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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압록강의 상류 이미지는 백두산의 폭포이다. 사진은 백두산의 구룡폭포(중국사람들은 이를 장백폭포라 부른다)의 모습.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압록강의 상류 이미지는 백두산의 폭포이다. 사진은 백두산의 구룡폭포(중국사람들은 이를 장백폭포라 부른다)의 모습.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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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3.1운동 직후 체포를 피해 독일으로 '피신 유학'을 떠났던 이의경이 27년 외국생활 끝에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필명은 이미륵, 작품의 제목은 <압록강은 흐른다>. 이 소설은 독일어로 쓰였으므로 '한국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신분 덕분에 우리나라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압록강"이라면 사람들은 백두산 천지를 떠올린다. 그곳이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연상을 하는 데에는 천지 자체의 유명세도 단단히 한몫을 한다.

압록강의 하류인 신의주 앞 압록철교의 풍경
 압록강의 하류인 신의주 앞 압록철교의 풍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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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강진 역시 "압록강" 하면 대뜸 떠오르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곳이라서 세수를 하려고 물을 대야에 담으면 그대로 얼어버리기 때문에 씻을 수가 없다"고 배운 초등학교 때의 수업 시간이 생각나는 '유명지'인데다, 지명에 '중'자가 든 것으로도 짐작이 되듯이 압록강의 중간 지점을 대표하는 곳인 덕분이다.

물론 서해에 인접한 신의주는 압록강의 상징이다. 바다에 닿아야 '천'이 아닌 진짜 '강'으로 여기는 우리의 정서가 신의주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슴속에 품은 채 중국 단동과 마주보고 서 있는 신의주는 부서진 철교로 인해 조국의 아픔을 뼈아프게 드러내주는 '국경'의 도시이다.
  

2011년 6월 25일, 61년 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군에 의해 폭파된 적 있는 낙동강의 왜관 철교가 물에 밀려 무너졌다.
 2011년 6월 25일, 61년 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군에 의해 폭파된 적 있는 낙동강의 왜관 철교가 물에 밀려 무너졌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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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면 그 발원지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한 떠오르지 않는다. 압록강의 천지와는 그 유명세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간 지점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의 안동, 6.25 때 부서진 철교를 거느린 왜관 등지가 떠오른다.

특히 왜관은 올해 6월 25일에 붕괴가 되는 바람에 더욱 낙동강의 명소가 되었다. 6.25 때 북측의 도강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이 파괴했던 철교인데 마침 전쟁 발발 61주년이 되는 날에 강물을 못 이겨 무너졌으니 국민들의 뇌리에 "낙동강" 하면 '왜관'이 떠오르는 기가 막힌 계기가 된 것이다. 

하류로는 물론 부산이 대표적 상징이다. 김정한의 <낙동강의 파수꾼>도 있지만, 금관가야의 허황옥이 배를 타고 들어오는 대목에서부터 을숙도의 철새까지, 그리고 삼각지 등 부산은 낙동강을 상징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도동서원을 끼고 있는 낙동강. 대구광역시가 낙동강과 인접한 곳은 이 일대 아주 일부 지역뿐이다.
 도동서원을 끼고 있는 낙동강. 대구광역시가 낙동강과 인접한 곳은 이 일대 아주 일부 지역뿐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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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부산을 만들었다. 형산강은 포항을 만들었고, 한강은 서울을 만들었다. 그러나 대구를 만든 것이 낙동강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낙동강은 대구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강이었는데, 경상북도 달성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슬쩍 그 언저리를 지나가게 되었을 따름이다. 낙동강은 단 한번도 대구광역시 행정구역 안을 흐르지 않으며, 경상북도 고령군과 대구시 달성군 사이의 경계를 잠깐 지을 뿐이다.

대구에 남은 낙동강의 흔적은 국가사적이자 보물인 도동서원이 유일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서 경상남도 창녕군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회전하여 산을 넘으면 도동에 닿는데, 그 고개인 다람재 정상에서 내려다볼 때 도동서원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곳이 대구와 낙동강의 인연을 잇는 가장 대표적인 지점이다.

한곳 더 거론한다면, 과거 한때 "매운탕"으로 이름을 날렸던 강창(江倉)마을을 떠올릴 수 있다. 마을이름이 강(江)과 창(倉)의 결합인 것만 보아도 짐작이 되지만, 이곳은 지난날 낙동강이 남해로부터 안동에 이르는 수송선으로 가득찼던 시절을 증언해주는 곳이다. 강을 타고 온 배에서 내리고 싣는 물건들을 창고처럼 보관했던 강창은 나룻배가 뜨고 가는 낙동강의 명소였다.

