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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신고함
 폭력신고함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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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마침내 학교폭력과 관련한 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교과부는 15일 보도자료를 내 "올해 3월 1일부터 초·중·고등학생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재한다"고 밝혔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학교폭력 행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학교 내외에서 학생 간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 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다.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규정된 9가지. ▲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 피해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 학교에서의 봉사 ▲ 사회봉사 ▲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 10일 이내의 출석정지 ▲ 학급교체 ▲ 전학 ▲ 퇴학 처분 등이다.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입시 전형 자료로 제공된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은 초·중학교는 졸업 후 5년, 고등학교는 10년간 보존한다는 것이 교과부 발표의 내용이다.

강경하게 나선 교과부... 이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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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들끓는 여론을 다스리기 위해 뭐라도 내놓기는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땅히 '눈이 번쩍, 귀가 쫑긋'해지는 묘책은 없으니 일단 가해 학생을 철저히 격리하는 '강경 모드'의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은 구제역이 번지자 살아 있는 가축들을 무참히 파묻었던 것처럼 교과부가 가해학생들을 격리하고 낙인찍는 '살처분'을 하겠다고 나선 것과 같다. 교과부가 교육 철학이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회자되던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이처럼 인간(학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철저히 외면하는 것을 보니 참담함이 더 커진다. 

교육(정책)은 마땅히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 폭력에 대한 인과관계를 살피고, 예방에 주안점을 두는 정책이 아니라 사고 발생 이후의 결과를 두고 학교생활기록부에 징벌과 낙인의 기록을 남겨 가해 학생의 미래에 '빨간 줄'을 그어버리겠다는 교과부의 발상은 학교폭력보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이 와중에도 학교폭력과 상급 학교 입시를 연결시키는 기막힌 모습은 경악할 만하다.

가해 학생은 학교폭력의 가해자로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규정된 9가지 처분 가운데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징계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를 최장 10년 동안 기록으로 남기거나,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것은 명백한 이중처벌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가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것과 같다. 거듭 말하지만, 배제와 낙인으로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은 결코 학교폭력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가해 학생에게 성찰할 기회와 시간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이해와 치유 방안은 전혀 고민하지 않고 내놓은 이번 정책의 부작용은 금방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학교 폭력을 진정시키고 비폭력과 평화, 그리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문화를 만들려면 교과부의 비교육적인 폭력부터 당장 중단해야 한다.
학교와 학생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해자를 응징하는 대책이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성찰의 기회와 시간을 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학교폭력의 인과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제한하고 가해자를 응징하는 데 몰입하는 것은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없다. 사안에 따라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하게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가해자였던 학생이 다른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독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의 약 50%가 동시에 가해자라고 한다. 우리도 이와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 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 한정해 해결을 모색하려는 시야를 벗어나야 하고 학교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다른 형태의 폭력을 사용해도 괜찮다는 폭력불감증을 걷어내야 한다. 당연히 교육 당국이 앞장서야 할 일이며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가해자를 응징하는 데 혈안이 된 교과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마뜩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학생기록부에 가해 사실을 기록한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근절될 수 있을까.
 학생기록부에 가해 사실을 기록한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근절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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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시인 이성복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모두 병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고. (<그날> 중에서)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고, 살처분하듯 가해자를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그들 모두의 '신음 소리'를 듣는 일이 우선이다. 경쟁만을 세뇌시켜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게 방치하는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 가해자의 미래에 '붉은 낙인'을 찍는 폭력은 "모두 병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비극적인 삶을 계속되게 할 뿐이다. 교과부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병들지 않고 아프지 않을 권리는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태그:#학교 폭력, #학교생활기록부,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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