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까지 노조가 파업을 해서 신문 발행이 중단된 사례는 있지만, 사주가 발행 중단 조치를 한 것은 우리 언론사상 전례가 없었다. 세계적인 연구사례가 될 것이다. 기자들이 쓰고싶어 하는 기사로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장이 기사를 빼라고 해서 저항했다. 편집권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 지부장은 '편집권 독립'을 강조했다. 그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정수재단(정수장학회)의 명실상부한 사회환원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사측에게 '면직(해고)'되었다. 노조 지부는 '제2의 편집권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
 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5년 정수재단은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현재 그의 비서 출신인 최필립씨가 이사장이 맡고 있다.

옛 '5.16장학회'에서 이름을 바꾼 정수장학회는 1961년 군사쿠데타 세력이 부산지역 사업가 김지태씨를 부정축재자로 몰아 그 소유의 '부일장학회' 땅과 언론사를 빼앗아 설립한 재단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씨의 이름 한 글자씩 따서 '정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는 2005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언론장악 의도에 의해 발생했고 박 의장의 지시로 중앙정보부가 재산헌납을 강압적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부일장학회가 5.16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강제헌납됐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진실화해위는 "정수정학회는 강제헌납받은 주식을 국가에 원상회복토록 하고 원상회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가가 직접 원소유주에게 손해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지만, 그것은 권고 차원에 그치고 말았다.

노조 지부는 지난 11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정수재단 반환'과 '현 경영진 퇴진' '사장후보추천제 쟁취' 등을 내걸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이호진 지부장은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부산일보>는 다음날 이런 내용을 1면에 담아 보도했다.

<부산일보> 사측은 지난달 28일 이호진 지부장을 해고 결정했고, 이정호 편집국장을 징계위 회부(대기발령)했다. 편집국은 징계와 관련한 내용을 담아 11월 30일 자 신문에 내려고 했는데, 김종렬 사장이 "윤전기를 돌리지 말 것"을 지시했다. 결국 이날 신문은 발행되지 않았다. 또 이날 <부산일보> 홈페이지도 폐쇄됐다. <부산일보> 1988년 '편집권 독립' 등을 내걸고 파업하면서 엿새 동안 신문 발행이 중단됐던 적이 있다.

<부산일보>는 신문 발행 중단사태 등의 내용을 담아 '제2의 편집권 독립운동'이란 제목으로 12월 1일 신문 1면에 보도했다. 사측은 관련 기사를 빼지 않으면 제작할 수 없다고 했으나 조합원들이 윤전기와 발송작업 등을 장악해 발행됐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언론단체들은 정수재단의 실질적인 사회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호진 지부장은 "<부산일보>가 편향성·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수재단 반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일부가 박근혜한테 해준 게 뭐 있느냐'는 식이다"

부산일보사 전경.
 부산일보사 전경.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이 지부장은 "'편집국장 추천제'를 하고 있는데, 김종렬 사장이 재임 뒤부터 노조와 단협을 할 때마다 '편집국장 임명제'로 바꾸자고 들고 나왔다"면서 "이사장(최필립)을 만나 보면 '<부산일보>가 박근혜 전 대표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이었다. 보도에 대한 불만을 자주 했다. 그러면 이사장이 사장한테는 오죽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호진 노조 지부장과 2일 오후 나눈 대화다.

- 왜 지금 시기에 정수재단 문제를 들고 나왔나.
"그동안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한 게 아니다. 계속 요구해 왔다. 2005년 이사장이 박근혜 의원에서 그의 비서였던 최필립 이사장으로 바뀐 뒤부터 요구를 하고, 협의를 해왔다. 2006년 2월 김종렬 사장이 취임하고서도 요구했다. 김 사장을 임명하고 나서 40일 동안 쟁의를 벌이기도 했다. 일방적인 사장 임명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점거농성도 벌이면서 사장 임명 거부투쟁을 벌였다."