그러나, 그 정도이다. 대구시민들이 낙동강에서 헤엄을 치는 것도 아니고, 대대적으로 물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며, 고기잡이에 열중하는 것도 아니다. 낙동강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관통하고 부산광역시를 만들어낸 대단한 강이지만, 대구와는 거의 아무런 '촌수'도 맺지 않은 채 도도히 스쳐 흘러갈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6.25때 북한군이 건너오지 못했던 낙동강의 지점들도 한결같이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소유지'였을 따름이다.

결론은, "대구는 낙동강"식의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구의 옆구리를 잠깐 스쳐가는 낙동강은 부산이나 안동, 왜관의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는 없는 강, 어느 것의 강보다도 한 수 위인 그런 강을 자랑하자. 어딘가? 바로 금호강이다.

낙동강의 강창 부분. 강창에 창(倉)이 붙은 것으로 짐작되듯이 이곳은 옛날 배에서 내린 물건을 저장하던 창고 역할을 했던 곳이다.
 낙동강의 강창 부분. 강창에 창(倉)이 붙은 것으로 짐작되듯이 이곳은 옛날 배에서 내린 물건을 저장하던 창고 역할을 했던 곳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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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대구를 만든 강이다.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가 가야금(琴) 소리를 내는 아름다운 강이라 하여 금호강(琴湖江)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때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했던 포항시 죽장면의 깊은 산골에서 발원한 금호강은 영천시, 경산시를 거쳐 대구광역시의 동구와 북구를 관통한 끝에 달성군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에 닿는다. 금호강이 일으켜낸 흙들이 쌓여 대구 분지의 평야를 창조했다는 말이다.

1900년대 초, 1920년초까지만 해도 달성공원과 서문시장 일대가 늪지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대구땅을 만든 주체가 금호강이라는 사실은 금방 이해가 될 만하다. 아득한 옛날 공룡들이 노닐던 거대 호수였던 대구 분지를 금호강이 무수한 기력을 모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흙'으로 바꾸어내었다는 말이다.

금호강은 강창 바로 아래에서 낙동강과 마주친다. 그래서 생긴 것이 전국 5대 습지의 하나였던 달성습지이다. 물론 지금은 황폐화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황무지가 되었고, 낙동강 개발 논리에 밀려 내내 불도저가 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달성습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달성습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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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은 얕지도 깊지도 않아 사람들이 놀기 아주 적당하다. 그래서 지금도 강태공들이 즐겨찾는 곳이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멱을 감고 겨울이면 '시게또'를 탄다. 조선 세종 시대의 서거정도 '대구 10경'으로 금호강의 뱃놀이와 이별, 노을감상 등을 들었다.

팔공산 아래 동수대전에서 견훤군에 대패하여 구사일생으로 도망치던 왕건이 건넌 강도 금호강이다. 신숭겸이 왕의 옷을 대신 입고 전사하는 절묘(妙)한 지(智)혜를 발휘한 덕분에 왕건이 살아났다고 하여 동네 이름이 지묘동이 된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시작된 왕건의 도피는 왕이 없어졌다는 시량[失王]리, 어른들이 전쟁터에 나가고 없어 아이들만 오갔다는 불로[不老]동, 이제 어지간히 도망을 쳐서 마음이 놓였다는 안심(安心)동, 그 무렵 달이 반쯤 뜬 초저녁이었다는 반야월(半夜月) 등을 거쳐 금호강까지 이어진다.

압록강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선이 되듯이 강은 국경이 되기도 하고, <공무도하가>나 <서경별곡>처럼 이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1500년대의 서거정이 '금호강 뱃놀이'를 칭찬했던 것을 보면, 그보다도 500여년 전  동수대전 때의 금호강은 더 더욱 '천'이 아니라 '강'이었을 것이다. 왕건은 인적이 드문 금호강을 건넌 다음 그 기슭을 타고 앞산까지 도망을 쳤다.

대구의 젖줄 금호강, 자연친화적으로 개발하자

대구광역시의 주요 호텔인 인터불고 호텔도 금호강변에 있다. 금호강변 아래에는 동촌유원지가 조성되어 있고, 강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북구쪽 금호강으로 가면 갈대가 무성하여 가을 한철 서정적 풍경을 한껏 자아낸다. 지금은 폐선이 된 철교도 가로놓여 있어 향후 관광자원화될 계획이니 금호강은 더욱 멋진 여행지로 부각될 것이다.

이제 금호강에 다시 배를 띄울 일만 남았다. 강의 중류인 경산시 일대와 하류인 북구, 달성군 일대의 높낮이에 별로 차이가 없어 천천히 뱃놀이를 하기에는 아주 적격이다. 지나친 격류가 흐르는 곳도 드물고 무시무시한 수심을 자랑하는 곳도 몇 곳에 지나지 않으므로 좀 더 물만 맑게 만든다면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는 더 이상 없다. 다른 어떤 대도시에도 금호강처럼 시민들의 발 아래를 그처럼 정겹게 흘러가는 강은 없다. 한강처럼 너무 넓어 '그림의 떡'이거나, 아니면 그저 '천' 수준의 도랑만 있을 뿐!

