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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단 호르레이야에 빼곡히 걸려 있는 선거 플래카드들.
 미단 호르레이야에 빼곡히 걸려 있는 선거 플래카드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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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혁명 이후 9개월, 드디어 이집트에서 민주주의 선거가 시작된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하고 군 최고위원회가 민간 정부에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양할 때까지만 권력을 잡겠다고 공언했는데 그 정권 이양의 첫걸음인 하원의원 선거가 11월 28일에 예정되어 있다.

이번 선거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 있는 이집트 의회의 하원의원을 뽑는 선거다. 하원의원도 뽑고 지지하는 정당도 뽑는 형식으로 투표가 진행된다. 한국에서는 정당 득표율을 계산해 비례대표의 수를 정하지만, 이집트에서는 이미 정당에서 내세우는 사람이 정해져 있고 그 지역구에서 승리한 당의 비례대표 전원이 당선되는 형식이다.

11월 28일 선거는 전국적으로 실시되지만 전국동시선거는 아니다. 전국이 동시에 투표를 하고 개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주마다 다르게 투표 날짜가 배정되었다. 카이로·알렉산드리아 등 9개 주는 11월 28일, 이스마일리아·수에즈 등 9개 주는 12월 14일, 시나이 등 9개 주는 내년 1월 3일로 예정되어 있고 결선투표가 본 투표 일주일 후에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첫 선거일인 28일을 공식 휴일로 정해 투표를 진행한다는 발표는 아직 없다. 선거 이후 민심이 어떻게 될지 몰라 아예 며칠을 휴일로 정한다는 추측도 있다. 라마단이나 에이드 등 큰 명절도 보통 휴가 전날 뉴스에서 공표를 해왔기 때문에 이번 선거도 사람들이 그날 쉴 것이라고 추측할 뿐 공식적으로 선거 당일의 진행에 대해 정해진 것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11~12월에는 하원의원 선거를 진행하고 내년 1~2월에는 상원의원 선거 그리고 내년 3월이나 4월쯤 대통령 선거를 한다는 것이 전체 선거의 큰 밑그림인데, 느린 진행과정에 이집트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 선거를 앞두고 11월 들어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타흐리르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군 최고위원회를 향한 주요 요구사항은 내년 2월 전까지 대통령 선거까지 마치고 정권을 이양하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주 금요일(11월 19일)에 있었던 시위는 무슬림형제단도 공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해 그 규모가 더욱 컸다. 19~20일에 시위대와 군경이 충돌해 10명 넘게 죽고 1000여 명이 다쳤다.

민정 이양 거북이걸음... 군부-시민 충돌 양상

여러 가지로 어수선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거가 다가오면서 길거리는 온통 선거 분위기다. 땅에는 벽보요, 하늘에는 플래카드다. 한국처럼 벽보를 붙일 수 있도록 구역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어서 지하차도나 육교 위, 인도 위 고압전선 박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벽보가 붙어 있다.

후보자가 난립해 카이로 동부 아바세이야 선거구는 후보자 번호가 100번을 넘어서기도 했다. 후보자 번호가 60번, 100번, 이런 식이다. 후보자들의 선거 포스터를 보면 문맹자들을 위한 배려도 볼 수 있다. 문맹자들도 있고, 종교적으로 선지자들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아 후보자들 중에 같은 이름이 많기 때문에 서로 구별하기 위해 그림을 사용한다. 자동차, 셔츠, 바나나 등 쉬운 그림으로 후보자들을 구별한다.

