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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금) 오후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찾았다. 진포(鎭浦)는 군산의 고려 시대 이름, 당시엔 호남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는 진성창이 지금의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에 있었다 한다. 진성창의 곡물을 배를 이용하여 수도 개경(개성)으로 옮기는 조운제도를 운영했다고.  

군산 내항 부잔교(뜬다리) 앞에 조성된 진포해양테마공원은 세계 최초 '함포해전'으로 기록된 '진포대첩'(1380년)의 역사적 현장이다. 광장에는 퇴역한 위봉함(수송선)과 상륙장갑차, 각종 공군기(7대), 탱크(4대), 자주포(2대), 해양경비정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그중 학생들의 체험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위봉함을 둘러봤다. 

6백 년 해전사(海戰史)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위봉함'

위봉함 모습. 퇴역 군함이지만 제법 당당한데요. 전투함이 아니어서 무기는 기관포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위봉함 모습. 퇴역 군함이지만 제법 당당한데요. 전투함이 아니어서 무기는 기관포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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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함(4200t)은 1945년 1월16일 미국에서 상륙함(LST 849)으로 건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상륙작전 등에 투입되었다. 이후 미군이 14년간 사용하다 1959년 1월 13일 우리나라에 인수되어 위봉함(LST 676)으로 명명되었다.

상륙작전 및 군수물자를 수송했던 위봉함은 전장 99.6m, 전폭 15.3m, 홀수 3.96m, 마스트높이 23.5m로 육지의 10층 건물에 해당되며 수송 능력은 승무원 125명(작전병력 500여 명), 수륙양용전차 15대, 트럭 15대 등을 싣는 당시로는 대형 수송함이었다.

1965년 월남전에 참전하는 등 52년간 해군의 중추적인 임무를 수행하다가 지난 2006년 12월31일 명예롭게 퇴역한 위봉함은 2007년 12월 해군과 협약을 통해 군산시에서 무상으로 대여받아 진포해양테마공원에 전시되고 있다.

진포대첩 전시관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진포대첩 전시관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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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 년 해전사(海戰史)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진포대첩관', '4D영상관' 및 '병영생활체험관', '전쟁유물전시관' 등을 갖춘 위봉함은 3층 함장실, 취사장, 4층 조타실, 5층 전탐실, 6층 함교 등 해군함정 본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초중고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인기가 높다.

지하 1층에는 '일일 해군 체험' 주제로 병영생활 체험(식당, 침실, 화장실, 욕실 체험), 위봉함 이야기, 우리나라 해군의 위상과 미래비전을 알리는 공간이 들어서 있다. 지하 2층에는 '최무선과 함께하는 군산역사 여행'을 주제로 타임 터널, 과거에 만난 최무선 장군, 승리의 진포대첩, 4D영상관, 'Dream Hub 군산' 등의 전시실을 꾸며놓았다.

갑판과 지상층에는 '위봉함에서의 특별한 여행'을 주제로 위봉함을 움직여라(조타실, 전타실, 함교에서의 체험), 낭만의 갑판(선상 웨딩마치), 무대(선상 콘서트), 최무선과 기념촬영, 미니바 등을 설치해 놓았다.

해설사가 전하는 방문객들의 추억담

여름방학 숙제(유적 찾아보기)를 위해 왔다는 군산 회현 중학교 조수빈(1학년), 강영식(1학년) 학생이 설명문을 꼼꼼하게 읽고 있습니다.
 여름방학 숙제(유적 찾아보기)를 위해 왔다는 군산 회현 중학교 조수빈(1학년), 강영식(1학년) 학생이 설명문을 꼼꼼하게 읽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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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함에 상주하는 김옥분(54세) 문화관광해설사는 "하루 방문객이 수백에서 1천 명이 넘을 때도 있다"라며 "대부분 관광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한 외지 분들이지만, 지역 청소년들의 단체관람과 방학숙제를 위해 개인적으로 오는 학생도 많다."고 소개했다.  

