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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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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없는 사람 너무 살기 힘들어. 내 딸딸이(바퀴가 두 개 달린 작은 수레)를 직원들이 가져가 버렸어. 왜 가져가느냐고 항께 이름을 안 써놔서 그랬다고. 나는 몰랐다는디 안 줘. 팔려던 우거지도 박스째 가져가 버렸어. 농산물을 다 포장헌게 시래기 주울 것도 없어. 박스랑 신문지도 줍고 그랴. 시래기 줍는 할머니들 많이 쫓겨났어. 나한테 그러지는 안 하는디 나가라는 분위기여." - <한겨레신문> 2011년 4월 22자, '목도리 할머니' 철거 위기에 눈물' 기사 중 일부

이명박 대통령에게 목도리를 선물 받아 일명 '목도리 할머니'라고 불리던 가락동 시장 좌판 할머니의 삶의 여전히 고달팠다. 대통령과 만난 후 3년이 지난 2011년 4월 <한겨레신문>을 통해 할머니의 근황이 알려졌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노점상이었고 그나마도 시장 현대화 사업 때문에 밀려날 처지에 있었다. 인근에서 좌판을 하는 70대 할머니의 하소연엔 대통령의 생색내기용 행보에 대한 원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대통령이 악수하면 뭐하고, 목도리 주면 뭐할 거야. 도매 떼어다가 소매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해. 자식 거두느라 노후대책 못 해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야." - <한겨레신문> 2011년 4월 22일자 기사

취임 4주년을 맞는 대통령이 지난 22일 특별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2008년 가락동 시장에서 자신의 목도리를 건네줬던 목도리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일은 한 정부 덕에 국위도 선양했고 국격도 높아 졌으며 위기도 빨리 극복했지만 아직도 서민들이 살기 힘드니 남은 1년 살만하다 말할 수 있도록 전력을 쏟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지 않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꽉 막히고 화가 난다고 했다.

4년 내내 보인 친서민 행보...근데 서민은 힘들다

하지만 난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참, 불편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 어이없고, 사과도 변명도 아닌 책임 떠넘기기 수준의 발언에 할 말을 잃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광고에 등장했던 욕쟁이 할머니, 시계를 채워주고 미소금융을 찾아가기를 권유했던 할머니, 시장통에서 대통령에게 어묵을 팔았던 아주머니까지 언제나 이명박 대통령 주변엔 '서민'이라고 불리는 시장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존재했다.

지난 2009년 9월, 남대문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지난 2009년 9월, 남대문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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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대통령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나 친서민 행보 때 어김없이 등장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정작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오히려 서민들의 빚더미만 늘어가고 힘들어 못살겠다는 한숨소리만 넘쳐나고 있다.

대통령은 그 책임이 국제적 금융위기에 있다고 했다. 정부가 밤잠을 설쳐가면서 노력했지만 불가항력이라고 항변했다.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신한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의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강 회장은 지난 20일 열린 한국경제학회 공동학술대회 전야제 축사에서 "현 정부의 비전인 '747공약'은 금융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 폐기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7% 성장, 4만불 소득, 세계 7위 경제'라는 다분히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며 표를 모았던 이명박 정권. 이제와서 엉망이 된 서민살림의 책임이 국제 금융위기 탓이라니,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고 했던, 못된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재작년에 전설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셨죠. 강만수 장관이라고. 들어오시자마자 환율이 올랐죠." - <환율지식은 돈이다>(21세기 북스, 송기균 지음)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강만수 사단'이라고 일컬어진 경제 관료들은 고환율 정책을 적극 유도하고 시행했다. "어떤 선진국에서도 환율에 대해 시장 자율에 맞기지 않는다", "환율이 올라갈 경우 서비스수지도 좋아진다, 경상수지 중요하게 여길 것" 등 강만수 전 장관의 임의적인 고환율 옹호 발언은 2009년 평균 환율을 1276원까지 끌어 올렸다. 그 결과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은 사상 유례 없는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치솟는 기름값과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올 줄 모르는 고물가에 시름했다. 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장 주장에 따르면 무려 109조 원이라는 돈이 이명박 정권 집권 1년 반만에 서민들의 지갑에서 빠져 나갔단다. 정부의 임의적인 고환율 정책은 대기업을 돈방석을 올려 놓았지만 중소기업은 키코(KIKO) 피해로 줄줄이 도산했고 서민들은 빚더미에 올라 앉아야만 했다.

