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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박아무개(25)씨는 한 대부업체에서 550만 원을 빌렸다. 지방에서 올라와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을 받아 생활해왔지만 2학기 학자금 대출이 여의치 않자 당장 등록금과 생활비가 급해진 것이다.

"전 학기에 성적이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장학금을 받지 못했고, 정부학자금 대출 대상에서도 제외돼버렸어요. 그리고 집 사정도 여의치 않아서…."

박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일단 졸업을 해야겠단 생각에 대출을 받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예요"라며 상환문제를 걱정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6월 말 현재 대학생들의 대부업체 대출건수는 4만8000건, 이들이 빌린 돈은 794억6000만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 말보다 대출 건수 57.2%, 대출액 40.4%가 증가한 것이다.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해 연체로 등록된 대출금도 118억  원으로, 1년 전의 66억 원보다 77.5% 증가했다.

조사는 총자산 100억 원 이상의 대형 대부업체 40개사 중 대학생 대출을 취급하는 28개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중소규모 및 당국의 관리·감독이 미치지 않는 불법 대부업체로 확대하면 대출 사례는 더 늘어난다.

이러한 상황이지만 학자금대출을 받는 대학생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반값등록금 논의가 유아무야 되고 말아 대학생들은 여전히 높은 등록금 부담을 져야하는 데다가 올해 정부지원 대학 장학금 예산과 학자금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학자금 대출 이자율을 낮출 수 있는 한국장학재단 출연금 130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또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ICL)' 이자 대납 예산을 2010년 3015억 원에서 1898억 원을 줄인 1117억 원을 편성했으며, 군 복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자 면제 제도 및 대졸 미취업자에 대한 학자금 이자 지원 사업도 폐지했다. 또한 차상위계층 대학생 장학금도 올해 2학기부터 폐지되면서 관련 예산도 805억 원에서 64.3% 줄어든 287억5000만 원만 책정되는 등 대학생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부모님이 신용불량자여도 대출이 가능하다"

금감원은 대부업체만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했지만 대학생들은 대부업체에서만 돈을 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8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학생 381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빚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외에 제2금융권(18.4%)에서 대출을 받거나 카드(11.8%)로 돈을 마련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금리가 낮은 '정부 대출' 및 '제1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대학생들이 주로 찾게 되는 제2금융권 업체를 직접 방문해서 상담 받아보기로 했다. 2학기 등록기간 다가오고 있는 지금, 제2금융권 업체에서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대학생들의 문의와 상담전화로 분주했다.

등록금을 모두 마련하지 못해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 대학생으로 위장하고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A캐피탈을 찾았다. 이 업체에선 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것 같았다.

이 업체는 대게 전화와 인터넷으로 대부분 업무를 진행하는 만큼 기자의 직접방문에 놀라는 듯했다. 사무실 한 쪽에 위치한 상담실로 안내받고, 잠시 앉아 있으니 말쑥하게 생긴 남자 직원이 들어왔다.

수석팀장이라고 소개한 그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사무실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부터 물어서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곧 바로 핸드폰이 본인명의인지와 함께 사전조회 얘기를 꺼냈다. 사전조회를 하면 대출이 되는지와 된다면 얼마나 가능한지 바로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시스템이 바뀌어서 사전조회를 한다고 해서 조회기록이 남지 않으며, 단순 조회 시에는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상담을 받는 동안 지속적으로 신용조회를 해볼 것을 요구했다.

이에 기자는 "대학생 대출 조건을 알아보러 온 것인지 당장 돈이 급한 것은 아니다"라며 신용조회를 사양했다. 그러자 기자의 나이, 군필 여부, 부모님 생존과 동거 여부, 신용카드 사용여부, 핸드폰 명의관계, 과거 연체 이력 등을 물은 뒤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1000만원 까지 당일 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는 질문에 한 명문사립대에 다닌다고 거짓답변을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충분하다. 금융업체에서 학교와 직군을 좀 따진다. 좋은 학교 다니는 사람은 더 좋은 조건에서 더 쉽게 대출이 된다."

상담을 받아본 결과, 부모님 동의 없이 본인신용만으로 대출가능하며, 부모님이 신용불량자라 하더라도 대출이 가능했다. 대출기간은 '만기일시상환'으로 5년까지 연장 가능하며, 대출 가능액수는 신용등급에 따라 300만 부터 1500만 원까지 다양했다.

