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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문학'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유월항쟁 등 굵직굵직한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친일문인, 군사독재정권에 빌붙은 추한 문인들이 남긴 작품에서부터 온몸을 던져 독립운동을 펼치며 독재와 맞서 싸운 전사문인들이 남긴 아름다운 작품들까지 몽땅 다 알몸으로 뒤엉켜 있다.
      
도서출판 '푸른사상'이 우리나라 근현대 주요 문학작품을 몽땅 아우르는 '오늘의 한국문학' 전집을 펴내고 있다. 푸른사상은 '오늘의 한국문학'을 모두 50~60권으로 전집을 기획, 1차(1906~1930년), 2차(1930년대~1970년), 3차(1970년대~2000년대)로 나눠 펴낸다. 그 첫 번째 열매가 이광수 <무정>, 심훈 <상록수>, 채만식 <태평천하>다.

푸른사상은 31일 "'오늘의 한국문학'은 원문을 철저하게 분석해 원문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뒤편에 용어 풀이를 넣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며 작가연보와 작품목록도 충실하게 실었다"라며 "이인직의 소설과 강경애의 <인간문제> 등을 잇따라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늘의 한국문학' 편집위원은 소설가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와 안남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문학평론가 윤애경 창원대 교수, 소설가 박형서 고려대 교수 등이다. 이들은 서문에서 "우리는 이 전집에서 과거의 전집들에서 보게 되는 오류를 바로잡아 작품의 서지와 텍스트의 본래적 모습을 충실히 반영하는 데 주력했다"고 적었다.

한국문학사 첫 근대적 장편소설 <무정>

이 소설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근대적 장편소설이다.
▲ 이광수 <무정> 이 소설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근대적 장편소설이다.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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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또 고개를 숙이고 그린 듯이 앉았다. / 대체 영채는 지금까지 처녀였을까 하였다. 칠팔 년을 기생으로 지내면서 처녀로 있을 수 있을까 하였다. 또 매음하지 아니하고 기생 노릇을 할 수가 있을까 하였다. 한두 번은 모르되 열 번 스무 번 남자가 육욕과 돈으로 후릴 때에 영채라는 계집아이가 족히 정절을 지켰을까 하였다."-145쪽

'오늘의 한국문학' 첫 번째 책은 친일문인으로 낙인찍힌 이광수 첫 장편소설 <무정>이다. 이 소설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근대적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반봉건 이념과 계몽사상, 자유연애와 새로운 결혼관, 신교육과 기독교적 세계관 등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언문일치와 플롯을 중심으로 한 구성 등 '형식'이라는 측면에서도 새로운 작품이어서 우리 문학사에 새로운 물무늬를 남겼다. <무정>은 그때 뜨거웠던 '개화'를  이형식, 박영채, 김선형 등이 펼치는 삼각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이 소설은 계몽사상을 지닌 이상주의 성격은 예전 이념들과 부딪쳤지만, 그것은 그때 젊은 지식인들이 바라는 꿈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 형식씨는 박사가 되어가지고 오시오. 여자도 박사가 있나요?' / '예. 서양은 물론 여자도 있습니다. 일본 여자도 한 사람 미국서 박사가 되었다가 연전에 죽었습니다' 하고 얼른 선형을 보았다. 부인은 '아니, 여자 박사가 다 있어요?' 하고 놀라며 웃는다. 장로도 여자 박사가 있는 줄은 몰랐었다."-267쪽

지금에 와서 아주 해묵은 것처럼 보이는 이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할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광수가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가 쓴 장편소설도 친일을 했을까. 그건 아니다. 문단에서 친일문인이었던 서정주를 놓고 '문학과 친일은 따로' 혹은 '문학과 친일은 한몸'이라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한마디 못 박고 싶다. 친일문인이 쓴 작품이라고 해서 읽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그가 왜 친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뿌리부터 그가 쓴 작품을 통해 자세히 더듬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세대들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가릴 수 있지 않겠는가.

춘원 이광수는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1세에 호열자로 부모를 잃고 두 누이동생과 함께 고아가 된다. 1905년 친일단체 '일진회' 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가지만 학비 중단으로 귀국한다. 1907년에는 국비유학생으로 다시 일본으로 간 뒤 도산 안창호가 외친 도쿄 연설에 큰 감명을 받는다.

1910년에는 잠시 귀국하여 오산학교 교원생활을 거쳐 1915년 다시 일본으로 가 와세다 대학 철학부에 입학한다. 그 뒤 1917년 1월 1일부터 근대 장편소설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한다. 1919년에는 '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한 뒤 안창호 민족운동에 크게 공감하며 임시정부에서 펴내는 <독립신문> 사장을 맡는다.

