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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북쪽으로 약 60km쯤 떨어진 슬로츠버그역에서 아들 셋이 기차에 오르고 있다. 아들 셋은 보통 점심 전후에 맨해튼으로 나갔다가 자정 전후에 야영장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두어 번이나 시간을 어기고 새벽 3시에 돌아오기도 해 애를 태워야 했다.
▲ 뉴욕행 기차 뉴욕에서 북쪽으로 약 60km쯤 떨어진 슬로츠버그역에서 아들 셋이 기차에 오르고 있다. 아들 셋은 보통 점심 전후에 맨해튼으로 나갔다가 자정 전후에 야영장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두어 번이나 시간을 어기고 새벽 3시에 돌아오기도 해 애를 태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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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일아, 같이 차 좀 타고 나가야겠다."

뉴욕 원정이 아흐레째에 접어든 날 자정이 다 된 시각,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던 선일이를 불러 깨웠다. 이틀째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밖은 을씨년스러웠다. 8월이지만, 산 속에는 이미 가을을 재촉하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병모 안 태워오셨어요?" 선일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 날은 두 차례에 걸쳐, 병모와 윤의를 따로따로 밤중에 태워오기로 했다. 윤의와 병모는 이날 오후 맨해튼에 나가는 시간도 제각각이었고, 내가 마중 나가기로 한 기차 편도 서로 달랐다. 원래 약속대로라면 오후11시쯤 들어오기로 한 병모는 이미 야영장에 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산 밑의 서펀(Suffern)역에 나가보니 기차는 제 시간에 왔지만, 병모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인근의 슬로츠버그(Sloatsburg)역으로 급히 차를 몰고 갔다. 그러나 슬로츠버그 정거장 앞의 외로운 가로등 불빛이 비춰주는 거리에 병모는 역시 없었다.  

호기심 강한 병모는 이날 혼자 브롱스(Bronx)를 돌아보겠다며 오후에 뉴욕으로 나갔었다. 브롱스는 뉴욕에서도 범죄가 가장 빈발하는 지역이다. 나는 약 20년 전 한밤중에 차를 몰다가 길을 잃고 브롱스에 들어선 적이 있었는데 꽤나 겁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오래된 건물과 희미한 조명 아래 마약을 한 듯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방인인 나를 힐끔힐끔 노려봤다. 살짝 오금이 저려오는 느낌이었다. 정신 없이 차를 무조건 한 방향으로만 몰아 빠져 나온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조심해야 한다. 대낮에도 신경 써야 해. 엠피쓰리 같은 비싼 느낌이 나는 전자제품은 일체 노출 시키지 말아라. 또 깊숙이 동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 게 좋아. 전철역 근처만 좀 둘러보고 후딱 다시 차에 올라 타야 한다."

낮에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브롱스로 향하는 병모의 귀에 대고, 나는 몇 차례고 안전 제일을 당부했다. 헌데 영민하고 판단력 좋은, 그런 병모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기차에 타지 않았던 것이다. 나로서는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며,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산속 야영장에 머무는 게 아니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아이에 안달

자정을 전후한 시간 아이들을 태워오기 위해 정거장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던 공동묘지. 미국의 오래된 마을은 보통 공동묘지가 동네 한복판에 있는데, 이 묘지는 외딴 곳에 있었다. 비가 내리는 한 밤중에 이 묘지 옆을 지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 공동묘지 자정을 전후한 시간 아이들을 태워오기 위해 정거장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던 공동묘지. 미국의 오래된 마을은 보통 공동묘지가 동네 한복판에 있는데, 이 묘지는 외딴 곳에 있었다. 비가 내리는 한 밤중에 이 묘지 옆을 지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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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장에서 선일이를 태우고, 다시 기차역으로 나온 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선일이와 함께 슬로츠버그역과 서펀역 주변을 차례로 뒤졌다. 그러나 역시 병모의 자취는 없었다. 한 대뿐인 휴대전화는 윤의 손에 들려 있었다. 병모와의 연락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였다. 공중전화로 윤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저녁 때 잠깐 만났는데 잘 모르겠는데요." 윤의의 목소리는 불안정했다. 여자를 만나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뭔가 잘 안 풀리는 듯했다.

"병모가 지금 어디 있을 것 같으냐." 선일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병모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병모를 누구보다 잘 안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우리와 길이 어긋났다면 가까운 편의점이나 이런 데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병모는 큰 일을 만들지 않을 아이다. 우리가 이런 데까지 와서 뉴스에 나면 안 되지."