수석팀장은 "대학생 학자금 대출 금리는 신용도에 문제가 없다면 평균 24.5% 수준"이며 "과거에는 30% 후반 수준이었지만 대학생들의 현실을 고려해서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에게 고금리를 받는 것보다, 이자 부담을 조금 낮춰 다수의 대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박리다매'가 남는 장사라는 현실적 판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어 팀장은 "정부에서 주는 학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틈새공략해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며 "제2금융권의 24~31%에 이르는 금리도 싼 것이 아니지만, 불법사금융만큼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업체 총 매출의 15% 정도가 학자금 대출사업 매출이며, 비중이 점점 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1위~50위 대학리스트 있고 순위 별로 금리가 달라져"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 B사 입구 모습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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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찾은 B사는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는 대학생들 사이에 유명한 업체로 규모는 A 캐피탈보다 작았다. 업체의 매출 90% 이상이 대학생학자금대출인 곳으로 대학생 대출 전문 업체였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B사의 보안시스템은 철통같았다. 잠겨 있는 문에는 '통화+XXXX번을 누르시면 문을 열어드립니다 ^^ ★두드리지마시고 눌러주세요★'란 메모가 붙어있었고 실제로 두드려보니 반응이 없었다.

메모에서 시킨대로 왼쪽에 설치된 보안기기를 누르니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로 오셨죠?"라는 물음에 "등록금 대출을 알아보러 왔어요"라고 답하니 문이 열렸다. 한 여자 직원이 나와 기자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대학생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라서 그런지 20여 명의 직원들 대부분 젊은 여자였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상담실 책상에는 대출 상품을 설명하는 책자가 놓여있었다.

잠시 뒤 여자 직원이 음료를 들고 들어왔다. 아무개 주임은 나이와 어느 대학교 다니는 지부터 물었다. 이어 그는 "대출 사용 용도에 따라서 가능 여부가 다를 수가 있다"며 사용 여부와 액수를 묻기에 등록금 비용을 대기 위해서 5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기존에 정부학자금을 받은 적이 있는지", "학교에 특별 신청을 해보았는지" 등을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기자는 "계속 받아오다가 이번에 못 받게 되어서 돈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에 그는 이해가 된다는 투로 "원래 장학금재단에 학교별로 대상자 제한이 없었는데, 1년 전부터 생겼다"며 "한 학기당 몇 명 이렇게 딱 정해져 있어서 특별 신청도 안 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B사는 대학생이 가장 많이 찾는 업체"라 소개하며 "대학생 학자금 대출 금리는 20~30% 사이로 100만 원 빌린다 했을 때 한 달에 2만 4000원 정도의 이자가 붙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부모님이 알지 못하게 비밀보장을 해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용등급 심사 때에는 "OO대학교 학사관리과인데요,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취업 진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OO분이 자녀분 맞으신가요?"라는 식으로 부모 확인 작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연체되는 일만 없으면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마다 등급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상위권 대학 1위부터 50위까지 순위를 매긴 리스트가 있고 순위 별로 금리가 달라질 수 있다"며 "50위에 속하지 않은 대학은 심사 시 금리상정에도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도권 대학인지 지방대학인지에 따라 나눠지고, 의대 및 로스쿨 등 특수 대학에도 기준이 다르게 적용된다"며 "모든 금융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부·학과까지 따지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 업체에서만 대학생 70만 명이 대출받았다"

주임은 "대학생들이 빚더미에 앉는 것이 안타까워서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며, "상환계획을 확실히 세우고 자신이 있을 때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라"라고 조언했다.

그는 "대학생들이 처음엔 등록금으로 대출을 받았다가 대출이 쉽게 되는 것을 보고 다른 용도로 쓸 때에도 학자금 용도라고 거짓말을 하고 추가 대출을 받는다"며 "일단 부결(대출불가 판정)이 나면 조회기록이 남고, 신용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업체에서도 최대한 부결이 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대출을 받아 가느냐?'는 질문에 "5년 정도 업무를 했는데, 우리 업체에서 거의 70만 명이 거래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것이 진짜인지 과장된 답변이지 알 수 없었다. 금융감독원이 밝힌 대부업체 대학생 대출 건수인 4만8000건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번 취재를 통해 수입이 없는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쉽게 고액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대학생의 상환능력보다는 그 부모의 상환능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업체들은 모두 주소변경 말소기록과 가족관계가 빠짐없이 들어간 주민등록등본 제출을 요구했다. 이는 대학생으로부터 변제가 여의치 않게 될시 부모에게 채권 추심을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엔 부족하다. 한때 정치권에서 활발하던 반값등록금 논의도 실종돼 버렸다. 그러는 사이 대학생들의 암담한 현실을 '대출시장'으로 공략하는 대부업체들만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2학기 등록금 고지가 날아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민석기자는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대학생 대출, #학자금 대출, #대부업체, #반값등록금,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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