1921년에는 귀국한 뒤 논문 '민족개조론', '민족적 경륜'을 발표하면서 물의를 빚지만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이순신', '흙', '유정' 등 많은 작품을 남긴다. 1937년에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9년 '북지황군위문'(北支皇軍慰問)에 협력하고 조선문인협회 회장을 맡는다. 이듬해 가야마 미쓰오로 창씨개명하고 전국 곳곳을 돌며 친일 연설을 한다. 8·15 해방 뒤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구속된 뒤 병보석으로 나오지만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된 뒤 그해 10월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상록수> 읽으며 지금 우리 농촌 속내 엿본다

<상록수>에는 심훈이 쓴 단편소설 14편이 실려 있다
▲ 심훈 <상록수> <상록수>에는 심훈이 쓴 단편소설 14편이 실려 있다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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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면 나머지 오십 명을 돌려보낼꼬?' / '이제까지 두말없이 가르쳐오다가 별안간 무슨 핑계로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한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기는 죽어라 싫건만 무어라고 꾸며대지 않을 수도 없는 사세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보아도 묘책이 나서지를 않아서 그는 하룻밤을 하얗게 밝혔다."-136쪽, '제삼의 고향' 몇 토막

'오늘의 한국문학전집' 두 번째인 <상록수>에는 심훈이 쓴 단편소설 14편이 실려 있다. 쌍두취행진곡, 일적천금, 기상나팔, 가슴속의 비밀, 해당화 필 때, 제삼의 고향, 불개미와 같이, 그리운 명절, 반가운 손님, 새로운 출발, 반역의 불길, 내 고향 그리워, 천사의 임종, 최후의 한 사람이 그 작품들.

1930년대 농촌문제를 다룬 대표 소설 <상록수>는 그때 브나로드 운동 일환으로 <동아일보>사에서 주관한 장편소설 현상모집에 응모해 당선된 작품이다. 농촌계몽운동을 주춧돌로 삼은 이 소설은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이 이 세상 작은 밀알이 되어 새로운 교육을 통해 지식이 없는 농민을 일깨우기로 마음을 다잡고 농촌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치는 내용이다. 

이들은 강습소를 열어 문맹퇴치에 나서면서 일제 침탈을 거칠게 꼬집고 그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농민들에게 자주독립사상을 심는다. 이 작품집 곳곳에는 '현실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작가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상록수>는 우리 민족 스스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롭게 일깨운다. 

"목자를 잃은 양과 같이 하나 둘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영신이 돌아온 뒤에 신입생이 열씩 스물씩 부쩍부쩍 늘었다. 때마침 농한기라 어른들은 물론 오십도 넘는 노파가 손녀의 손을 잡고 와서는 '죽기 전에 글눈이나 떠보게 해주시유' 하고 진물진물한 눈으로 칠판을 쳐다보고 '가-갸 -겨-'하고 따라 읽는 것을 볼 때 영신은 감격에 가슴이 벅찼다." -333쪽, '내 고향 그리워' 몇 토막

지금 우리 농촌은 1930년대와는 확실하게 다르다. 농민들도 깨어 있고, 농사짓는 법도 과학적이다. '웰빙바람'이 불면서 귀농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젊은이들이다. 농사짓기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모두 떠난 농촌에는 노인들만이 전봇대처럼 외롭게 남아 있다. 지금 우리 농촌에는 <상록수>에 나오는 동혁과 영신이 필요하다.

동혁과 영신 같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살면서 마지막 보루처럼 남은 우리 자연환경을 잘 보살펴야 한다. 강줄기를 틀어막는 4대강 사업이 누구를 죽이는 일인가를 농민들에게 일깨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대자연과 더불어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심훈은 1901년 노량진(당시는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노량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대섭(大燮), 호는 '금강생'(金剛生) 또는 '백랑'(白浪). 이광수 장편소설 <무정>에 나오는 신우선 모델로 알려져 있는 큰형 우섭(友燮)은 <매일신보> 기자를 지냈으며 심천풍(沈天風)이란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 지식인이었다.

심훈은 1919년 경성제일고보 4학년 때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하고 중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 뒤 귀국해 <동아일보> 기자를 하지만 1926년 '철필 구락부 사건'으로 퇴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무라타 미노루 감독 밑에서 영화수업을 받는다. 그는 그 뒤 '먼동이 틀 때'를 각색, 감독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한다.

