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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를 자연미라 할 때 자연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선, 자연에 대한 동경심, 경외심, 자연을 닮으려는 생각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미술사학자 김원용은 "둥근 산, 잔잔한 물, 맑은 하늘, 부드러운 산수와 같은 우리의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자연미의 원천으로 자연 순응성은 물론 우리의 미적심성, 미적 가치지향성, 미적취향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산봉우리와 초가지붕은 많이 닮아 있다
▲ 왕곡마을 초가 산봉우리와 초가지붕은 많이 닮아 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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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예전에 선(善), 미(美), 능(能), 호(好)를 모두 요시(よし)라고 불렀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미의 관념이 대상물에 대한 장식적 아름다움이나 선(善)과 상관없는 시각적 아름다움에 그치고 있지 않다.

 자연미는 우리의 부드러운 산하에서 나온다
▲ 예천 의성포 자연미는 우리의 부드러운 산하에서 나온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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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리스인은 '마음씨 좋음', '말쑥함'의 의미를 미에 포함시키고 있었고 공자도 선을 미보다 위에 두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라는 것은 단순히 예술의 문제나 자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도덕의 문제, 마음의 문제로 연결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연미는 우선 자연을 닮으려는 생각에서 나온다
▲ 청자석류형주전자 자연미는 우선 자연을 닮으려는 생각에서 나온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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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양(羊)을 심미적으로 보았다. 의(義), 미(美), 선(善) 자에 모두 양(羊)이 들어가 있다. 중국인들도 선과 미가 동떨어진 것으로 보진 않은 모양이다. 이는 일본과 마찬가지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김용준은 "최고 경지에 있는 순결한 감정은 곧 미(美)요, 곧 선(善)이요, 진(眞)"이라 하면서 "미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인생과 전연 유리된 것이 아니고 가장 실용적이고 가장 건강한 것일수록 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미와 선을 다르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감정으로 보았다.

고유섭은 "뾰쪽하고 날이 선 것, 얄밉상스럽고 천박하고 경망하고 난잡하다든지 고루하고 윤기 없고 변통성 없는 것은 바람직한 미적심성이 될 수 없다"며 "이런 미적 심성으로는 미적 체험도 예술 창조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주체의 바람직한 미적심성"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바람직한 미적심성으로 순박, 순후, 온축, 완만, 질박, 담소 등과 같은 심성을 들고 있고, "이런 심성은 수양이나 사상적 탐구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깊숙한 곳에 본연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인위적이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실제 보름달도 약간 일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다
▲ 보름달 실제 보름달도 약간 일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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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적 심성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백자달항아리다. 백자달항아리는 완벽한 원형이 아닌 약간 일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다. 이천 금사리 가마터도공들은 달항아리를 만들 때 추석이나 고향, 부모 등 보름달에 대한 상념으로 가슴은 두근두근 뛰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름달과 많이 닮았다
▲ 백자달항아리 일부 보름달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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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항아리는 보름달이 약간 일그러진 모양이기도 하지만 도공들의 두근거리는 가슴이 빚어낸 것이다. 일그러진 모양이 결코 졸(拙)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다. 여기에는 도공들의 순박하고 완만한 심성이 담겨 있다. 이는 나고 자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미적심성에 기인한다.

일그러진 달항아리에는 도공들의 심성이 담겨있다
▲ 백자달항아리 일그러진 달항아리에는 도공들의 심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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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적심성은 인간본연의 깊숙한 곳에 본연적으로 자리 잡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으로 고유섭과 야나기가 얘기한 '민예적(民藝的)'인 것과 통한다.

인간본연의 깊숙한 곳에서 출발하여 생활 속에서 싹트고 자란 미적 심성을 그대로 드러낸 상품화되지 않은 것을 민예적이라고 하면 민예적인 미는 자연미라 할 수 있겠다.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무심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개성 있고 창조적이며 기교적인 것과는 대비된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철화끈무늬병은 이런 미적심성이 낳은 조선의 걸작이다.

개성·창조·기교적인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 백자철화끈무늬병 개성·창조·기교적인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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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은 서구미술의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천재성, 이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이원론에 기초한 표상주의, 엘리트주의 등의 한계를 넘어 무심, 자연, 무아의 토대위에 그려지는 것이다"라고 한 야나기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언급한 이성, 인간 중심적 사고는 유가사상이나 서양사상이 내세우는 진(進)의 사상이며 무심, 자연, 무아라는 것은 근본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귀(歸)의 사상, 즉 노자의 사상이다.

우리의 미에는 바른말이 마치 반대되는 것 같은 노자의 정언약반(正言若反)의 철학이 담겨있다. 고유섭은 "중국미술은 웅장한 건실미가 있으나 구수한 맛이 없고 일본예술은 세부까지 치밀하고 전체가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어도 큰 맛이 없는 반면 한국미술은 비록 작다하더라도 구수한 큰 맛이 있다"고 했다.

자연의 제약에서 오는 '작은 것'과 구수한 큰 맛에서 '크다'는 것은 서로 개념적으로 모순되면서도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은 절대성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미는 없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해가며 미가 추(醜)가되기도 하고 선이 불선(不善)이 되기도 한다.

최순우도 한국미(韓國美)속에 내재한 미적감정을 얘기하면서 "어설프면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 그런 것이 한국미다"라고 하고 있는데 '어설프다'와 '깊이 있다'라는 상반된 미적 감정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어설픈 것은 깊이 있는 것으로 전화(轉化)한다. 변증법적 구조다. 한국미는 구수하면서도 큰 맛이 있고 어설프면서도 깊이가 있다. 울음이 있으면서 웃음이 있다. 고유섭이 말한 "어른 같은 아해(아이)"와 통한다. 

자연의 제약에서 오는 작은 것은 구수한 큰 맛으로, 어설픈 감정은 깊이 있는 감정으로 질적 전화해 가며 한국의 미가 형성되었다.

일본에서 큰 대접을 받는 조선막사발은 무명의 도공에 의해 무욕의 경지에서 무심히 만들어진 것이다. 너무나 평범해 보여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유치원생이 도자기체험관에서 조몰락거리다 우연히 만든 그릇 같다. 어설프고 어수룩하고 구수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릇에는 깊이가 있고 큰 맛이 있다. 그래서 이런 그릇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손을 빌려 만들었다고 하기까지 한다.

어설프고 어수룩하고 구수하게 보이지만 이 그릇에는 깊이가 있고 큰 맛 이 있다.('한국의 미를 다시 읽는다'에서 재촬영)
▲ 이도다완(막사발) 어설프고 어수룩하고 구수하게 보이지만 이 그릇에는 깊이가 있고 큰 맛 이 있다.('한국의 미를 다시 읽는다'에서 재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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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고 완전하며 치밀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이 막사발을 미치도록 좋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렇게나 생기고 깔끔하지도 않으며 잘 다담어지지도 완전한 대칭을 이루지 않는 막사발이기에 정리정돈을 잘 하고 직선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한숨 돌릴 여유를 찾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한국의 미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나를 철저히 버리는 무관심성,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을 버리는 것, 자연을 지배하지도 가두려고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빌려 쓰려는 마음에서 오는 자연미다. 

자연미는 뾰쪽하고 날이 서지도, 천박하고 경망스럽지도, 고루하지도 않으며 순박하고 순후하며 완만하고 질박한 우리의 미적 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미적 심성은 인간 본연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인위적으로 학습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다. 이래서 한국의 미는 어설프지만 구수하고 크면서 깊이 있는 맛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에 송고예정



태그:#한국의 미, #자연미, #민예, #미적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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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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