월 20일 열린 노조 비대위에서는 사장 관련 결의문을 채택했는데, 그 내용은 "이제 KBS의 미래를 생각하고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3주 뒤인 3월 12일 '정연주가 죽어야 KBS가 산다'면서 퇴진 압박의 고삐를 더욱 죄어들었다.

한나라당·수구언론·KBS 노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정연주가 죽어야 KBS가 산다"는 3월 12일의 노조 성명서는 바로 그즈음 쏟아져 나온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퇴진압박과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11일 <동아일보> 배인준 논설주간은 그의 기명 칼럼 '노무현 식객들의 농성'에서 다시한번 정연주 KBS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11일 <동아일보> 배인준 논설주간은 그의 기명 칼럼 '노무현 식객들의 농성'에서 다시한번 정연주 KBS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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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노조 성명서가 나오기 바로 전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세력들이 야당과 정부 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요직에 남아 새 정부의 출범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하루 빨리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 배인준 논설주간은 '노무현 식객들의 농성'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정연주)는 언필칭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를 좌파권력의 나팔수로 전락시켰다…'정연주식 버티기'가 국민 사이에 통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식객들은 한 정권이 끝나면 곧장 자리를 털고 사라질 줄 알아야 식객 자격이나마 있다"고 주장했다.

KBS 노조가 '정연주가 죽어야...' 성명을 발표한 바로 3월 12일 그 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산하기관장들 중 분명한 철학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성향이 다른 새 정권에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문화 관련 기관장들은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인 3월 13일 <조선일보>는 '밥자리에 매달리는 좌파 문화 기관장들의 얼굴'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는 11개 소속 기관과 34개 산하 기관이 있다. 노무현 정권은 이 자리를 정권과 좌파적 이념을 공유한 사람들로 메웠다…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선선히 자리에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사설이 나온 바로 그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다시 "노무현 정권에서 그 정권의 이념과 철학에 맞춰 임명된 사람들은 정권교체가 됐으므로 (새 정부가) 자신의 이념과 맞는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사의를 표하고 재신임을 묻는 게 옳은 일"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3월 17일 "정연주 사장이 사퇴 0순위... 정연주 사장으로 인해서 KBS가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전락... 국민의 자산인 전파를 좌파이념의 선전도구로 전락시켰던 사퇴 0순위의 정연주씨는 임기제를 구실로 방송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마땅히 자신의 거취를 정리해야 옳을 것이다"고 말했다.

KBS 노조 "수신료 인상 실패 책임지고 떠나라"

정연주  전 KBS 사장(자료사진)
 정연주 전 KBS 사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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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의원의 발언이 나오고 나흘 뒤인 3월 21일, 강아무개 부산 동의대 총장은 신태섭 교수를 총장실에 불러 "신 교수가 KBS 이사를 계속하면 학교가 어렵다. 언론, (KBS) 노조, 정치권, 교육부에서 신 교수를 징계하라는 압박이 심하다. 학교에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그리고 신 교수에게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하려면 당신이 KBS 이사를 사퇴하는 수밖에 없다"며 KBS 이사 사퇴 압박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3월 25일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고, 그는 취임하자 바로 김금수 KBS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틀 뒤 함께 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는 '정연주 사장 퇴진에 KBS 이사회가 역할을 할 것'을  요구했다(최시중 위원장은 그 뒤 5월 초, 김금수 이사장을 다시 만나 '정연주 때문에, KBS 때문에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으며, 이명박 정부는 정연주가 있어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에는 최시중 위원장이 김금수 이사장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가 KBS와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후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 이 기간 동안 한나라당과 수구언론, KBS 노조가 강력한 삼각 편대를 이루며 나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갔다. 4월에 접어들어 KBS 노조의 사퇴압박은 본격화됐다.

