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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국회에서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박지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26일 오후 국회에서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박지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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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개별 헌법기관에 대한 모독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막후정치에 대한 역풍이 거세다. 내달 4일로 예정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선거 후보 등록 마감일인 26일,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러닝메이트 합의는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올드보이의 귀환'으로 '80년대식 막후정치'가 되살아났다는 비판이 도처에서 들린다.

당내 19대 국회 당선자들은 이 같은 막후정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SNS시대에 이런 기획정치가 통할 것인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근간을 이루는 호남 측이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 안으로 수렴되는 것이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수도권 의원들의 반발은 극에 달한 상태다.

한 당선자는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걸어 다니는 헌법기관'인데, 위에서 찍어 누르면 시키는 대로 한다고 생각한 것인가 헛웃음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이 당선자는 "당이 혁신의 동력도 상실한 상태에서 대중적 지지도마저 떨어뜨리려고 몸살이냐"며 "막후정치 구도를 짜놓고 누군가 나서 판 정리를 하면 다 된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느 시절 정치냐"고 개탄했다.

그는 "이렇게 대중정치의 감각이 없다는 점에 놀랄 정도"라며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가 나서 모든 정치판을 교통정리하듯 그렇게 나선 모양인데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질서에도 맞지 않는다, 굉장한 역풍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에 뽑히는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하면서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하는 당대표 선거를 관장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누가 그 공정성을 믿을 수 있겠냐"라며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원탁회의에서 '이-박 합의' 공식 논의한 바 없다"

무엇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번 출마 기자회견문을 통해 "원탁회의 원로들께서도, 많은 동료의원과 당선자 여러분께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행동하라고 말씀하신다"며 "돌아온 박지원이 민주통합당의 정권교체를 이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원탁회의 측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다소 와전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원탁회의의 핵심 관계자는 26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원탁회의가 이 문제를 가지고 공식 논의한 바가 전혀 없다"며 "원탁회의 멤버인 이해찬 전 총리가 세종시에 출마할 때도 상의하지 못한 채 급하게 결정이 돼서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당선축하 등 겸사겸사 모인 오찬이었고 그 오찬장에서 몇몇 원로들과 담소를 나누긴 했지만 그 내용을 공식 의제로 다룬 바 없다"고 밝혔다.

원탁회의 멤버인 한 시민사회 원로도 이날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우리가 얘기한 것은 호남, 친노 이렇게 민주통합당이 서로 나눠 싸우지 말고 단합된 모습을 국민들께 보이라는 것이었지 무슨 이런 일을 기획하라는 것은 아니었다"며 "민주당의 총체적 반성 속에서 하나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었는데 아마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전형적인 '이해찬식 기획 작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기자회견에 유기홍, 김태년, 김현 등 친노 진영의 당선자들이 박 전 원내대표의 뒷줄에 서서 지원하는 '그림'을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아연실색하는 분위기다. 전형적인 '줄 세우기 정치'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기획은 이해찬 전 총리 측에서 이 일을 성사하기에 앞서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명단을 놓고 직접 전화를 돌린 뒤 '표계산'을 끝내놓고 내린 결정이라는 데 더욱 놀라는 분위기다.

앞서 언급한 한 당선자는 "개별 의원들에게 일일이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전화를 받은 의원과 전화를 받지 않은 의원을 구별할 수 있다"며 "이 전 총리 측이 직접 표계산을 다 해보고 관철이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것말고는 별도의 대안이 없다는 판단 아래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그는 "이 전 총리의 이런 막후정치는 대한민국 정치를 진정으로 후퇴시키는 일"이라며 "개별 헌법기관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했다.

안민석 "이-박 합의 저항할 당내 그룹 없다는 게 더 서글퍼"

민주통합당 이해찬 정세균 상임고문, 박지원 최고위원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민생공약실천 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해찬 상임고문은 전날 밤 박지원 최고위원에게 원내대표 출마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정세균 상임고문, 박지원 최고위원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민생공약실천 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해찬 상임고문은 전날 밤 박지원 최고위원에게 원내대표 출마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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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3선의 안민석 의원은 이번 합의에 대해 "최상의 조합과 최악의 조합 아닌가"라며 "민주정당에서 의원들은 배제한 채 계파의 수장들이 모여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전형적인 부패정치"라고 비판했다.

안 의원은 "더 속상한 것은 여기에 저항할 만한 당내 그룹이 없다는 것"이라며 "이 점이 상당히 서글프다"고 말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박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원내대표 후보 중 이렇다할 만한 대안이 없는 가운데 두 분이 합의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커진 측면이 있다"며 "촛불집회 한 번 안 나온 분, 반값등록금에 반대하는 사람, 정봉주 의원이 구속돼 있는데 구출할 생각은 전혀 없는 분, 이런 분이 민주통합당의 원내대표가 돼야 하는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원내대표 출마자 가운데 무슨 결기가 있는 분이 없었다는 것이 애초의 문제"라며 "더 지적하자면, 민주통합당의 신선한 이미지 제고와 당의 정체성에 맞는 후보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내 역학구조와 당이 화합하는 차원에서 기능적으로만 본다면 적절한 조합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정치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데 과연 이 프로세스가 국민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선의 정청래 의원은 "아무리 아름다운 말씀도 정신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아름답지 않다면 안 되는 게 아닌가"라며 이른바 '액자론'을 폈다.

