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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의 모습
 강정마을의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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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았다. 영화를 보며 지난 봄, 몹시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정지영 감독이 영화인들을 이끌고 범섬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강정 앞바다에 와서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다 투옥된 전 영화평론가 협회장 양윤모씨의 구명을 위해 성명서를 낭독하던 때가 새삼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 엉겁결에 우산과 메가폰을 바쳐 들고 그 분의 검은 곱슬 머리 아래 둥근 안경테를 통해 노 감독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았고 마치 구토하듯 쏟아내는 불의한 권력자들에 대한 분노의 거친 목소리를 들었다.

그날 어두운 먹구름이 뒤덮인 한라산과 회색 빛깔의 제주 앞바다의 풍경은 <부러진 화살>에 드러나는 우리 나라의 암울한 현실과 너무도 흡사했던 것 같다. 영화는 무섭고 준엄한 법과 그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힘센 법관들 앞에서 상식의 힘으로 당당하게 버티는, 실은 힘없는 한 시민의, 결과가 예견된 싸움을 그려주고 있다.

어찌 보면 슬픈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이 왜 우리에게 통쾌함과 용기마저 주는 것일까? 왜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러니 너희도 알아서 기라는 교훈이 아니라 나도 저런 용감한 패배자가 되고 싶다는 무모한 용기를 심어 주는 것일까? 아마 그 이야기가 우리 강정마을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곳 강정에서 많은 김명호 교수들을 만난다.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 수감 투옥되었던 양윤모씨와 최성희씨, 자기 고향을 지키기 위해 역시 옥고를 치른 강동균 마을 회장과 고권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대책위원장이 그들이다. 그 밖에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 무서운 법과 법관에 의해 억울하게 처벌을 받아 왔다. 영화와 비슷한 점은 이들이 선 법정에서 피고인들은 용서해 달라거나 선처해 달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상식을 지키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호 교수와 같은 장애물 앞에 선 강정마을 주민들

강정주민들은 유식한 법관들이 왜 몰상식한 판결을 내리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김명호 교수를 가로막고 있는 똑같은 장애물 앞에 서 있다. 왜 법관들은 매수된 해녀들과 일부 마을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80여명이 모여 해군기지건설을 찬성하기로 사전 모의하고 도주한 2007년 4월 26일에 있었던 불법적인 마을회의의 결과는 영구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마을의 최소 유효투표인 수를 훨씬 상회하는 720명이 모여 685명의 결의해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한 2007년 6월 19일의 마을 회의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왜 법원이 우리 마을 앞 바다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구럼비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정해진, 절대 보전지역을 날치기로 해제시킨 것이 바로 코 앞에 살고 있는 우리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이곳에 사는 붉은발 말똥게와 맹꽁이와 새뱅이 새우들뿐인데 그들은 고소 고발을 할 수 없으니 아무도 법적인 원고 자격이 없다는 말이 되는데 이런 이상한 판결이 상식적인가 의문이 든다. 그러니까 천성산 도롱룡이 고발인이 되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왜 우리는 1km가 넘는 너럭바위 구럼비를 폭파시키고 그 위에서 샘 솟는 맑고 깨끗한 용천수들을 시멘트로 덮어 우리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살아 있는 바위를 죽여 이를 전쟁기지로 만들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다. 우리는 교육과 의료와 같은 복지가 아니라 해군기지 건설에 1조원을 투입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 기지에 들여 올 잠수함 2척과 이지스함 2척, 구축함 2척 등 군사기지와 무기 구입을 위해 7조 5000억 원이란 돈을 쏟아 부어 결국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제주도가 어리석게 끌려 들어갈 미끼를 제공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비용으로는 가난한 서민들의 주택 7만 5000채를 지을 수 있으며 대학 등록금이 현 상태에서 인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거의 백 만 명의 대학생들이 일 년 동안 학비 없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교육과학기술부발표 '2011년 OECD 교육지표'에서 한국의 평균 대학 등록금. 국공립대 5315달러, 사립대 9586달러. 이에 따라 한국의 1년 대학 등록금을 대략 800만 원이라 하고 계산). 진정한 국가 안보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현실적인 불안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전에는 무서웠던 법이 점점더 우스워진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몰상식한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도록 교육 받아 온 것 같다. 내 어릴 적 학생 생활기록부에 '준법 정신 결여'라고 담임 선생님의 단정한 글씨가 쓰여져 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집단 생활에서 강요하는 것이 싫었다. 모두를 똑같은 통조림처럼 만드는 교복이 싫었고 일본 군인처럼 목을 조르는 훅이 싫어 풀어 헤치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에는 가끔, 교무실 옆 복도를 칸막이로 막아, 선생님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던 교도실 신세를 자주 졌다. 한번은 윤리 선생님이 '월남 패망의 원인을 학생들과 승려들이 무분별한 시위로 인한 사회 불안이었다'고 가르치는데 대해 '진정한 근본 이유는 부패한 독재정권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수업을 거부했다가 교무실에 끌려가 모든 교사들 앞에서 교감 선생님에 의해 '빨갱이'라는 치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고 결국 교도실에 수감되어야만 했다.

