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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은 곳에서 시작하라> 겉그림
 <도전받은 곳에서 시작하라> 겉그림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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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은 곳에서 시작하라>(21세기북스 펴냄)의 저자 류미씨는 현재 국립부곡병원(경남 창녕) 신경정신과 의사다. 그녀는 '휠체어를 탄 의사'다.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처지로 의사가 됐다. 그것도 늦깎이 공부로.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때(1991년) 사고로 양쪽 발목을 크게 다쳤다. 이때의 사고로 '박리성 골연골염'이란,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0분, 걸을 수 있는 것도 최대 30분'의 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런 장애를 가졌지만 그녀의 모습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남들 보기에 멀쩡한지라 속 모르는 사람들에게 '꾀병' 혹은 '엄살', '변명' 혹은 '핑계'로 보이기 딱 좋기 때문이다.

사실 '10분 기다린다거나 30분 걷는' 정도는 우리 스스로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생활의 기본이다. 머리를 감거나 얼굴을 씻다보면, 설거지를 하거나 차 한 잔 준비해 마신다거나, 버스를 기다리다보면 10분을 훌쩍 넘기기 예사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이 당연하고 평범한 것마저 빼앗겨버려 누리지 못하는 그 심정과 고통이 오죽하랴 싶다.

발목에 잡힌 삶, 하지만 새로운 길이 열렸네  

"지금 회상해보면 아픈 발목이 발목을 잡았지만, 한편으로는 내게 길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싶다." - 저자

"인생은 등산과 같다. 여기는 산등성이일까, 정상일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나의 한계를 절감하며 포기하고 싶어진다. 이때 바닥을 쳐 본 사람은 안다. 가다 힘들면 쉬어 가면 된다는 것을. 이 글이 수많은 의대생의 체험글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생이란 등산은 누가 더 빨리 쉬지 않고 오르는가의 경쟁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오르는 것임을."
- 하지현(건국대학교 의대 정신과 교수)

이런 신체적인 장애. 즉 아픈 발목은 늘 그녀 인생의 발목을 잡곤 했다. 모 신문사의 입사 시험에서 최종 전형까지 갔지만 면접 과정에 산행이 포함되어 있어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99%가 합격하는 모교 인턴 실습에서조차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도전, 또 도전했다. 결국 현재 국립부곡병원 정신과 전공의 2년차로 있다.

그녀는 의대생이라면 필수 코스인 실습의 기본인 회진조차 돌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주저앉지 않고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 책을 통해 그녀를 만나며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씨가 떠올랐다.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고로 엄청난 고통과 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이제는 이름과 그 존재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용기가 되는,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명인 그녀. 책의 저자도 이지선씨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잘못으로 장애를 얻었다. 왜 하필 나일까? 그러니 더욱 억울할 수밖에 없다.

책을 통해 두 사람의 사연에 동감하고 안타까워했다. 또 함께 아파하고 격려하며, '대단하다'는 존경심 같은 감정으로 읽었다. 하지만 혼자 이겨낼 수밖에 없는(없었던) 두 사람 마음속 그 깊은 아픔들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싶다. 다만, 이지선씨 혹은 그녀의 이야기 <지선아 사랑해>가 수많은 사람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고 도전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이 책 또한 그래주길 바랄 뿐. 

류미씨 역시 이지선씨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바람 때문에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아래는 이메일로 주고받은 이야기다.

"내 아픔을 상대방이 모를 때, 가장 힘들었다"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바람은?
"친구가 우연히 모 신문사의 '2011 논픽션대상 수기 공모' 공고를 보여줘서 쓰게 되었다. 두 달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원고가 900매니까 시간이 빠듯했다. 그런데 친구가 '네 이야기는 레어템' (온라인게임에서 얻기 힘든 아이템) 이니까, 즉 휠체어를 타고 인턴을 돈 경우는 희귀하니까, 써 봐도 좋을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친구의 권고를 받기 전까지 이런 글을 써 본적도 없고 시간도 빠듯해 많이 망설였다. 그런데 겪은 일이라서 그런지 막상 자리에 앉으니 그때 상황이 그림처럼 모두 떠올라 마감에 원고를 맞출 수 있었다.

논픽션대상 우수상을 수상하고 이렇게 책으로 나올지 몰랐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진행되니까 책이 좀 팔렸으면 좋겠다.(웃음) 사실 책 제목이 좀 거창한데, 난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누간가의 말 한마디에 아프고, 속상해하고 그러다가도 누군가 위로해주면 다시 해보려고 하고 또 위로해준 사람에게 나도 힘이 되고 싶어 하는 그런. (기자 주: 그런 내용들이 책에 많이 묻어있다) 어떻게 보면 저의 어려움 극복기이지만, 이왕이면 내 책이 지금 어려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다. 그리고 나도 격려 받고 싶다."

