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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권혁주
 만화가 권혁주
ⓒ 홍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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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함민복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시 '꽃' 中)고 노래했다. 그렇다면 시와 만화의 경계에는 과연 어떤 꽃이 필까? 만화가 권혁주는 그 궁금함을 비로소 피워냈다. 에피소드마다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 그의 전작인 '그린 스마일' 속 '귀요미' 캐릭터들을 총출동시켜 황망한 고독의 느낌, 존재의 깨달음, 유치한 다툼 속 관계의 미학 등을 들려준다.

윤동주의 '자화상', 릴케의 '인생', 김현승의 '플라타너스' 등 지금까지 쉰 편에 가까운 시들이 소개됐다. 에피소드 말미에는 QR코드를 달아 독자들에게 시 전문을 소개하고 있다. 때론 '슈스케(슈퍼스타K)'나 '짝' 등 핫 트렌드의 소재로 톡톡 튀는 유머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작품의 핵심은 쉼이다.

한 편의 시가 전하는 청량함과 맑은 기운이 독자들을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여유를 선물한다. 그리하여 문학이 소외받는 이 시대, 잔잔한 울림이 된다. 움비처럼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며 느림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음 정화 웹툰'이다.

슬로우 라이프를 꿈꾸며

"비타민을 제조하는 느낌으로 만들고 있어요. 사람들이 엄청 재밌어 할 거란 기대보다는 잠들기 전 살짝 읽어보는 만화, 입가심이나 비타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새끼 물범 '움비'가 주인공이었던 환경만화 그린 스마일로 이름을 알린 권혁주 작가. 자신의 대표 캐릭터인 움비를 데리고 그는 요즘 '만화 같은 시, 시 같은 만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린 스마일과도 멀지 않다. 환경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느림과 슬로우 라이프를 꿈꾸는 그로선 이 모든 것이 맞닿아 있다. 더욱이 릴케와 윤동주를 동경하며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쉼없이 시를 써오고 있다는 그에게는 적성에 꼭 맞는 만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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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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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학교에서 배운 시가 나와 감동했다는 사연에서부터 평소 좋아하는 시를 다뤄줘 고맙다는 인사, 메일로 자작시를 보내오는 독자들까지 있다.

"확실히 일반적인 의미의 웹툰 독자들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수준이 높더라고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지요."

때론 뜻하지 않은 수확도 있어 스스로 흐뭇함에 젖는다. 집 앞 시 전문 도서관에 자신이 썼던 만화 대사들이 예쁘게 패널로 걸려 있던 모습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이다. 작품을 내기 전 매번 해당 시인에게 연락을 해 허락을 구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문인들과 주고 받는 이메일 하나하나가 기쁘고 감사하다. 또, 누군가 추천을 받아 만화를 읽어 봤다는 소감이 들려올 때도 그는 큰 보람을 느낀다.
 
영화인이 되고 싶던 큐레이터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는 미학을 전공했다. 한때는 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 만화가와는 조금 멀어 보였던 삶. 그런 그가 돌연 만화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영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으면 했죠. 하지만 현장에서 접한 영화 일은 너무나 힘들었고,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다 만화가 눈에 들어왔죠. 스텝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점, 장소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 일할 수 있는 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영화나 만화는 서로 비슷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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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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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낸 그는 2005년 첫 작품 '암연즈'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재했다. 이듬해에는 큐레이터라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갖게 됐지만 만화에 대한 열망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자신만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큐레이터 일을 2년만에 그만두고 전격 전업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아스팔트 시인(2007)'과 '그린 스마일(2009)'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도 '그린 스마일'은 권혁주라는 이름을 세상에 뚜렷이 알린 의미 있는 작품. 환경에 대한 첨예한 고민이 돋보이는 이 작품 덕에 그는 지금까지 환경만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처음엔 부담스러운 호칭이었지만 요즘은 자신만의 특화한 장점으로 만들고자 노력중이다. 지금은 또 다른 환경만화인 '엄마는 지구인'을 연재하고 있다.

"예전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요즘은 나쁘지 않아요. 환경만화가 전에 없었던 점도 중요한 매력으로 다가왔고요. 지금은 오히려 의무감과 문제의식을 갖고 작업하고 있어요. '엄마는 지구인'도 환경을 머리나 입이 아닌 행동으로 지켜보자는 '리얼 환경 보호 실천법'을 다루고 있죠."
 
"세상에 없던 재미를 찾아서"
 
블로그 대문에도 걸려 있듯 만화가 권혁주의 목표는 "재미의 영역을 넓히는 만화가"다. 그가 환경이나 슬로우 라이프처럼 다소 생소한 소재에 도전한 것도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지만 흔치 않은 소재 등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가는 것은 가능하잖아요. 사람들이 미처 관심 갖지 못한 부분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내는 게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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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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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은 100편의 '움비처럼'을 향해 나아가고, '엄마는 지구인' 역시 끊임없이 '몸소' 실천하며 이어가는 것. 내년쯤에는 차기작으로 영화 <쉘위댄스> 같은 드라마를 그리고 싶다. 코믹하면서도 드라마가 살아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였으면 한다. 물론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이 될 듯하다.

환경이든 시든 슬로우 라이프든 만화가 권혁주는 자신의 만화가 사람들의 팍팍한 일상을 보듬는 한 줌 여유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작품마다 배어 있는 따스한 온기와 편안함, 조금은 덜 자극적인 재미가 말해주듯.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처럼 천천히 느리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제가 느림을 찬양하니까 살이 쪄 굼떠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오해를 받곤 해요.(웃음) 앞으로 좀 더 날씬해지고 계속 느림을 찾아가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요. 조금 불편할지는 몰라도 조금 더 느리게 사는 것. 그것이 오히려 예상치 못한 풍족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의도적으로 느리게 살면서 그 즐거움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권혁주, #움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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