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리랑은 그 종류와 사설이 50여 종에 6천여 수나 된다고 합니다. -2011년 5월 횡성 회다지 축제 현장에서-
 아리랑은 그 종류와 사설이 50여 종에 6천여 수나 된다고 합니다. -2011년 5월 횡성 회다지 축제 현장에서-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90세가 넘은 어머니가 뭔가를 흥얼거리고 있다면 그건 분명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하며 부르는 아리랑이거나 '석탄 백탄 타는 데는 연기나 펄펄 나지만 이내 가슴 타는 데는 연기도 김도 아니나네'하며 부르는 백탄가일 것입니다. 

말이 노래지 가사니 곡조니 할 것 없이 모두가 제멋대로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에서 느낄 수 있는 색깔은 분명했습니다. 좋았을 때 부르는 아리랑에는 웃음소리 같은 기쁨이 그득하지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흥얼거리는 소리는 그렁거리는 눈물만큼이나 슬프게 들립니다.

노래를 부르는 건지, 짧은 글을 청승맞게 길게 늘여가며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청상(靑孀)이 되어 한 평생을 살아온 당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지만 아주 가끔이나마 어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노래는 바로 아리랑이었습니다. 

아리랑은 어머니만 불렀던 노래는 아니었을 겁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도 불렀고, 초등학교 운동회 때 매스게임 배경음악에도 아리랑이 들어가 있었고, 마을 명가수를 뽑던 콩쿠르(concours) 대회에서도 아리랑이 불렸습니다.    

방방곡곡,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 들어봤고 흥얼거려 봤을 아리랑이지만 정작 '아리랑이 이것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한국의 아리랑 문화>는 동국대 김태준 명예교수, 아리랑박물관건립추진위 김연갑 위원장, 경기국제통상고등학교 김한순 선생님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으로 시대를 아우르는 모든 아이랑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민족 문화의 제1 상징, 아리랑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민족의 민요이며, 민중의 서사시이며, 한문화의 상징적 문화표상이다. 한민족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이 노래가 없는 곳이 없는 민족의 노래이며, 한민족이라면 어느 세계에 살든지 아리랑 한 두 절은 흥얼거릴 수 있는 한민족의 존재증명이다.

지금 민족이 남북으로 나뉘어 있지만, 아리랑은 남과 북이 함께 호흡하는 숨결 같은 노래이며, 함께 먹고 사는 쌀과 같은 민요이다. 세계 백 수십 나라로 흩어져 사는 민족의 목숨 같은 노래, 민족의 정서(情緖)이며 문화표상이다. 한민족의 민요 중의 민요, 노래 중의 노래이며, 세계가 인정하는 한민족 문화의 제1 상징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서울 올림픽에서는 대회 공식음악이었으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는 자기 문화의 총화로 <아리랑 축전>을 세계에 자랑했다. 북경 아시안 게임과 2000년 제 100회 아테네 올림픽 때에는 남과 북이 한반도기(旗)와 함께 아리랑을 국가(國歌)대신 함께 불러 입장한 한민족의 애국가이다. (본문 15쪽)


물항아리에 담긴 바가지를 두드드리며 정선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모습 -2011년 5월, 횡성 회다지 축제 현장에서 -
 물항아리에 담긴 바가지를 두드드리며 정선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모습 -2011년 5월, 횡성 회다지 축제 현장에서 -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공동편저자인 김태준 교수가 책 1부에서 '아리랑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종류와 사설이 50여 종에 6천여 수라고 하는 아리랑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전체 4부로 나뉘어 구성된 책에서 김태준 교수는 '아리랑이란 무엇인가?'를, 아리랑박물관건립추진위 김연갑 위원장은 '아리랑, 그 길고 긴 내력'과 '아리랑의 분포와 그 양상'을, 그리고 경기국제통상고등학교 김한순 선생님은 '여러 아리랑의 음악적 특징'을 전문가의 식견과 가슴 절절한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복궁 중수공사 7년은 모든 공연문화 융합하는 계기

조선조 말, 국책적 토목공사인 경복궁 중수 공사 7년은 이 땅에서 연행된 모든 공연문화가 융합하는 계기였다. 특히 궁중예술을 비롯한 상류층 문화가 민간 대중예술을 만나고, 그 결과로 민중예술이 대중예술로의 자리를 점하는 전환의 시점이었다.

