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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에서 주로 25년을 넘겨 근무하면서 외국의 교육지표 및 교육문화를 비교하는 가운데 늘 우리교육의 미래전망에 대해 자문자답하곤 했다. 지금 내린 결론은 한국의 중등교육의 경쟁력이 근본부터 의심에 부쳐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성적의 국제비교 등에서 한국이 핀란드와 함께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는 통계수치는 한국교육의 많은 문제를 인식하는데 실패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교육투자를 하지 않는 정부의 잘못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래의 중고등학교 학생수를 보면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여전히 최하위권 3~4개 나라 속에 포함되어 있다. 통계자료는 18~20명이지만 실제 대도시는 이 수치의 두 배 이상이다. 인천, 고양시 등의 학급당 학생수는 적게는 평균 35명에서 많게는 46명에 이른다. 학급당 학생수가 과밀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교실혁명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교육적 상식을 배반하는 정부와 이를 촉구하지 못하는 시민의식이 자리한 곳이 한국이다.

한국의 중고교 학급당 학생수는 여전히 OECD 국가중 가장 열악한 국가들에 포함되고 있다.
▲ 2008년의 OECD 교육지표,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의 중고교 학급당 학생수는 여전히 OECD 국가중 가장 열악한 국가들에 포함되고 있다.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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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편견이 온존해 있다.
군사독재로부터 연원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학생과 교사들의 표현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최근 2011-6-30일 6개 시도 진보교육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독립 기구인 가칭 '국가교육위'를 만들자고 하며 교육혁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사안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교육감들이 특정 이념에 편향되어 있다고 치부했다. 이념대립이 무의미한 현대의 21세기에 이들은 여전히 해묵은 '이념'을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의 방어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이 민주노동당을 후원함으로써 후진적인 교육을 개선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단위학교에서 교사들이 불우한 학생을 돕기 위해 장학금을 조성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을 후원 혹은 당원으로서 직접 정치일선에 나가 전국단위의 불우한 학생실태를 조사하여 구제하는 것은 작은 아름다움을 넘어 정치로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치유책이 된다. 정치와 교육은 분리될 것이 아니라 결합되어야 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 것은 인간 만사가 정치에 의해 해결되고 또 모든 인간은 정치적 해결의 능력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생들과의 수업에서도 정치적 중립성은 이제 해석을 달리해야 한다. 즉 교사들이 정치적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적 정치적 견해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판단은 학생들에 맡기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실천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견해와 이를 반대하는 MB정부의 입장 모두를 소상히 소개하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치적 중립성'은 곧 '교사들이 정치에 대해 침묵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므로 교육자들은 방관하고 있다가 정책에 따르기만 하라'는 다분히 독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정치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회의 어떤 영역도 발전할 수 없으며 교육, 그리고 정치 그 자체도 모두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둘째, 경쟁일변도 및 평가에 집착하는 관행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12월 8일자 타임지 기사(http://www.time.com/time/covers/0,16641,20081208,00.html)에 의하면, 미 워싱턴시 교육감 한국계 미국인 미셀 리가 성과급 및 교원평가를 주무기로 개혁을 시도한 바 있다. 그녀는 학생들의 읽기, 쓰기 등 기초교육이 안되는 학교를 문닫고 교원자격이 현격히 떨어지는 교사들을 퇴출시켰다. 미셸 리는 교원평가의 객관성을 놓고 교원노조와 충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읽기 쓰기가 안되는 경우는 없다. 대신 기초학력이 취약한 80~100%의 중학생들이 대도시 인문계 고교로 배정받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전문계 고교의 정원이 넘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정원내의 진학이 가능한 인문계 고교로 배정되는 것이다. 한 학교에서 60~70여명씩 배정된 이 학생들은 교과내용에 흥미가 없어 종일 잡담, 장난, 낮잠으로 하루를 보낸다. 원천적으로 직업교육으로 길을 터줘야 할 이 학생들을 끌어안고 있기에도 버거운 상태인데 일제식 성취도평가, 교원평가가 무차별적으로 진행된다.

한국에서도 교과탐구, 학생지도, 업무협조 등에서 취약한 일부의 교장, 교사들이 교원평가를 통해 퇴출까지 거론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적정선에서 교원평가를 활용하는 것과 교원평가에 집착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정부가 평가에 집착하므로 단위학교에서는 예산과 교원 성과급을 의식하여 단기간에 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야간에 자율학습을 종용하고, 하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충수업을 실시한다. 이것이 초등학교까지 확대됨에 따라 학력경쟁이 전인적(全人的) 발달을 저해한다는 사회의 우려를 뒤늦게야 인식하고 당국은 최근에 공문을 통해 강제 자율학습 및 보충수업을 실시하지 말라고 한다. 교육행정의 철학적 빈곤은 강제 보충, 자율학습을 금지한다는 선언까지만 진행되고 그 이상은 기대할 수 없다.

중학교의 자율학습, 초등학교의 보충학습이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는 실정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여기서 중대한 경쟁력 상실은 학생들이 역사, 문학, 철학 등에서 깊이있는 독서를 더욱 더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미 과도한 수업시수와 교과부담, 입시위주의 풍토로 인해 학생들의 독서실태는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수행평가에서 독후감을 받을 때 한국의 중고생들은 인터넷에서 베껴오는 것에 대해 심정적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미국 유수의 대학으로 유학간 한국의 학생들이 낙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교사들의 행정업무가 상시적으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초중등 교육잡지 '우리교육' 2009년 12월 호, 39쪽에 의하면, 경기도의 김영순 장학사(교원업무경감대책 담당)와 학교가 공조하여 공문서류를 절반으로 간소화한 사례가 있었다. 교사들이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의 영역은 너무도 많다. 즉 외부의 탐방학습 기획과 정산, 모의고사 성적표의 전산입력, 부서내의 시설 개보수에 따른 결재서류 작성, 출장 등에 의한 수업교환, 대학입시 관련 공문서 처리, 교내의 각종 시상대회 기획과 상장 준비, 비교과 활동의 기획 등이다.

설상가상으로 교내에서 시험출제를 담당한 부장교사가 학교의 중간-기말고사 시험출제를 마치 전국단위 수능출제 하듯이 집요하게 종용하면 교사들의 휴식은 고사하고 교과탐구와 학생상담의 시간은 현저히 실종된다. 교사가 작성하는 서류도 큰 하자 없으면 통과시키거나 서류생산 자체를 요구하지 말아야 하지만 학교의 일상은 매일 감사와 장학지도를 받는 형국이다. 이러한 관행들이 점점이 모여 교육경쟁력은 현장에서 더욱 훼손되고 있다.

여러 해 전 일본의 한 고교에서 교사들의 책상에 행정서류 대신에 수업시간에 참고할 각종 최신 통계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던 사례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선진국에서 교사들은 대답한다. "교사들의 본 업무는 수업하고 책 읽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업무서류는 행정보조원들이 다 처리하므로 우리는 수업과 학생과의 면담에 전념해요!"라고 한다.

한국의 교사들은 출근하면 행정보조원 한 명 없는 각 사무실에서 업무서류부터 챙겨야 하므로 수업준비가 늘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경쟁기제로 무장된 MB정부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정작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현장의 폐단을 알지 못하며 알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계약직과 정규직을 가릴 겨를도 없이 시급히 전국의 초중등 학교 각 사무실에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교육의 진정한 경쟁력은 요란하고 현란한 정치논리의 장막 뒤로 사라질 것이다. (계속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시리즈로 기사가 나갈 예정입니다.



태그:#중등교육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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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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