나는 횡설수설 이런 저런 말들을 입에 주워담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오만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은 오히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돈 몇 푼 아낀다고 이런 산속 야영장에 묵는 게 아니었는데…' ' 브롱스 나간다고 할 때 못 나가게 말릴 걸 그랬나.' '만일 정말 큰 일이 났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그렇잖아도 요 며칠 아이들 사이에 어딘지 미묘하게 편치 않은 기류가 감지돼 한편으로 좀 찜찜했는데, 뉴욕에서 큰 일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뉴욕 일정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아들 셋'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따로 놀고 있었다. 이날만 해도 선일이는 맨해튼에 나가지 않고 야영장에서 쉬면서 노는 걸 택했다. 병모는 우범지대와 빈민가 '탐험'을 고집하고 길을 나선 참이었다. 윤의의 여자 친구 만들기는 처음에는 잘 될 듯하다가 헛물을 켜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보이는 뒷모습 "너 어떻게 된거야"... "죄송해요"

병모를 찾는데, 선일이를 데리고 갔지만 비 내리는 한밤중에 선일이만 따로 둘 수는 없었다. 원래 생각은 선일이와 내가 서펀역과 슬로츠버그역을 하나씩 나눠 맡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늦은 밤 시간 텅텅 빈 역 주변의 치안상태가 불안했다. 둘 다 역무원도 없는 무인 정거장들이었다. 그래서 선일이와 나는 둘 중에서 좀 더 규모가 큰 서펀역의 주차장에서 함께 대기하고 있기로 했다. 다시 서펀역 주차장으로 차를 운전해 들어서는데, 멀리 곰처럼 큰 덩치를 한 남자의 뒷모습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조명 아래 벤치에 혼자 덩그러니 병모가 앉아 있는 거였다. 세상에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너 어떻게 된 거냐."
"죄송해요. 기차를 놓쳤어요. 폭우 때문에 기차 연결 편이 좋지 않았어요."

병모는 평소 여간해서는 남한테 미안해 할 일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 병모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나와 선일이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차에 올라 탄 병모는 처음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화도 나지 않았다. 너무 기뻤기 때문이었다.

선일이가 미국인들과 어울려 야영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줄기차게 맨해튼을 쏘다닌 윤의, 병모와는 달리 선일이는 야영 생활을 꽤 재미있어 했다.
▲ 야영장 축구 선일이가 미국인들과 어울려 야영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줄기차게 맨해튼을 쏘다닌 윤의, 병모와는 달리 선일이는 야영 생활을 꽤 재미있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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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롱스는 간단치 않은 곳이지." "예 정말 그렇던데요." 얼치기 뉴요커 흉내를 낼 만큼 맨해튼 일대 지리에 익숙해진 병모도 브롱스는 낯설었다고 했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어요.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뉴욕의 여느 지역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어요." 미국에는 경찰도 진입을 불편해하는 우범자들의 '해방 지구'가 있다. 로스앤젤레스 남쪽의 캄튼이나 뉴욕의 브롱스 따위가 그런 데다.

한참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뜻밖의 비상 상황에 놀랐던 선일이와 나는 잠이 확 달아나 있었다. "조금 있으면 윤의가 오기로 했으니 기다려서 태우고 같이 가도록 하자." "윤의가 아까 시내에서 잠깐 만났을 때 좀 늦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요. 오늘은 기차편도 불규칙하고…" 병모가 윤의 또한 제 시간에 오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이미 한 차례 놀란 내 입장에서는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윤의에게 공중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다. 수화기를 통해 흘러 나오는 윤의 목소리에는 술 기운이 제법 배어 있었다. 뉴욕 연애가 파국으로 종결되는 것 같았다. "그래 몇 시 차로 들어올래." "새벽 3시차로 들어갈게요. 죄송해요."

인스턴트 커피처럼 짧은 시간의 연애라도, 실연은 실연이다. 원래 새벽 1시쯤 들어오기로 했는데, 2시간이나 미뤄지니 순간 짜증이 불끈 솟았지만 참았다. 제 딴에는 대륙을 횡단해 뉴욕까지 와서 사랑을 이루지 못했는데 가슴이 아프지 않겠는가. "그래 조심해서 들어오거라. 술 취한 사람을 노리는 꾼들이 있을 수 있으니 지하철에서는 각별히 조심하고." 화려하게 시작됐던 '아들 셋'의 뉴욕 도시 게릴라전은 지치고 피곤한 양상으로 종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cafe.daum.net/talkus에도 올립니다.



태그:#총, #뉴욕, #자정,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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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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