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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교육연수원에서 "서울 영어교육 정책토론회-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서울영어교육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쟁점을 정리한 내용이다. - 기자의 말

지금까지 여러 교육정책 관련 토론회에 참가해 본 경험에 따르면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발제가 끝난 후 자리를 뜨는 비율이 상당히 높고, 종합 토론도 그다지 활기 있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청중이 너도 나도 발언을 하겠다고 일어섰다. 그만큼 쟁점이 큰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한 중학교 교사가 원어민 비용에 대해 질타했다. 급여 200-300만 원, 왕복 항공권, 거주 지원비 200만 원, 월세 60~80만 원 등 원어민 1명당 3천만 원에서 4천만 원이 드는데 이 예산을 삭감한다면 그 비용을 한국인 영어교사를 위해 투자할 것인지 질의했다.

이는 정책 연구를 담당할 이병민 교수가 답할 내용은 아니어서인지 서울시 교육청의 한 장학관이 나와서 답을 했다. 서울시 교육청의 원어민 교사 관련 정책은 도입 초기부터 '한시적'인 것으로 한국인 교사들의 회화 실력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중단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많은 예산을 들여 영어 교사들을 위한 연수를 준비하고 진행해 왔으니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만 줄업하면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실용영어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말하기와 쓰기를 포함하는 인터넷 기반 평가인 국가영어능력평가 시험이 도입된다.
▲ 5월 26일,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및 영어과 교육과정 개정방향 공개토론회 고등학교만 줄업하면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실용영어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말하기와 쓰기를 포함하는 인터넷 기반 평가인 국가영어능력평가 시험이 도입된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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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온 내용은 중등 영어 교사의 영어회화전문강사(이하 영전강)제도에 대한 것이었다. 영전강이 도입되어 수준별 수업을 하고 있는데 수준별 수업의 효과성에 대해 의문이 들뿐 아니라 영전강 역시 원어민처럼 무자격인 사람들이 많은데 원어민 강사처럼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영전강은 2008년 현 정부가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시수를 주당 1시간씩 늘리면서 교사들의 수업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도입된 제도이며, 중등의 경우 실용영어수업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배치하겠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최근 이들이 끊임없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이라 아주 민감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이병민 교수는 질의자에게 딱 하나만 이야기하겠다고 하면서 '교사니까 그런 입장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이지 이 자리에 학부모가 있었다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고 이로 인해 장내는 매우 소란스러워졌고 이병민 교수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자 이병민 교수가 다시 '전지현 교수가 토론문에 제시한 중학교 영어 시험문제(I'm from America 와 같은 뜻의 문장 고르기, 'go'의 과거형 과거분사형 쓰기)가 사실은 당신 자녀들의 시험문제였고, 그런 식으로 시험문제를 내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장내는 더 소란스러워졌는데, 전지현 교수가 발제할 때 청중 중에 '요즘에는 그런 시험 문제가 없다'고 항의하자, 전지현 교수가 '이건 본인 자녀들을 통해서 직접 경험했던 2007년과 2009년 자료'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지현 교수가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어서 객석은 더 술렁거리고 흥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병민 교수는 영어교사든, 원어민이든, 영전강이든 누구나 문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고,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 셋을 자격 유무나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뜻을 피력하려고 한 듯하나, 결국 이런 제도들은 우리 사회의 엄청난 욕망들이 뒤엉킨 문제이고, 그 이전에 제도적으로(혹은 이 제도가 생긴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옳은' 것인가 하는 가치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그런 입장에서 보는 것은 큰 문제인 것 같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백성들의 욕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 세종에게 물었다. '통제' 아닌 다른 방법을 보지 못하는정기준의 엘리트적 관점도 문제지만, 학부모들의 욕망에 휘둘리는 교과부의 정책 또한 문제 아닌가?
▲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에 대해 발언하는 이주호 장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백성들의 욕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 세종에게 물었다. '통제' 아닌 다른 방법을 보지 못하는정기준의 엘리트적 관점도 문제지만, 학부모들의 욕망에 휘둘리는 교과부의 정책 또한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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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애 본부장은 토론자였던 조자룡 교사의 비판을 언급하면서 '설문 조사'만으로 국가 영어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국영평, 원어민 교사, 영전강이 유의미한 제도였음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발제에서도 언급했던 시기자 외의 "영어학력 격착 실태 및 해소 방안(2011)" 연구 자료를 다시 언급하면서 원어민 교사가 있는 학교, 영전강이 있는 학교, 영어멀티미디어 시설이 있는 학교, 방학 중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학교, 영어 선택과목이 많은 학교, 교사 연수에 참여한 교사가 많은 학교, 교사의 최종학력이 박사과정 수료 이상의 학교에서 영어 구사능력이 좋았다고 발언하자, 장내는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한 참가자가 "지역 요인을 교차 분석한 결과냐" "사교육 변인에 대해 어떻게 통제했느냐" 질의했고, "지역 요인이나 사교육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학습자의 학습 동기가 중요했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표 영어 사교육 받은 아이들은 충분히 배려 받으면서 공부했으니까 학습 동기가 좋을 수밖에 없지만, 그런 아이들 때문에 학교 수업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으며, 선행 학습 때문에 사교육 안받는 소수 아이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는 알고 있느냐"고 질타를 했다.

