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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여기저기...호박꽃 피어 흐드러지고...
▲ 호박꽃... 우리동네 여기저기...호박꽃 피어 흐드러지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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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호박꽃이 지천이다. 대문 밖에만 나가보면 대문 밖 양쪽 텃밭 가에도, 길에 면한 이웃 텃밭 가에도, 산책로 풀밭에도, 얼마 전에 시멘트로 덮어버린 썩은 물웅덩이 옆에도 음표처럼 호박덩굴이 길에 타고 뻗어나가 있다. 호박꽃은 멀리서도 등불이라도 켠 듯 샛노란 얼굴로 웃고 있어 환하다. 더러는 호박꽃 밑에 작은 호박이 영글기도 했다.

산책하다가 종종 보는 호박꽃이지만 때때로 나는 그 꽃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곤 한다. 이 계절 내내 호박꽃을 보는 것 같다. 오랑캐꽃, 나팔꽃, 백일홍 등과 이름도 아직 모르는 들꽃들과 함께. 산책로에도 길가에도 남의 집 텃밭 가에도 언덕과 밭 울타리에도 피어 오렌지색 등불 밝힌 듯 환한 호박꽃을 시나브로 본다.

눈길 닿는 곳 발길 닿는 곳마다 호박꽃이어서 저절로 호박꽃을 유심히 보게 되었고 호박꽃도 앙증스러운 꽃봉오리에서 작은 꽃 큰 꽃 꽃받침처럼 꽃 밑에 붙은 어린 호박 등 다양한 풍경을 보면서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호박꽃은 지금도 피고 지고 피고 여름 내내 지상의 꽃 등불 켜고 있다.

피어 싱그러운...
▲ 호박꽃... 피어 싱그러운...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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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어려서 시골서자란 나는 낯익은 덩굴채소다. 호박죽, 호박국, 호박조림 등 우리 일상에 밀착되어 있는데다 호박이나 잎이나 버릴 게 없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노라면 누렁 호박도 시골 광이나 툇마루에 쌓이리라. 호박에 관한 재미있는 속담도 많다. '호박 나물에 힘쓴다' '호박 넝쿨과 딸은 옮겨 놓는 데로 간다.' '호박에 말뚝 박기',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다' 등등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은 못생긴 여자를 빗대서 '호박꽃도 꽃이냐'라고도 한다. 호박꽃도 꽃이다.

박과 호박속에 속하는 한해살이 넝쿨 채소로 커다란 잎이 거친 털로 덮여 있고 수꽃과 암꽃이 따로 핀다. 수꽃에만 있는 '화분'을 벌이 암꽃에 옮기면 수분이 되고 수분된 암꽃에서 호박이 자란다. 암꽃 하나하나가 단 하루만 피어 수분할 수 있는데다가 호박꽃 대부분이 수꽃이기 때문에 실제로 호박을 생성하는 꽃은 몇 송이밖에 없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그리고 호박은 약간 산성인 토양에서 잘 자라며 대개 씨를 뿌린 뒤 약 4개월이면 익는다고 한다.

...아침햇살에 더욱 환한 호박꽃...
▲ 호박꽃 ...아침햇살에 더욱 환한 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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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처럼 타고 오르는 호박꽃...멀리서도 꽃등 켜고...
▲ 호박꽃 음표처럼 타고 오르는 호박꽃...멀리서도 꽃등 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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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산책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텃밭 가에 유난히 꽃잎을 크게 벌린 호박꽃이 보였다. 호박꽃이 갓 피어날 땐 제법 새초롬히 입을 빼물고 꽃잎 가장귀만 살짝 노란 꽃잎을 보일 뿐 꽃잎을 거의 닫고 있다.

꽃의 모든 모양이 그러하듯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꽃봉오리는 비밀스러운 듯 제법 신비롭다. 호박꽃봉오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 햇살에 노출된 호박꽃봉오리 주변엔 하얀 털로 싸여 있었다. 조금 더 꽃잎을 열고 피기 시작하면 꽃 나팔처럼 꽃잎 가장자리를 열면서 나팔꽃이나 백합 모양이 되면서 꽃 속이 보일 듯 말듯 내비친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텃밭가장귀에 핀 호박꽃은 속내를 환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활짝 피다 못해 속까지 훤히 드러내 되바라져 보였다. 그런데 이 농익은 호박꽃 속에 꿀벌 세 마리가 쉬지 않고 부지런히 꿀을 빨고 있었다. 세 마리의 꿀벌은 꽃 맨 안쪽에서 빙빙 돌며 꿀을 채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박꽃 속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꽃 속이 환했다. 꿀벌은 한참 동안 그렇게 그 환한 노란빛 속에서 마음껏 꿀을 채취했다.

꽃봉오리...
▲ 호박꽃... 꽃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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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운 태양빛에 아침에 싱싱하던 호박꽃이 풀이 죽고...
호박도 영글었다...
▲ 호박꽃... 한낮의 뜨거운 태양빛에 아침에 싱싱하던 호박꽃이 풀이 죽고... 호박도 영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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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사회에서 일벌에 속하는 이 꿀벌은 꽃가루를 모으고 벌집과 꿀을 만드는 하나의 농부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 새아침의 햇빛 속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른 아침 농부들이 들녘에 나가듯이. 매일 돌보는 텃밭으로 가듯이.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관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느끼며 그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나는 호박꽃 속을 들여다보다가 샛노란 꽃 속으로 풍덩 빠져들 것 같았다. 산책길에서 만난 꽃들을 보며, 또 오늘은 호박꽃 속의 꿀벌을 보며 하나님의 창조솜씨와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생명의 경이를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며 흘깃 그 일부만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무색의 얼음 속에서도 반짝이는 무지개의 빛깔에 황홀할 수 있으리라. 한 방울의 물속에도 무지개가 들어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고 듣지 못할 뿐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태그:#호박,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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