그러나 양쪽 강둑과 하천 부지를 시멘트로 온통 덮어버리는 그런 개발은 절대 안 된다. 사실 서양에 가보면 그렇게도 유명한 세느강은 신천보다도 폭이 좁고, 다뉴브강도 금호강보다 작다. 따라서 금호강을 물길 따라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아름답고, 꽃과 바람의 향기가 가득한 자연친화적 강, 이름 그대로 갈대가 서걱이면서 가야금 소리를 내는 그런 강으로 가꾼다면 오랜 세월에 걸쳐 대구의 '땅'을 만들어준 금호강이 이번에는 대구의 '명예'를 안겨줄 것이다. 물론 배는 무조건 나무로 만들고 노와 돛을 쓰는 나룻배여야 한다.

금호강 중 대구광역시 동구 반야월과 경산시 경계 지점의 풍경. 멀리 보이는 산이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유명한 형제봉 비탈이다.
 금호강 중 대구광역시 동구 반야월과 경산시 경계 지점의 풍경. 멀리 보이는 산이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유명한 형제봉 비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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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용두산성을 앞세운 앞산의 한 봉우리(산성산)이 보이는 신천의 풍경
 멀리 용두산성을 앞세운 앞산의 한 봉우리(산성산)이 보이는 신천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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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구 시내를 관통하여 금호강에 닿는 신천도 대구의 자랑거리이다. 이만한 물줄기가 대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곳도 잘 없다. 세계적으로도 한강 같은 대(大)강이 도심 복판을 관통하는 대도시는 서울 이외에는 없다지만, 신천만한 물길이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대도시도 나라 안에 대구 말고는 없다.

한때 오염이 심해 외면을 받았지만 지금은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사는 등 몰라보게 맑고 깨끗해졌다. 곳곳에 공룡발자국이 있고, 해마다 홍수를 겪는 대구사람들을 위해 정조 때의 대구판관 이서 공이 사재를 털어 물길을 바꾼 공로를 잊지 못해 뒷사람들이 세운 선정비가 남아 있으며, 멀리 앞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넓은 잔디밭이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신천은 대구를 처음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멋진 '첫 인상'을 선사하는 곳이다. 아직도 수성구 일대 천변만 잘 가꾸어졌고 그 아래 하류 부분인 북구 쪽은 좀 어수선하고 어둡지만, 그 문제점만 하루 빨리 고친다면 신천은 더욱 대구를 사람살 만한 도시로 끌어올려 줄 게 틀림없다.

금호강을 대구의 대표 브랜드 강으로 가꾸어 외지인들이 찾아오도록 만들고, 신천을 좀 더 가다듬어 대구시민 최고 휴식공간으로 조성하여, 대구의 '관광 등급'을 가일층 치솟게 해야겠 다. 

금호강을 알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

이승욱 저 <생명의 강을 속이지 마라> 표지
 이승욱 저 <생명의 강을 속이지 마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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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을 속이지 마라>는 다시 살아나는 금호강의 생태 환경을 돌아보며 쓴 이승욱의 '하천 입문서'이다. 저자는 2009년 6월부터 10월까지 다섯 달 동안 금호강 일대를 모두 답사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다시 금호강 300리를 곳곳까지 재확인차 다녔다. 그 결과 저자는 외친다. "더 이상 생명의 강을 속이지 마라!"

금호강의 진면목을 되돌아보고 인간에게 강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본 기록인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금호강의 사람들'로 금호강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장 '금호강 톺아보기'는 금호강이 다시 살아나는 현재의 모습을 담았다.

3장 '일본 하천 정책의 교훈'은 과거 콘크리트 제방에 의존했던 일본이 어떻게 새로운 하천정책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4장 '하천을 둘러싼 논쟁'은 이른바 4대강살리기사업과 관련한 논쟁을 정리하고 의견을 밝혔다. 5장 '강과 인간을 위한 제언'은 변화하고 있는 하천 패러다임과 금호강을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일본의 이시다 다카히코(별명 '강의 안내인') 씨의 '하천론'을 실었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집필, 출간된 이 책의 저자(http://blog.daum.net/trumaan)는 책의 말미를 통해 '생명의 강을 위한 약속'을 하자면서 이렇게 제안한다.

1. 주변의 강을 차분히 돌아보고 느끼자.
2. 인간이 아닌 강을 위한 정책을 만들자.
3. 강의 얼굴, 샛강을 주목하자.
4.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귀중히 여기자.
5. 강이 지닌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고민하자.
6. 지역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생명의 강을 속이지 마라> 이승욱 저, 북랜드 간행, 200쪽, 1만5천원.


태그:#금호강,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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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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