이후에도 올바른 영어교육을 생각하는 시민모임에서 '원어민 강사의 범죄율이 높다는 것, 일반 사설 어학원의 원어민이라도 교육청에서 관리를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본 연구의 설문 조사에 참여했던 교사가 '학부모 설문조사라는 것은 사실 교사들 중 누가 영전강이고 누가 초등교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의사진행발언과 발제자들에 대한 청중들의 질타, 교육청 담당자들의 변명 같은 정책 설명을 들으면서 결국 문제는 고스란히 나에게 남았다. 오늘 토론회의 핵심, "지금 학교 영어 교육은 쏟아 붓는 돈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학부모라면 학교영어교육을 절대 신뢰하지 않는데 이 이유는 학교영어교육이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학부모들의 자녀 영어실력에 대한 욕망과 환상이 크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들여 여러 정책을 만들어도 '영어 사교육'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질 좋은 엄마표 영어교육 혹은 대치동에 일고 있다는 영어 공부방이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대안이 되고 있다."

이 그림은 교육방송의 '방과후 영어 교실' 활성화를 위한 교사 원격 연수의 평가 항목을 캡쳐한 것이다. 학부모들의 욕망도 문제지만 교육당국 역시,  선행학습을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선행학습 조장하는 교육당국 이 그림은 교육방송의 '방과후 영어 교실' 활성화를 위한 교사 원격 연수의 평가 항목을 캡쳐한 것이다. 학부모들의 욕망도 문제지만 교육당국 역시, 선행학습을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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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만큼은 영어 못해서 기죽지 않게 하겠다, 혹은 앞으로는 영어 못하면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시작된 영어 사교육이 학교 영어교육을 말아먹고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본적인 회화는 할 수 있도록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학교 영어교육을 쌈 싸 먹고 있다. '입시 이후로 모든 재미난 것, 흥미있는 것을 유보하라'는 암묵적 합의가 우리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입시 체제지만 입시체제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명문대 나와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즐거움, 살아가는 즐거움을 가르쳐줄 것인가? 친구들이 질문할 기회를 뺏는 것이기 때문에 선행학습을 죄악시한다는 독일의 사례, 평가를 위한 배움은 사라진다는 핀란드 교육계의 깨달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내 아이에게 영어 사교육 혹은 엄마표 영어교육을 시킬 것인가? '어쩔 수 없잖아' 답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바꿔가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태그:#서울영어, #국영평, #NEAT, #영어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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