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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 책겉그림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 철수와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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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생님이 거짓말쟁이가 되셨다. 이유는 선생님이 수요일날 6월의 일기가 어디 있냐고 물으셨다. 내가 안 가져왔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목요일에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가져갔는데 또 내일 가져오라 하셨다. 그리고 오늘 가져갔는데 또 내일 가져오라 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이 거짓말쟁이가 되셨다. 그리고 청소를 하는데 청소가 하기 싫어서 청소를 빨리 하고 장난만 쳤다."(104쪽)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화내는 아이들도 있고 짜증내는 아이들도 있다. 째려보는 눈빛으로 다시는 약속 같은 건 안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일이면 처음인양 다시 나와의 약속을 만든다는 것을. 때로는 아이들이 나보다 더 너그럽다."(106쪽)

문현식 글·홍윤표 그림의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이들이 솔직하게 쓴 일기장과 그에 대해 선생님이 답을 한 내용의 일기장이 들어 있다. 그야말로 꾸미거나 포장을 하거나 마지못해 쓴 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글로 옮긴 일기장들이다. 선생님이 쓴 일기도 그에 뒤지지 않는 사실 감정을 잘 드러내준다.

사실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딸아이도 일기를 쓴다. 아직 문장도 서툴고, 논법도 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 더욱이 기억을 더듬어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독특한 일을 떠올리는 것도 능숙하지 않다. 그럴 때면 엄마가 나서서 조목조목 정리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어쩔 때는 문장 하나를 통째로 불러주기도 한다. 너무 답답해서 그럴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일은 좋지 않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는 그런 핀잔으로 맞선다. 민주가 스스로 일기장을 쓰게 해야지 엄마가 다 망쳐 놓는다고 말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 겪은 일 그대로를 쓰게 해야지, 엄마가 다 가르쳐 주면 뭐가 되겠냐고 말이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민주가 느낀 그대로를 쓰게 해야 된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이 책이 좋은 게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 일기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 아이들 일기가 너무나도 솔직하다는 것, 아이들 일기에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각들이 들어 있다는 것, 아이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게 얼마큼 부모 생각과 다른지 알 수 있다는 것, 그것들이 알차게 들어 있다.

이를테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었던 일을 단 세 줄로 적어 놓은 것, 어떤 일기는 한 줄 반으로 또 다른 일기는 정확히 한 줄로 끝낸 것도 있고, 어떤 일기는 빼빼로 데이에 관한 다섯 줄의 시도 있고, 다른 아이는 일기 쓰는 것 자체에 대한 자기 마음을 담아 적은 것도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출근해서 퇴근하는 어른들의 하루 일과를 자기 느낌대로 적어 놓은 시도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 일기에 어떤 답장의 일기를 쓰셨을까? 선생님 역시도 아이들처럼 자기 마음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정장을 입지 않는 이유라든지, 급식시간에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단조로움이라든지, 야외학습 시간에 혼자서 빵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쏟아 부어야 하는지 등, 선생님 역시도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는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고 있다.

"형아한테 엄마가 바지를 사 주었다. 청바지였는데 형아가 한 번 입어보고 낀다고 했다. 그러다 엄마가 고무줄바지라고 말하니까 다시 한 번 입어보고 좋다고 했다. 그 다음에 형아가 '나중에도 이런 바지 사 줘.'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사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엄마가 더 좋은 걸 사 준다고 했다. 나도 그런 고무줄바지가 있었으면 좋겠다."(128쪽)

"형아는 6학년 졸업생
나는 1학년 입학생

형아가 쓰는 것은 샤프
내가 쓰는 것은 연필

형아가 먹는 것은 알약
내가 먹는 것은 물약

형아가 하는 것은 공부
내가 안 하는 것도 공부

형아가 젤 좋아하는 사람은 나
내가 젤 좋아하는 사람은 형아

정 붙이기 힘든 세상에 '형제'처럼 다정한 말도 없다. 형편없는 요즘 세상에 형 편은 동생뿐이다."(130쪽)

'형편없는 요즘 세상에 형 편은 동생뿐이다.'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마치 이외수가 '나쁜 놈은 나뿐인 놈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요즘은 한 자녀만 낳아 기르는 세상이고, 또 형제가 없어서 자기 고립감에 휩쌓여 있는 세상이지 않던가.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나 수용성이 상실되고 있는 때다.

그런데 위의 일기장에서 보듯이, 두 형제가 집에서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놓고 다투고 있고, 밖에서는 서로를 위해 세상에 둘도 없는 동료로 산다고 하니, 그 아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환히 알 수 있다. 그거야말로 부모보다도 더 많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는 선생님들의 따뜻한 마음이자 또 다른 고충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 하나하나 독특한 마음들을 드러내고 있는 이 일기장, 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 선생님의 진솔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일기장. 그만큼 이 일기장은 너무 솔직하고 너무 따뜻한 일기장이라서 좋다. 이 책 뒷머리에 나와 있는 '아이와 함께 쓰는 일기'에 대한 일깨움은 가슴에 더욱더 와 닿는다. 자라자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문현식 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2년 5월, 224쪽, 1만2000원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문현식 지음,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2012)


태그:#일기, #문현식 ,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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