가계 부채 900조...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 성적표

물가와 기름값만 서민들의 삶을 옥죈 것은 아니다. 주택 정책 또한 서민들의 어깨를 늘어지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돈을 빌려 집을 사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DTI 규제를 풀고 은행 문턱을 낮추고 저금리를 시행했다.

겉보기엔 서민들을 위한 주택정책이었지만, 실제는 건설사 살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서민들의 현실은 어두운 터널 속과 같다.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이자도 감당 못하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했고, 전세난은 돌림병처럼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금리가 인상되고 집 값이 하락하는 추세에서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가의 아파트를 지어 놓고 돈 빌려 줄 테니 집사라는 건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은 대표적 친재벌 반서민 정책이었다.

최근 다시 휘발유값이 치솟고 있다. 하지만, 휘발유값이 2000원이 되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던 정부는 끝내 묵묵부답이다. 이번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물가를 3%로 잡겠다고 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기름값을 두고 어떻게 물가를 잡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기껏 알뜰 주유소를 만들고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허가해서 기름값을 낮추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명박 정권의 물가 정책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배춧값, 과일값이 폭등해도 정부는 항상 유통구조만 탓한다. 솟값은 폭락하는데 쇠고기값은 그대로인 이유도 동네 정육점과 식당이 폭리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린다. 대형마트와 SSM이 골목을 유린할 때는 시장자율이 우선이라더니, 물가폭등 이야기만 나오면 자영업자들과 시장을 물가폭등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고환율 정책, 건설사 살리기 주택 정책, 변죽만 울리는 물가 정책, 비정규직 양산과 저임금 구조 방치, 복지요구 딴죽걸기 등등. 이명박 정권 4년은 누가 보더라도 재벌과 대기업이 우선이었고 서민의 살림살이는 뒷전이었다. 이런 친재벌 정책들을 4년 내내 유지하면서 서민들의 궁핍한 살림살이가 오롯이 국제적 금융위기 탓이라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가계 부채 900조, 가구당 대출 5265만 원.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닌 이명박 정부의 허울뿐인 서민 정책의 성적표다.    

남은 1년, 서민들 위하겠다지만...못 믿겠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손녀들에게 과자를 사주고 있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손녀들에게 과자를 사주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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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충분히 안다. 그러나 내가 가지 않는다고 했지 않냐? 그 정도로 재래시장이 나아지냐? 내가 손잡아 준다고 재래시장이 살아나나?" -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개마공원, 김병준) 속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2002년 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상인들 손이라도 잡아주라'는 수석비서관의 권유를 여러 차례 물리쳤다고 한다. 이후 비서관이 다시 재래시장 방문 이야기를 꺼내자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유인즉 재래시장을 살릴 제대로 된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는데 손만 잡아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었다(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3월, 취임이후 처음으로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전임 대통령과 비교해 이명박 정부의 공과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허나, 서민들의 궁핍한 삶은 남의 탓이고, 남의 임기 1년 동안 서민들을 위해 전력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에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목도리를 둘러주고, 시계 채워주고, 어묵 먹어 준다고 서민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다. 올해 설에도 이명박 대통령 내외는 손녀를 앞세워 시장을 찾았고, 손녀가 입은 명품 잠바 때문에 논란을 빚기도 했다.

서민들을 위한 남은 1년은 말보다 행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진정성 없는 재래시장 마케팅, 이제 제발 그만 좀 해줬으면 좋겠다.


태그:#이명박 , #친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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