4월 8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박승규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집행부는 "수신료 인상 실패의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라"고 압박을 가했다. '책임을 지라'는 말은 '그만 두라'는 말이었다. 노사협의회 자리에서도 느낀 사실이지만 노조 입장은 분명했다. 수신료 인상의 가장 큰 장애가 정연주 사장이니, 수신료 인상 실패의 가장 큰 원인도 정연주 사장이다, 그러니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4월 10일에 나온 KBS 노조 특보에 실린 '임시 노사협의회 논쟁'에는 노조와 회사측(주로 내가 발언) 사이에 오간 발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노측 : 수신료 현실화가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사측 : (사측 대표(사장)는 실패라는 단어에 대해 반박하지 않으면서) 실패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다뤄졌기에 빚어진 결과다. 공영방송의 큰 틀을 유지하기 위해 설득을 하면 우리의 진정성이 통하리라 생각했다.
노측 : 사측 대표는 어떤 일을 했나. 구체적으로 답해 달라.
사측 :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노력했다. 이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리라 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문제라고 본다. 노측은 물 컵의 물이 많이 비었다고 보는 입장일 것이고, 사측은 까다로운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정 부분 성과가 있어 물이 많이 찼다고 본다.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노측 : NHK의 경우 회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정 사장은 임기중 9차례나 대국민 사과와 8차례 이사회 사과가 있었다. 그러나 말뿐이지 NHK 회장처럼 사퇴하는 용단을 보이지 않았다.
사측 : ...구성원이 5000명이 되다 보면 상식적이지 못하고 온당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 있다... 그러나 (사과를 한 이유가) 전체가 욕을 먹어야 하는 구조적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 문제로 임원이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나야 한다면 방송법에 정한 3년 임기를 채우는 사장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노측 : 수신료 인상의 걸림돌이 뭐냐. 바로 사장이다. 사장은 "한나라당은 정연주가 아니면 올릴 수 있다는 단계까지 왔다"고 말했다. 현실이다. 돌파하기 위해 (사측) 대표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반드시 성취해야 하고, 본인이 걸림돌이라면 비켜나야 하지 않겠는가.
사측 : 원인은 복합적이다. 수신료 문제가 정치적 시각에서 다뤄지고 정책적 입장에서 다뤄지지 못했다.

'KBS 총체적 위기의 해답은 정연주 사장 퇴진 뿐' - 선전포고

이런 노사협의회 이후 4월 10일에 나온 KBS 노조 특보의 1면 제목은 '총체적 위기 책임 요구에 정 사장 , "할 말 없다". KBS 미래 안중에도 없고, 자리에 대한 집착만'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노조는 강원도 양양 솔비치 콘도에서 중앙위원회와 집행위원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이제 더 이상 정연주 사장에게 KBS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해답은 정연주 사장 퇴진뿐이다"라고 밝히고, "정연주 사장의 사퇴를 조기에 이끌어 내는 것을 주된 활동 목표"로 정했다.

이런 내용은 4월 15일자 KBS 노보특보에 '정 사장 있는 한, KBS의 미래는 없다'는 제목의 기사에 잘 나와있다. 이제 KBS 노조가 본격적으로 '정연주 퇴진'을 목표로 비상체제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선전포고였다.

그런데 바로 이날 아침 자 <조선일보>는 2면에 실린 기사에서 "정연주 KBS 사장과 같이 좌파 이데올로기 성향으로 방송을 이끌었던 인사들은 퇴출해야 한다"는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의 발언을 전했고, 그 뒤에 이어진 기사의 제목은 'KBS 노조 '정연주 사장 퇴진 운동'이었다. <조선일보>는 "KBS 노조가 오는 22일부터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가기로 했다"면서 "노조가 '방송구조 개편 등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준비에 돌입했다"고 관계자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수구언론과 KBS 노조, 마치 핫라인이 설치된 듯

2008년 6월 정연주 KBS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든 시민들
 2008년 6월 정연주 KBS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든 시민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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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KBS 노조와 수구언론은 서로 먹잇감을 잘 주고 받는 그런 관계 같았다. 그들 사이에 마치 핫라인이 있는 것처럼 서로 주고받는 정보의 교환이 매우 밀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KBS 노조가 '정연주 퇴진' 운동에 올인하면서 비대위를 구성했고, 아울러 퇴진 서명운동까지 벌이겠다고 하니,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 볼 때에는 이런 우군이 없었다.

4월 15일 KBS 노조 특보에는 '정 사장, 나가야 하는 이유'라는 별도의 글에서 내가 KBS를 그만 두어야 하는 이유를 크게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정 사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이유이다. 둘째, KBS 사장으로서 공영방송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 이 또한 정 사장이 책임져야 할 이유이다. 셋째, 도덕성 치명타... 정 사장이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수신료 인상 실패와 적자 경영의 책임을 지라는 것, 그리고 "병역 면제 이중 잣대와 국감장 거짓말 등 도덕성 면에서도 흠결이 있다"는 등 도덕성 문제를 이유로 내걸었다. 아마도 이런 '도덕성 흠결' 문제를 KBS 노조와 바깥의 뉴라이트 단체 등에서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였기에 그 뒤 검찰과 감사원에서 그렇게 샅샅이 내 뒷조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감사원에서 특별 감사를 시작할  때 "1주일이면 날려버릴 자신이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4월 중순부터 KBS 노조는 본격적으로 '정연주 퇴진' 운동에 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조의 퇴진 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도를 높여갔다. 4월 초의 성명서전은 서막에 불과했다.


태그:#정연주, #KBS, #KBS 노조, #박승규, #수구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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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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