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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쓰러진 지 1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오늘(29일)로 대략 20개월, 일수로 607일, 시간으로 1만 4568시간을 어머니는 의식 없이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누워계신 곳(한때는 병원, 지금은 요양원)에서 매일 1~2시간 계시다 돌아오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꿋꿋하게.

 

아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꿋꿋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대놓고 힘들다 내색하시진 않지만, 뭐랄까… 그래, 흔히 하는 말로 말끝을 흐리실 때도 있었다.

 

"어떡하든 너희 엄마는 내가 끝까지 돌본다"

 

며칠 전이었다. 저녁 늦게 만나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끝 무렵에 평소와는 달리 아버지가 고민을 슬쩍 내비치셨다. 지금 하시는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시는 아버지의 올해 나이는 78. 당신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매우 만족해하신다. 하루라도 건물을 비우면 불안하다며, 어머니가 쓰러진 이후에도 한사코 혼자 건물 옥탑방에서 사실 정도로, 하는 일에 애착이 강하시다. 그런데 건물 사정으로 내년 초에는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단다.

 

아버지는 손자들 만나면 용돈 주고, 가끔 자식네들 다 불러 저녁 식사를 '쏘기'도 하며, 여기 저기 후원금도 내신다. 다 당신께서 버신 돈으로 말이다. 또, 예전엔 어머니가 없으면 집안일이라곤 전혀 못 했는데, 이젠 혼자서 빨래하고 요리까지 하신다.

 

'어떡하든 내 한 몸 내가 건사한다. 그리고 너희 엄마도 내가 끝까지 돌본다'는 아버지. 이 모든 걸 아버지는 몸소 일해서 번 돈으로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니….

 

어머니랑 두 분이서 알콩달콩 사실 때, 두 분에겐 꿈이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바닷가에서 두 분이 함께 펜션을 운영하는 꿈. 이 꿈을 위해 두 분은 참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을 모으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결국 아버지는 꿈이 깨졌다며 그동안 모은 적금이며 보험을 깨 어머니 병원비로 쓰셨다. 만일, 이번에 하시는 일까지 그만두게 되면 아버지는 또 한 번 상심하실 터다.

 

아버지, 최선을 다하셨잖아요...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 어떤 말이 아버지에게 위안이 될까.

 

'다 잘 될 거예요.'  참, 공허하다.

'아버지, 이젠 쉬셔야죠.' 아버지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러던 차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버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그러고는 '하실 만큼 하셨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 뭐 이렇게 말씀드렸다. 별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하면서…. 아버지는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이날 이후 아버지 처지를 자주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 처지여도 아버지처럼 할 수 있을까? 내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고 나 홀로 옥탑방에서 생활한다, 어떡하든 아들딸에게 부담 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아내도 돌보고, 생활도 영위해 나간다, 팔순을 눈앞에 둔 나이에…. 정말 내가 이럴 수 있을까?

 

연로한 몸도 몸이지만 무엇보다 외로워서 난 아버지처럼 못 할 거다. 가끔 우리와 저녁 식사를 하고는 집에서 주무시라는 말을 한사코 거절하고 홀로 건물 옥탑방으로 올라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다. 아무리 '이제는 익숙하다'고 하시지만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방을 들어설 때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

 

자식들이 모두 근처에 살아서 언제든 오셔서 주무셔도 되고, 같이 살아도 되건만, 아버지는 한사코 혼자 사시겠다고 한다. 어머니가 옆에 있는 것과 자식이 옆에 있는 것이 아버지에겐 그리도 다를까? 어머니의 빈자리를 새삼 실감한다.

 

팔순이 낼모레지만 아버지에게는 하시고 싶은 일이 또 하나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아버지는 종종 사람들에게 교리를 강의해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실제 여러 차례 강의대에 서신 적도 있는데 내 기억으로도 청중이 꽤 호응했다. 아버지라면 틀림없이 잘 하실 거다.

 

아버지!

 

만약 일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진정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이제, 어머니 간병비나 아버지 생활비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지가 하고 싶은 강의하시며 즐겁게 사세요. 누워계신 어머니도 아버지가 즐겁게 사시길 바랄 겁니다. 자식들인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암울한 상황에서도 의욕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아버지, 힘내세요!

 


태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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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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