- 당시 최필립 이사장을 만났다고 했는데, 어떤 입장이었는지.
"최필립 이사장이 임명됐을 때 나는 노동조합 사무국장이었는데, 노조 차원에서 만나기도 했다. 외교관 출신이라 그런지 말을 잘했다. 사장 선임 과정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들을 것을 요구했다. 요구사항을 들은 뒤 그는 '노력하겠다'거나 '의견을 들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 뒤 이사장이 팩스를 보내왔는데, '사원 의견을 더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사장 선임에 있어 사원들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절차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신문사에 대한 재단의 개입이 더 심해졌다"

- 박 전 대표가 정수재단 이사장 자리에 있을 때와 최필립 이사장이 맡은 뒤에 달라진 점이 있나.
"오히려 신문사에 대한 재단의 개입이 더 심해졌다. 경영 측면도 그랬다. 김상훈 전 사장 때와 김종렬 현 사장 때가 다르다. 김상훈 전 사장 때는 박근혜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김상훈 사장이 월간 보고를 재단에 한다손치더라도 재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에 자주 올라가거나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다르다. 노조 대응이라든지, 인사·징계까지 상의한다. 신문사가 수익사업을 하고 있는 것 중에는 재단 이사장이 제안해서 하는 것도 있다. 편집권 측면도 중요하다. 우리 신문은 '편집국장 추천제'를 하고 있다. 김종렬 사장이 재임 뒤부터 노조와 단협을 할 때마다 '편집국장 임명제'로 바꾸자고 들고 나왔다. 이사장을 만나 보면 '<부산일보>가 박근혜 전 대표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이었다. 보도에 대한 불만을 자주 했다. 그러면 이사장이 사장한테는 오죽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사장이 이사장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오면, 그 뒤부터는 부하 직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편집국장이 편집권을 잘 막아 내면 되는데, 그렇지 않는 편집국장이라면 편집권 독립이 무력화 된다."

부산일보 사측이 이호진 언론노조 지부장에 대해 '면직' 결정을 한 가운데, ‘언론장악저지및지역언론공공성지키기 부산연대’는 30일 오전 부산일보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했다. 사진은 이호진 지부장이 사장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발언하는 모습.
 부산일보 사측이 이호진 언론노조 지부장에 대해 '면직' 결정을 한 가운데, ‘언론장악저지및지역언론공공성지키기 부산연대’는 30일 오전 부산일보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했다. 사진은 이호진 지부장이 사장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발언하는 모습.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 내년 국회의원-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 국면을 이용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데.
"재단 입장에서 보면 그럴지 모른다. 언론사는 공정성과 편향성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내년 2~3월이나 대선 직전이 되면 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2005년 이사장이 박근혜 의원에서 비서 출신으로 바뀌었다. 그때는 2004년부터 문제제기가 있었다. 당시는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와 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을 때였다. 기자의 입장에서 취재와 보도를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밖에서 보면 공정성과 편향성을 의심할 수 있다. 그런 시비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나올 수 있다. 지금은 박근혜 의원이 당대표는 아니지만, 선거 전면에 나서서 지휘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신문이 편향성 시비에 다시 휘말려서는 안된다. 그래서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 평소 정수재단이나 사장의 간섭 내지 편집권 침해가 있었나.
"기자가 취재해서 보도하는 기사에는 그런 시비가 없었다. 대표적으로 2004년 논설실에서 썼던 칼럼과 관련된 편향성 시비를 들 수 있다. 당시 노조 '공보위'에서도 지적하기도 해서, 외부에 알려지기도 했다."

