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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싸고 서울시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가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주민발의로 시작되어 서울시의회에서 의결된 학생인권조례를 1월 26일 공포했다. 그러나 같은 날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은 대법원에 조례 무효확인소송을 냈다.

 

최대교원단체라는 교총은 불복종운동을 천명하고, 보수학부모단체는 조례무효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하고, 교장들도 난리란다. 나아가 교과부의 재의요구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직무이행명령에 이어 직무유기로 형사고발하는 것까지 추진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위법한 명령은 따르는 게 불법

 

헌법이 보장한 지방자치, 교육자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비판은 별도로 하더라도 교과부 장관이 대법원에 조례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그의 권한이고 자유이니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재의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을 이유로 직무유기로 교육감을 고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로 보인다.

 

현행 지방교육지치법 등은 교과부 장관의 재의요구가 있을 경우 교육감은 이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김승환 전북교육감도 이주호 장관의 직무이행명령을 거부한 이유로 현재 재판 중이다(김상곤 교육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형법 제122조(직무유기)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만약 유죄로 인정되면 교육감에서 물러나야 한다.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 의해 과연 대통령 임명직인 교과부 장관이 선출직인 시도교육감에게 명령을 한다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근본적인 논란이 있다. 이 논쟁을 차치하고서라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은 직무상의 정당한 명령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직무유기를 따지는데 있어 명령이행 여부보다 선행되는 것은 그것이 과연 정당한 직무상의 명령이냐 하는 것이다.

 

교과부의 재의요구명령이 지방교육자치법 제28조에 의한 정당한 명령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내용적으로 이 조례가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저해"해야 하며, 둘째 형식적으로 "의결사항을 이송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해야한다.

 

이 두 부분에 있어 이주호 장관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내용적으로 이 조례가 상위법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하게 해친다는 주장은 이미 서울교육청이 수차례 법률 자문을 거쳐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학생인권을 보호하자는 조례가 공익을 현저하게 해친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형식적 요건인 20일 기한도 초과하였음이 명백하다. 재의 요청 시한은 1월 9일이었는데 교과부는 이를 스스로 11일이나 넘긴 1월 20일에 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면 그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르는 게 불법이라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례이다. 공무원에게는 상관의 명령에 따를 의무도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의무가 법령을 준수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에 의한 적법 명령이 아니면 따를 의무가 없을뿐 아니라 따르는 것이 불법이 된다.

 

대표적인 판례가 5.18항쟁 관련하여 군부가 일으킨 불법쿠데타에 대하여 당시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위법한 명령을 따르는 것 자체가 불법이므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과부의 재의 요구 요청이나 이행명령은 그 자체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 시의회와 서울교육청의 주장이다.

 

경기-광주의 학생인권조례 때는 침묵

 

평등원칙과 자기구속원칙 위반 더 웃기는 것은 이주호 장관의 직무이행 명령이나 이에 대한 거부를 이유로 한 직무유기 고발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평등의 원칙, 행정의 자기구속의 원칙 때문이다.

 

국가를 비롯한 행정기관이 권한 행사를 함에 있어서 따라야 하는 행정의 일반원칙 중 헌법 제11조(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에 의한 평등의 원칙이 있다. 즉, 행정기관은 합리적 사유가 없는 한 행정 객체인 국민을 공평하게 처우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또 재량권의 행사에 있어 행정청이 동일한 사안에 있어서 제3자에게 행한 것과 동일한 결정을 하도록 스스로 구속당한다는 "행정의 자기구속의 원칙(법리)"이라는 것이 있다. 즉, 같은 행위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처분을 했으면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학생인권조례가 의결되어 공포된 것은 서울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작년 경기도와 광주광역시에서 체벌 금지, 두발과 복장의 자유, 차별 금지, 종교 행위 강요의 금지 등 서울과 거의 유사한 내용의 학생인권조례가 의결되어 현재 시행 중이며, 인천에서도 정규수업 외 학습 선택권 보장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학생학습권조례'도 시행 중이다.

 

우리 헌법에 다른 행정의 일반원칙인 평등의 원칙과 자기구속의 원칙에 따르면 이주호 장관의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행명령과 직무유기 고발은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똑같은 학생인권조례인 경기도와 광주시교육청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서울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만 문제 삼는 것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주호 장관의 '오버'... 결국 부메랑 될 것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교과부의 주장대로 곽노현 교육감이 직무유기죄라면 이주호 자신도 직무유기를 저질렀다는 결론이 나와 버린다.

 

형사소송법 제234조(고발)는 "②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학생인권조례가 불법이라면 김상곤 경기교육감이나 장휘국 경기교육감도 곽노현 서울교육감처럼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직무유기로 고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호 장관은 이들을 직무유기로 고발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교과부의 주장대로 곽노현 교육감이 직무유기라면 김상곤, 장휘국 교육감을 고발하지 않은 이주호 장관도 직무유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거꾸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김상곤 교육감과 장휘국 교육감에게 재의 요구 명령을 하지 않고, 직무유기로 고발하지 않은 것이 정당하다면 곽노현 서울교육감에게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직무유기로 고발한 것이 오히려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이 된다. 직권남용은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니까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공포가 불법이라면 이주호 장관은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장휘국 광주교육감을 고발하지 않은 것으로 직무유기죄를, 또는 곽노현 서울교육감에게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직무유기로 고발한 것으로 직권남용죄를 저지르게 되는 셈이다. 이주호 장관에게는 이래도 범죄, 저래도 범죄인 사면초가이다.

 

이주호 장관이 아무 죄가 없게 되려면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공포가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한다. 교과부, 특히 이주호 장관은 딜레마에 빠졌다. 곽노현 교육감을 잡기 위해 던진 직무이행명령과 형사고발이 부메랑이 되어 자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형국이다.

 

학생인권을 보호하자는 운동을 정부부처, 최대교원단체, 학교 수장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교육계에서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집단들이다. 교육기득권세력이 반인권교육부, 반인권교총, 반인권교장이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모양새다. 이주호 장관이 정말로 학생인권조례로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직무유기로 고발까지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태그:#학생인권조례, #곽노현,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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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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