정 의원은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는 데 반대할 생각이 없고 오히려 긍정적"이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마무리됐다면 비판이 없었겠는데 전당대회를 앞둔 마당에 이렇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가 이것을 할 테니 너는 이것을 하라는 식은 좀 아닌 것 같다"며 "국민들이 제일 경계하는 것이 기득권 지키기, 또 우리가 이렇게 할 테니 너희는 따라오라는 식으로 가르치려는 태도, 우리가 이걸 결정했으니 따라오라 이런 것인데 이것은 정말 SNS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또 "친노-비노 구분하면서 진영논리를 세우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친노 계파의 수장으로 스스로 전락시켜 모독하는 일"이라며 "영남, 호남, 친노, 비노 이렇게 부르는 것은 스스로 붙이는 계급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해찬-박지원 연대... 문재인은 왜 꼈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민생공약실천 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민생공약실천 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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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의 유은혜 의원은 "두 분이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다고 해서 다 될까"라며 "두 분이 대선까지 고려해 필요에 의해 그렇게 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원들 그게 최고의 해법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 의원은 "당내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개인적으로는 대선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까지 끼인 모양새도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지적처럼 이번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간의 합의에 문재인 상임고문이 '메신저' 역할을 한 점을 비판하는 흐름이 꽤 세다. 참여정부에서는 문 상임고문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현재로서는 민주통합당의 주목받는 대선주자인데, 그런 문 상임고문을 이 전 총리가 계속 '메신저'로 활용하는 것이 적합한가 문제제기가 잇따르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당선자는 "친노 스스로 대선주자인 문 고문을 아직도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며 "당내 핵심 대선주자인 문 고문을 이 전 총리의 메신저로 쓴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명숙 전 대표와의 불협화음으로 이 전 총리의 탈당설이 제기됐을 때도 문 상임고문이 '메신저'로 한 대표를 만난 일이 있다. 당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 고문이 이 전 총리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 결코 좋은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게 당내 주된 시각이다.  

진보개혁모임은 유인태 후보 밀기로

재선의 신학용 의원은 "당이 반민주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길로 가고 있고, 구태정치"라며 "두 사람이 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당권과 대권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발상은 국민에게 오만으로 비쳐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신 의원은 "상임위 배정 등을 놓고 의원들을 줄 세우기할 텐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유치하다"며 "과연 당이 두 사람의 뜻대로 흘러갈지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모두 양식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싶다"고 덧붙였다.

재선의 노웅래 의원도 "잘할 수 있는 분들이지만 선전포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목희 의원(재선)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함께 할 수 있겠지만 민주적 절차를 생각하면 적절하지 않다"며 "화합과 단결을 위한 게 아니고 '나는 뭐하고, 너는 뭐하고' 이런 거는 공식적으로 할 얘기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486 정치인 중 하나이며 진보개혁모임에서 활동 중인 우상호 의원(재선)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6일 정오 21명의 정치인들이 모였다"며 "의논 결과 유인태 의원이 출마하기로 했으니 그를 지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는 "진보개혁모임 회원 중 일부는 '이박 합의'의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절차와 방법이 옳지 않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계파를 뛰어 넘으려 했는데 오히려 파장을 만들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3선의 김동철 의원은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대의를 위해서는 친노, 비노가 따로 있을 수 없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편가르기를 하는 것 자체가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며 "밀실에서 둘이 합의했다고 해서 지금 민주당이 처한 문제점과 한계가 극복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소위 '친노와 비노'에게 묻고 싶다"며 "이해찬 상임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이 각각의 계파를 온전히 대표하는 분들이냐"고 물었다.

그는 "원내대표는 19대 당선인들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선출하는 것이며, 당 대표는 당원들이 중심이 되어 전당대회에서 자웅을 겨루는 축제의 무대"라며 "민주정당의 위상에 걸맞는 접근방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3선의 조정식 의원도 개인 성명을 발표하고 "당의 혁신은 당 지도부의 선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원내대표와 당대표-최고위원 그리고 대선후보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쟁을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이 과정을 통해 당이 혁신되고 대통합을 이뤄낼 때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고 정권교체도 이룰 수 있다"며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쟁에 의해 혁신과 대통합을 이뤄내는 당 지도부의 선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내 의원들의 부정적 의견이 확산되면서 최악의 경우 박지원 의원이 낙선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다닌다. 초선 의원이 54명으로 127명의 의원 가운데 1/3에 해당되는데 이들의 선택이 어디로 기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로서는 박지원 의원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투표결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박 합의'가 알려진 첫날 혹은 이틀째까지는 저항이 있겠지만 정작 1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고 냉정을 되찾으면 민주통합당 의원들도 '현실적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은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저항이 거세지만, 정작 투표날이 되면 대안 위주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새로 구성된 민주통합당의 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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