내가 지금 감옥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나는 이 글을 2012년 1월 27일 업무 방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이후 제주 해양 경찰서 유치장에서 썼다)이 이미 이 때부터 인연이 닿아 있었나 보다. 그러나 그 때나 또 지금 내가 갇혀 있는 이 철 장 속에서나 변함 없이 나는 상식과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고 이는 나를 외롭게 고립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점점 더 이전에는 무서웠던 법이 점차 우스워져 간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신성한 살아있는 바위 구럼비에 올라서서 분열된 강정 마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또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을 지켜 달라고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 나의 인간성과 신성에 어긋남이 없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존재감과 책임감조차 느끼고 있는데 법원은 이 거룩한 바위를 파괴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공사 금지 방해 가처분(제주지방법원 제3민사부는 2011년 8월 29일 해군이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37명을 대상으로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접근을 금지하고, 시설공사의 건설사업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신청을 인용 결정했다) 결정을 내렸고 이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에게 매회 2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판결했으니 50번 이상 출입한 나로서는 이미 1억 원 이상의 벌금을 물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마을의 평화를 위해 전래로 신성하게 여기는 구럼비 바위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 때문에 1억 원의 벌금을 물게 하는 법과 법관들이 내게는 코미디와 코미디언들로 보인다. 이들은 출입금지 구역인 해군기지 건설 사업장에 바다를 헤엄쳐 들어가 그 바위 위에서 기도하는 것이 몰상식한 행동이요 이를 벌하기 위해 한번 들어오면 200만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벼르지만 내게는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바위와 그 앞의 오만 가지의 바다 생물들을 지켜 달라고 신에게 기도 드리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다.

나의 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벌금은 점차 늘어 1억이 넘어가고 나니 그런 우스꽝스런 법을 만든 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재판이 개판'이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정의를 벗어난 법의 위엄과 공권력의 협박 앞에서 상식과 양심이 꼿꼿이 맞서면 준엄한 법정의 경건한 재판은 우스운 개판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그런 개판 법정을 지금 제주 법원에서도 목격한다.

302호 법정에서는 격주마다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주민들이 피고석에 앉아 있다. 피고석이 만원이 되어 더 이상 앉아 있을 자리가 없어 방청석까지 그득히 메운다.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농부와 어부들이다. 누가 이 순박한 주민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는가?

이젠 범죄자로 가득차버린, 평화로웠던 강정마을

조용하고 평화로운 강정은 이제 제주에서 범죄자가 가장 많은 마을이 되었다. 이 부끄러운 이름이 왜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지 아는가? 이는 우리 제주도와 대한민국 사회와 그 질서를 유지한다는 법정이 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힘만 있으면 불의도 정의를 압도하는 정글 법칙이 이런 법과 법원을 포섭해 버렸다. 법관들의 어리석은 판결은 갈등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분쟁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제주 법원은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재판으로 연일 북새통이다. 개판 같은 재판으로 인해 강정 해군기지로 인한 강정마을의 갈등과 분쟁은 이제 전국적인 문제로 확대되었고 심지어는 노엄 촘스키와 글로리아 슈타이넘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과 저명한 평화 활동가들까지 가세하는 국제적인 분쟁 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법은 상식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제 법관들은 지혜롭고 용기 있는 판결을 상징하는 솔로몬의 칼을 들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김교수의 재판에서와 같이 같은 판사의 재판을 동료 판사에게 맡길 수 없듯이 정부와 국방부장관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힘겨운 법정 싸움을 하고 있는 강정주민들의 재판을 그 정부의 한 몸통을 이루고 있는 사법부의 법관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가재는 게 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국민 배심원'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이런 유식한자들의 몰상식한 판결을 구제하는 길이다. 상식이 법을 이길 수 있는 법정을 만들자. 정부의 실책으로 고통 당하는 국민을 위한 정의로운 판결, '국민 배심원제도'가 답이다. 이것만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다루는 제주 법정의 재판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이다.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제주도, #정지영감독, #부러진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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