김 해설사는 "20년을 배에서 생활했다는 전 함장님도 다녀갔다"면서 "훈련 및 실습을 위해 과거에 승선했거나 병역 의무를 위봉함에서 마친 예비역 해군 장병과 장교도 많이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초로(初老)에 접어든 60-70년대 파월장병들도 추억을 더듬기 위해 찾아왔다면서 보름 가까이 항해하며 겪었던 고생담을 들려주기도 한다고.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아내와 아들 부부 손자손녀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이 배를 타고 월남에 가다가 부분마취만 하고 맹장수술을 했는데, 의사들의 대화를 듣고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때를 잊지 못한다'며 감회에 젖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물망이 걸려 있던 선체 앞부분. 여기저기에 총탄자국 흔적이 보입니다.
 그물망이 걸려 있던 선체 앞부분. 여기저기에 총탄자국 흔적이 보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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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4후퇴 당시 북에서 타고 온 배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도 간혹 있다고. 김 해설사는 그물망을 선체에 내걸어야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질 거라며 그물망 설치를 건의하는 노인의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지금도 기억이 뚜렷한데, 선체에 내려진 그물망을 죽기 살기로 기어올라 승선할 수 있었어요. 총알은 날아오고, 올라가다 떨어지면 죽었으니께. 선체에 총탄 자국도 많이 남아 있을 텐데···. 하여간 전쟁, 죽음, 피난의 상징인 그물망이 배에 걸려 있어야 옛날 일들이 더 생생하게 느껴질 거요."

"쥐들과의 전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병사들이 이용했던 이발소 내부. 거울과 면도칼 등을 놓았던 선반이 옛 추억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병사들이 이용했던 이발소 내부. 거울과 면도칼 등을 놓았던 선반이 옛 추억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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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실에서 설명하는 김옥분 관광해설사
 의무실에서 설명하는 김옥분 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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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도 대위 시절 위봉함 기관장으로 1년 남짓 근무했다는 이영광(가명) 해군 대령을 만났다. 1990년대 초 신혼 때가 생각난다며 반가워하는 아내를 보고 사복차림의 이 대령을 알았는데, 노부모를 모시고 왔다는 그는 얼굴과 이름 공개 사양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현재는 육상에서 근무한다는 이 대령은 위봉함을 보니 옛 전우들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친근감이 간다며 근무할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당시 배에는 이발소도 있었고, 수술실도 갖추어져 있었는데 '쥐들과의 전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허허 웃었다.

"쥐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어요. 팔뚝만 한 쥐들도 있었지요. 고민 끝에 육지에서 고양이를 몇 마리 가져다 놓았는데 쥐를 잡지 못하는 거예요.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들이 뱃멀미를 해서 쥐들이 앞으로 지나다녀도 멀뚱멀뚱 바라만 보더라구요.(웃음) 그래도 높은 파도가 몰려올 때는 쥐들이 사람보다 빨리 움직입니다."

쥐 얘기를 듣는 순간 10톤 미만의 작은 어선에도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자리 잡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쥐들은 식량을 축내기도 하지만, 위험사태를 사람보다 정확히 예측한다고 해서 또 한 번 놀랐기 때문.

현역 해군 대령에게 듣는 위봉함

대형 솥이 여러 개 걸린 주방, 이곳에서 배식을 받아 식사는 식당으로 내려가 했다 합니다.
 대형 솥이 여러 개 걸린 주방, 이곳에서 배식을 받아 식사는 식당으로 내려가 했다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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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령과 함께 다니며 식당, 침실, 의무실, 이발소, 함장실, 기관장실, 부장실, 포술장실(포를 관리하는 장교) 등을 확인하고 설명을 들었다. 식당과 침실은 장교와 사병이 따로 이용하도록 구별되어 있었다.

이 대령이 대위로 기관장이었을 때 함장은 중령이었고 장교는 7-8명 되었다고 한다. 30대 초반에 생활하던 기관장실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기도 했던 이 대령은 오십대 초반이 되어서 오니 고향처럼 반갑기는 한데 들고나는 통로를 잘 모르겠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1960-1970년대 수송선이 부산항에서 월남까지 13-15일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 대령은 지금은 퇴역해서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당시 위봉함은 승무원(125명)과 파월장병(500여 명)이 보름 동안 먹을 식량과 기름을 중간에서 공급받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수송선이었다고 말했다.

 최무선 장군과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갑판에서 바라본 함교. 퇴역 군함이지만, 위용이 있어보였습니다
 최무선 장군과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갑판에서 바라본 함교. 퇴역 군함이지만, 위용이 있어보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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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할 때는 장병들이 갑판에서 족구와 축구도 했는데 공이 바다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끈을 길게 묶어 사용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장갑차와 트럭 등 군 장비를 갑판에 싣고 다녔다며 장갑차를 아래에서 올리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람이나 간단한 물자를 이송할 때 바다로 내려서 사용하는 주정(단정), 선박의 움직임으로 차량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단단하게 고정하는 래싱(Lashing) 장치, 함장이 명령을 내리는 함교(부리지), 방향과 회전각 속도를 측정하는 자이로 등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갑판에서 내려왔다. 

위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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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진포해양테마공원, #위봉함, #군산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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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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