바로 이때 아리랑도 민간전승체인 토속 아리랑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문화 영역 속의 아리랑으로 확대되었다. 한갓 특정지역 농투산이 소리를 넘어서 다양한 생활을 반영한, 일종의 공시매체(公示媒體)로 거듭난 것인데, 개인적인 애소의 사연은 물론이요 세상사의 긴요한 이야기를 담아 나로부터 타인에게 말을 거는 소통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본문 65쪽)

김연갑 위원장은 조선조 말, 국책적 토목공사인 경복궁 중수 공사 7년은 이 땅에서 연행된 모든 공연문화가 융합하는 계기였으며, 방방곡곡에 낱 알갱이처럼 흩어져있던 아리랑 또한 공시매체로 거듭나는 계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리랑 문화의 개념, 아리랑의 발생과 전승 배경, 아리랑의 성격변화는 몰론 근대사에서의 아리랑 문화를 폭 넓고 심도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에 선점 당한 아리랑

일방적이긴 하지만 '독도가 자기네 것'이라고 집적거리는 일본의 파렴치한 주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너나없이 공분하며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일본의 집적거림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리랑은 이미 중국에 선점 당했습니다. 중국은 아리랑을 중국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국문화선집 시리즈 제7권 <한국의 아리랑 문화> 표지
 한국문화선집 시리즈 제7권 <한국의 아리랑 문화> 표지
ⓒ 도서출판 박이정

관련사진보기

즉 2005년에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문화를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족이 전승하고 있는 전통문화를 국가 제도로 규제하는 한편, 자국의 전통문화로 등재하고 이중 일부를 세계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동북3성의 대 한반도 전략과 동북공정의 현실적 거점화를 목적으로 한 것인데, 이의 연장선상에서 2005년 <강릉단오제>를 우리가 세계유네스코에 자국 문화로 등재하자 이에 대한 대응인 듯 조선족 <농악무(農樂舞)>를 세계유네스코에 자국 문화로 등재했다.

이어 길림성 연길조선족 전승 '아리랑'(阿里郞)을 자국 <비물질 문화유산 명록적통지> 11-147호로 등재했다. 그것도 '조선족 아리랑' 이나 특정 아리랑으로의 제한적 명칭이 아닌 포괄적 명칭 '아리랑'으로 등재함으로써 제도적으로는 영원히 중국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리랑을 세계유네스코에 등재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이미 국제적으로는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제 2의 독도'로 끊임없는 소모전의 빌미가 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본문 223쪽)

독도가 영토의 문제라면 아리랑은 문화와 혼의 문제입니다. 일본이 독도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집적거리면 전국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목소리가 태산처럼 높이 치솟았습니다. 일본의 파렴치함을 규탄하는 원성이 장맛비를 만난 한강물처럼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서 굽이쳤습니다. 하지만 아리랑이 중국에 먼저 선점 당한 것을 규탄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는 메아리를 형성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스러운 일입니다.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아리랑, 정의(定義)조차 정의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일상화 돼있는 우리 것 아리랑이 '중국의 것'이 되도록 방치하고 나 몰라라 한 정부와 우리의 역사 인식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아리랑을 아우르는 음악적 특징

아리랑은 음악적인 측면으로 볼 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토속 민요와 통속 민요의 범주에 속하는 아리랑, 신민요와 유행가에 해당하는 아리랑, 국내의 아리랑, 해외의 아리랑 등이 있다. (본문 348쪽)

<한국의 아리랑 문화>는 역사와 전통, 문화와 사회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아리랑만을 집대성하고 고찰한 것이 아닙니다. 음악 교육을 전공한 경기국제통상고등학교 김한순 선생님이 아리랑의 음악적인 특징을 4부에서 세세하게 분석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한순 선생님의 설명은 두루뭉술하게 곡조로만 흥얼거리던 아리랑을 또렷하게 그릴 수 있는 오선지 같은 바탕, 음표 같은 지식이 될 것입니다. 

아리랑을 우리 것으로 쐐기 박는 커다란 말뚝 되길

때로는 웃음소리 같고, 때로는 한숨 소리 같은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민족의 민요이며, 민중의 서사시이며, 한문화의 상징적 문화표상이다.
 때로는 웃음소리 같고, 때로는 한숨 소리 같은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민족의 민요이며, 민중의 서사시이며, 한문화의 상징적 문화표상이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강조할 때 그들이 참으로 파렴치 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막연한 외침만은 아닐 겁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할 수 있는 논리적인 대응과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료들만이 그들의 파렴치함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분명한 답이 될 것입니다.

아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들에게 선점 당했을 지라도 아리랑이 우리 것이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를 집적(集積)해 놓고 역사적인 자료들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해 놓는다면 아리랑이 중국 문화로 고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발전을 저해하는 말뚝은 당연히 뽑아내야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을 잡아두는 데는 말뚝만큼은 꼭 필요합니다. <한국의 아리랑 문화>는 저만큼 떠내려가있는 아리랑을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도록 가두는 울타리가 되고, 우리 아리랑으로 쐐기를 박는 커다란 말뚝이 될 것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듯이 <한국의 아리랑 문화>를 통해 아리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야 말로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듯 '아리랑은 우리 것'임을 외치는 커다란 함성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아리랑을 우리 것으로 지키는 커다란 혼불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아리랑 문화>(김태준·김연갑·김한순 편저|도서출판 박이정 펴냄|2011.9.|2만2000원)



태그:#한국의 아리랑 문화, #박이정, #김태준, #김연갑, #김한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