- 지난 11월 29일 해고 결정 통보를 받았는데. 
"나는 어느 정도 각오했다. 사측에서 쉽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봤다. 박근혜 의원이 편집권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대선 1년여 전에 미리 문제가 불거질 소지의 싹을 자르고 가자는 차원도 있다. 박 의원이 시켰다고 믿고 싶지 않지만, 재단이나 사장과 사이에 그런 계획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는 신문 정간 등과 관련해 계속 고소고발을 하고 있다. 지금 사장은 <부산일보> 출신이고, 언론 경험을 40여년간이나 해온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스스로 판단해서 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사장후보추천제' 왜 필요하냐고"

- 11월 17일 서울에서 '정수재단의 진정한 사회환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 다음날 신문에 내용이 보도됐다. 당시 사측은 보도를 반대했었는데. 
"노조는 보도에 관여하지 않는다. 사전에 편집국장한테 기자회견 하니까 실어달라고 할 수는 없다. 또 보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어라 할 수도 없다. 그런 부분에서는 사장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에 필요한 자료는 편집국에 제공했다. 보도를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보도는 전적으로 편집국에서 알아서 한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서울에 있어 잘 모른다."

- 이정호 편집국장은 어떤 사람인가.
"1988년 <부산일보>에 입사한 것으로 안다. 1999년 노동조합 위원장을 했다. 이후 편집국 동기 중에서 승진이 빠른 편이다. 이전에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신문은 '재미'와 '의미' 중에 요즘 다들 가볍게 가는데, '의미'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더라. '재미'와 '의미'를 적절하게 안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 사장후보추천제가 왜 필요한가.
"<부산일보>는 언론사다. 재단은 정치성이 있는 주주다. 둘 사이 관계가 언론사 보도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 둘 관계가 독립적이어야 한다. 사장 선임권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신문은 발행돼야 한다. 그런데 지난 11월 30일 발행이 중단됐다.
"독자와 65년간 쌓은 신뢰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사과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2월 1일에도 사측이 신문을 내지 않으려고 해서, 조합원들이 싸워서 발행했다. 사측이 앞으로 또 그렇게 하더라도 신문만큼은 발행해야 한다. 독자와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 사측은 이정호 편집국장을 징계위에 회부했는데.
"사측은 이 편집국장에 대해 출입금지가처분신청을 낸다는 말도 들린다. 편집국장직을 수행하지 못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편집국장이 쓰던 노트북도 빼앗아 가고, 전화도 못 쓰게 한다는 말이 들린다. 우리 신문은 석간이라 아침 일찍 출근하는데, 오늘(2일) 편집국장이 출근할 때는 사측에서 아무 저항이 없었다. 편집국에는 조합원들이 있어 안정적으로 일을 한다. 사측이 무슨 일을 해도 조합원들이 지킬 것이다."

"친박계 의원들이 위기의식 느끼는 듯"

- 부산은 한나라당 정서가 강하다.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 요구를 하고 나서 한나라당이나 지지자들의 반응은 없는지.
"출입 기자들에 따르면 '친박(박근혜)계' 의원들이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의원들이 내년 총선도 있는데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거다. <부산일보>가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데, 4월 총선에서 자기들한테 영향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이번 사태와 관련해 독자나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하다고 보는지?
"트위터를 많이 봤다. 대체로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1일부터 종합편성방송이 출범했다. 자본이나 권력의 미디어를 장악하는 상황에서 <부산일보>가 편집권 독립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에 지지를 하는 듯하다. '종편' 출범과 부산일보 투쟁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그런 반응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할 때도 있었다."

- 정수재단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어떤 방식이나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재단 운영 주체가 누구냐, 이사장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실질적인 사회 환원이 되었느냐의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박근혜 의원을 모셨던 분(최필립)을 이사장으로 맡겨놓고 있으니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새 이사장을 뽑아야 한다."

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은 지난 11월 17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이냐 정수재단이냐. 박근혜 의원은 선택하라”는 내용으로 1인시위를 벌였다.
 이호진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산일보지부장은 지난 11월 17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이냐 정수재단이냐. 박근혜 의원은 선택하라”는 내용으로 1인시위를 벌였다.
ⓒ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관련사진보기



태그:#부산일보, #정수장학회, #편집권 독립, #박근혜 의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