이집트는 한국처럼 네모난 사거리 형식으로 도로가 정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그란 분수대 등의 원형을 기준으로 차들이 신호등 없이 돌면서 방향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정비되어 있다. 그래서 그 동그란 원형의 진을 기준으로 플래카드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데, 무슬림형제단이 만든 '자유와 정의당' 소속 인사를 비롯한 유력 후보들은 사진을 넣은 컬러 플래카드를 걸고 그렇지 못한 군소 후보들은 손으로 직접 쓴 플래카드를 건다.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마이크로버스에서도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마애디 지역에서 운전을 하는 한 마이크로 버스기사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인 '마흐무드 샤르'의 사진과 공약 등이 적힌 스티커 전단지를 차에 탄 승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외국인인 기자에게도 전단지를 주고 '이 사람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운전 중에 마주 오는 마이크로버스의 기사에게도 전단지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고 심지어 옆을 지나가는 버스의 창 안으로 전단지를 던져 넣기도 했다.

무함마드 카드리 오마라.
 무함마드 카드리 오마라.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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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는 벽보, 하늘에는 플래카드... 선거 분위기 고조

혁명 이후 처음 실시하는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의 의견도 다양하다. 지난 에이드 때 가족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단연 선거 이야기가 화두였다. 쉬린 오마라의 집에 모인 가족들은 하원의원 선거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와 선거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슈우트대학교 교수인 무함마드 카드리 오마라(65)는 "대부분의 이집트 사람들은 정치적인 교육이 부족하다"며 "우리는 30년 동안 민주적이지 않은 체제 아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 체제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혁명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체제는 개혁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런 민주사회를 처음 겪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 잘해나가고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 사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뽑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될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 하지만 누가 되든 이제 이집트 국민들이 더 이상 부정부패에 대해 눈감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알레 오마라.
 알레 오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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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인 알레 오마라(50, 자영업)는 의견이 달랐다. 알레 오마라는 "지난 혁명을 폭발시킨 것은 젊은이들이었고 그런 젊은이들이 있기에 앞으로 이집트의 미래도 유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도 젊은이들이 혁명에 참여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좋은 사람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설 만한 사람 중에 사실 믿을 만한 사람은 두세 명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엘 바라데이를 지지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무슬림형제단을 향한 기대와 우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는 집단은 단연 무슬림형제단이다. 이들은 '자유와 정의당'을 창설해 이번 선거에 뛰어들었다. 같은 무슬림인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들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을 받으며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샐리 아이만(24, 대학원생)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이 관심도 많지만 걱정도 많이 한다. 특히 '자유와 정의당'을 두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무슬림형제단이 만든 정당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사람들의 주장이 다 맞는 말이지만 같은 무슬림인 우리가 보기에도 조금 겁이 나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너무 이슬람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 해서 그러냐는 질문에 샐리 아이만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런 부분도 있고, 예를 들면 지금은 여자들이 히잡 착용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하지만 이란처럼 모든 여자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될 수도 있고. 작은 것부터 예를 들자면 그런 것이다. 한 번도 종교적인 색채를 띤 정당이 선거와 정치에 나서본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너무 급진적이거나 종교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막상 선거에서 승리하고 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된다."

샐리 아이만은 "아버지는 '자유와 정의당'이 매우 좋다며 자꾸 나에게도 그 정당을 찍으라고 하시는데 아버지의 말만 듣고 투표할 수는 없고 나도 내 나름대로 여러 언론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단 호르레이야에 걸려 있는 '자유와 정의당' 비례대표 플래카드. '자유와 정의당'은 무슬림형제단이 만든 정당이다.
 미단 호르레이야에 걸려 있는 '자유와 정의당' 비례대표 플래카드. '자유와 정의당'은 무슬림형제단이 만든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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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로 투표를 처음 해보는 '선거 새내기'들의 각오는 희망과 기대 일색이었다. 살마 살라흐(19, 대학생)는 "이번에 투표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데 혁명 이후의 투표라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의 미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인 아흐마드 샤리프(18, 대학생)는 "나 역시 투표를 처음 해보는데 이집트 사회의 재건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의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며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제 이집트 국민들은 이 권리와 의무를 자신들의 손으로 쟁취하여 첫 열매를 맺으려고 한다. 선거 이후의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이집트에 민주 선거의 열매가 잘 자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태그:#이집트, #선거, #아랍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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