<조선일보> 기자, 경성방송국 문예담당으로 일하다가 1932년 부모가 살던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가 창작에 빠진다. 1934년 장편 '직녀성'을 연재하고 그 원고료로 직접 설계한 집을 지어 '필경사'(筆耕舍)라 이름 붙인다. 필경사는 지금 심훈문학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35년에는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문예현상모집에 '상록수'가 당선되어 상금 500원을 받는다. 이듬해 '상록수'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장티푸스로 입원했다가 그해 9월 16일 불과 서른여섯이란 아까운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 그때가 과연 '태평천하'였나?

이 소설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때 어두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 채만식 <태평천하> 이 소설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때 어두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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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서른댓이나 되었고, 인물도 그리 추한 인물은 아니고, 신식계집들처럼 되바라지도 않고… 윤직원 영감은, 제가 그대로 병통 없이 말치 없이, 자기 종신토록 자알 살아만 주면 마지막 임종에 가서, 그 집하고 또 땅이나 벼 백석거리하고 떼어주어 뒷고생 않게시리 해주려니, 이쯤 속치부를 잘해두었습니다. / 아 그랬는데 글쎄, 그 여편네만은 결코 그러지 않으려니 했던 게, 웬걸,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남의 첩데기 짓을 하느라고…" -109쪽

'오늘의 한국문학전집' 세 번째 책 <태평천하>는 채만식이 1938년 <조광>에 연재했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때 어두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장편소설 제목에 담긴 '태평천하'는 일제 강점기 때였지만 '태평하다'는 주인공 윤직원이 지닌 우스꽝스러운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채만식은 주인공 윤직원을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를 '안정되고 풍요로와 걱정이 없는 시간'이라고 비꼰다. 이는 이 장편소설 주인공 윤직원이 지닌 역사 인식이 좀 모자란다는 그런 선을 훌쩍 뛰어넘어 '무지의 단계'에 있다는 것을 거꾸로 비트는, 채만식만이 지닌 독특한 풍자와 차가운 웃음인 것이다.

그는 남두 사투리와 판소리 사설을 닮은 문체를 통해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을 비웃고 거칠게 꼬집으며 마구 비꼰다. 이 같은 소설은 "풍자의 목적이 대상의 파괴가 아닌 교정과 개선"이라고 볼 때, 장편소설을 통한 윤직원 일가에 대한 작가가 지닌 풍자와 야유는 아주 깊고도 아주 드넓은 큰 뜻을 품고 있다.

"일찍이 윤직원 영감은, 그의 소싯적 윤두꺼비 시절에, 재갸 부친 말대가리 윤용규가 화적의 손에 무참히 맞아 죽은 시체 옆에 서서, 노적이 불타느라고 화광이 충천한 하늘을 우러러 '이 놈의 세상, 언제나 망하려느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하고 부르짖은 적이 있겠다요. / 이미 반세기 전,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나한테 불리한 세상에 대한 격분된 저주요, 겸하여 웅장한 투쟁의 선언이었습니다."-237쪽

그렇다. 태평하지 않은 시대에 태평하다고 말하는 것, 아픈 시대에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 불안에 떨면서도 불안하지 않다고 꼼수를 부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야유이자 저주이겠는가. 채만식 <태평천하>를 다시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겉은 화려하고 풍요롭지만 속은 빈껍데기뿐인 이 시대 슬픈 자화상이 다가선다.   

채만식은 1902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중퇴했다. 그는 귀국한 뒤 <동아일보> <개벽>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으며,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세 길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때 대표적인 풍자작가로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탁류> <태평천하> 등을 썼으며, 해방 뒤에는 <미스터 방> <논 이야기> <역로>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청소하지 못한 일제 잔재를 고발하거나 미군정 아래에서 억압받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발하는 작품을 썼다. 1950년 지병인 폐환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오늘의 한국문학' 편집위원들은 "모든 역사가 새롭게 해석되는 현재의 관점이듯 문학 텍스트 역시 새롭게 해석되는 오늘의 의미"라고 입을 열었다. 이들은 "우리는 이 전집에서 무엇보다도 새로운 작가와 텍스트들의 발굴에 주력하였다"라며 "본 전집이 채택한 작가 작품들의 선정과 배열방식은 과거의 우리 문학에 대한 관습적 이해와 독서방식에 대한 방성과 함께 신선한 해석적 관점들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정

이광수 지음, 푸른사상(2011)


태그:#이광수, #심훈,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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