-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모 신문사 편집 기자 생활 버리고 의사가 됐다. 그 정도라면 안정된 직업인데, 불편한 몸으로 의사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내 의지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조직생활에 한계가 느껴졌다. 내 불편한 신체적 여건 때문에 남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격증이 있으면 현실적으로 유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치열한 입시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경쟁 위주 특수고등학교에는 우울한 학생들이 차고 넘쳤다. 스트레스 풀 곳은 없고, 아이들은 지쳐가고…. 스트레스 때문에 농약을 마신 선배도 있었다. 그때 힘들고 지칠 때 마음속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주는 어른 친구나, 폭발 직전인 우리의 병든 가슴을 헤아려 주는 정신과 의사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은 불편하지만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니 정신과 의사가 되어 그때 그토록 바랐던 역할을 내가 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저자 류미씨
 저자 류미씨
ⓒ 이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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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사고로 인한 장애부터 의사가 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혼자 이겨낼 수밖에 없는 통증과 고독이 가장 힘들었다. 사실 아픈 게 잘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참 많이 아픈데 아픈 사람이란 생각을 다른 사람은 전혀 하지 못한다. 사실 사람들에게 무얼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 그 때문에 남들과 같은 일을 같은 조건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육체적 통증뿐만 아니라 아파도 이해받지 못 한다는 느낌, 그것과의 싸움이 아팠다.

남들과 같은 신체적 조건으로 마쳐야만 하는 인턴을 번번이 떨어지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 엄살이 아니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다. 정작 병원 생활을 시작해서도 통증으로 인해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도 말이다."

- 책에 힘든 순간에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준 이야기가 나오는데, 따뜻하다. 
"휠체어를 타고 인턴을 돌면 어떻겠냐고 말해주신 내과 의사선생님과 휠체어를 타고 진료를 보는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나 격려, 나에 대한 믿음이 많은 힘이 됐다. 두 분 모두 내게 '참아라, 열심히 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대신, 오히려 '몸이 불편한데도 인턴을 하려고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인턴에서 번번이 떨어진 후 많이 위축되어 있던 때라 그런지 다시 도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계속되는 실패와 탈락 탓에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분들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자신감과 거듭 실패하면서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해줬다. 힘들 때마다 두 분의 말씀과 격려가 떠오른다. 내 삶의 커다란 선물이다.

표시내지 않고 도와줬던 의대 동기들, 큰언니처럼 몸 걱정을 해주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고맙다는 이야길 꼭 하고 싶다. 그 당시에는 힘이 되었는지 몰랐는데 쓰면서보니까 그런 것들이 모여서 통증에 대한 내성을 키워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중"

- '휠체어를 탄 장애인 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도 있을 것 같다.
"인턴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종종 만난다. 인턴 때 '당신 몸도 불편한데 어떻게 아픈 사람을 돌보냐?'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 말, 참 아팠다. 그런 말과 시선, 지금도 아프다. 그런데 오기 같은 것이 생기더라. 의사로서 능력이나 역할은 다른 의사들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는. 실제로 보여주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턴에서 번번이 떨어진 후 다시 마주한 벽 앞에서 힘들어 할 때 어떤 교수님 소개로 휠체어 탄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인천에서 10년 넘게 개업하고 계시는 분인데, 그분이 '환자들에게 나는 휠체어 탄 의사가 아니다. 의사인데 휠체어를 타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10년 동안 꾸준히 환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줬기에 가능한 말씀이었다. 그때 '나도 꾸준히 신뢰를 준다면 선입견을 조금씩 흔들 수 있고, 결국에는 환자들이 의사가 휠체어를 탔다는 걸 의식 못 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맞는 것 같다"

- 본인에게 장애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힘들다. 스티비 원더가 '눈을 한 번만 뜰 수 있다면 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특출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보지 못 하는 고통을 수도 없이 이겨낸 사람이 '아직도 눈을 뜰 수 있다면' 이란 생각을 하다니. 장애란 그렇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스티비 원더의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뭐랄까. 점점 적응이 좀 됐다고나 할까. '생활을 리모델링했다'는 표현을 즐겨 쓰는 편인데, 장애 덕분에(?) 상황에 맞춰 생활하는 것에 많이 적응했다. 지금은 항상 차에 휠체어를 싣고 다니며 오래 걷게 될 것 같으면 무조건 휠체어를 탄다. 예전 같으면 어색하고 창피하고 또 자존심 상해서 하지 못 했던 거다. 그러면서 통증에 시달리고 마음 아파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또 예전에는 장애를 아파하는 편이었는데, 이젠 나도 모르게 늘 장애를 이겨낼 어떤 대안을 찾는다. 많이 걷지 못하니 수영 같은 것으로 근력을 키워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하고. 말하자면 장애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장애가 없는 사람도 못 하는 도전을 여러차례 했다.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나?
"수영을 하게 되면 한강 횡단 같은 것은 어떨까?(웃음) 사실 아직 전공의라서 일단은 전문의가 되는 것이 우선이다. 요즘 야구를 가끔 보는데 멘탈(마음의, 정신의, 심적인, 내적인) 코치 같은 것을 해볼 수 있다면 어떨까도 생각해봤다. 몸을 자유롭게 못 쓰는데 선수들의 멘탈을 운운하는 게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몸이 불편해도 감독 잘하시는 분도 있지 않은가. 선수들이 슬럼프나 외부 요인 등으로 심적으로 흔들릴 때 어떤 역할을 해주고 싶다. 그래서 요즘 야구 관련 책도 읽는다."

덧붙이는 글 | <도전받은 곳에서 시작하라>(류미 씀ㅣ21세기북스ㅣ2011.9ㅣ값:13500원)



도전받은 곳에서 시작하라 - 휠체어 탄 의사의 병원 분투기

류미 지음, 21세기북스(2011)


태그:#논픽션, #도전, #희망, #의사,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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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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