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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회자하는 요즘에 지난 반백 년 동안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세상의 모진 풍파를 함께 겪어온 '늙은' 며느리가 뭇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주인공은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 한재형(76) 할머니. 한 할머니는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인 1962년 추운 겨울, 꽃다운 나이에 남편 김현상(77)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한 할머니는 결혼 후 일찌감치 홀로된 시어머니 김창분(99) 할머니를 모시고, 시집살이를 시작했었다.

지금은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지만 젊은 시절에는 서슬이 시퍼렇던 시어머니 곁에서 며느리는 빠듯한 살림으로 아들 둘, 딸 둘을 키워내고, 농사일까지 해냈다.

지난 50여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며느리 한재형(76) 할머니와 시어머니 김창분(99) 할머니.
 지난 50여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며느리 한재형(76) 할머니와 시어머니 김창분(99) 할머니.
ⓒ 김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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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집안일과 바깥 일에 파묻혀 몸이 고달팠지만, 한결같은 순박한 효심과 정성으로 시어머니의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항상 건강과 기분을 살피며 때론 딸처럼, 때론 친구처럼 시어머니를 모시면서도 여느 부잣집처럼 비싼 옷도, 좋은 음식도 자주 대접하지 못하는 스스로 원망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50년이나 흘렀고, 며느리도 어느새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 며느리는 늙어서도 굽디굽은 자신의 허리는 아랑곳없이 손수 시어머니가 드실 밥상을 차린다. 또 거의 매일 간식거리를 챙겨서 시어머니를 마을 경로당까지 모신다.

지난 3월에는 자식과 손자, 증손녀까지 4대가 모여서 아흔여덟 번째 생신을 맞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홍성 남당리에서 조촐한 잔치도 마련했다. 반백 년을 동행한 백발의 고부 앞에서 "시골에 사는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긴 이름을 가진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서울 며느리에 대한 씁쓸한 농담은 그저 헛소리로 들릴 뿐이다.

31살에 남편을 앞세운 기구한 팔자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홀몸으로 억척스럽게 5남매를 키워낸 99살 시어머니. 그 곁에서 묵묵히 시어머니를 봉양한 76살 며느리. 그녀들의 삶을 보니, 고단한 한평생을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가 보였다.

자신도 시봉을 받을 나이에 시어머니를 봉양하기가 버거울 법도 하다. 하지만 틈틈이 동네 어르신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명절이나 김장철에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과 음식을 나누는 등 웃어른 공경히 남달라 이웃의 칭송이 자자하다.

대동리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며느리가 뒷바라지를 잘해서 시어머니가 오래 사시는 것이라"며 "진짜 신문에 날 일"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수줍은 며느리 한 할머니는 "호강도 못 해 드리고, 특별하게 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진지도 잘 드시고 건강하셔서 너무 고맙고, 죄송스럽다"며 "앞으로 어머니가 건강하게 식구들과 함께 오래오래 사시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옛사람이 아니랄까 애정 표현이나 칭찬이 낯선 시어머니는 "자식덜 결혼시키구 주굴라구 했는디…, (자식들 결혼시키고 죽으려고 했는데….) 증손주가 스무 명은 되는디 아작도 안 주거써. (증존주가 스무 명이 되는데 아직도 안 죽었다.) 허는 일두 읍시 삼시 시끼 밥만 축내니 어떠커먼 조탸. (하는 일 없이 세 끼니 밥만 축내니….) 식구덜 고생 안시키고 슬그머니 가는 게 소원인디…."라는 애꿎은 말로 대신했다.

무정한 말씨와 달리 시어머니는 단 하루도 다른 집에서는 몸을 눕히지 않는다.

한편, 이총배 덕산면장은 지난 5월 8일 '제40회 어버이날'을 맞아 낙상리 효자웨딩홀에서 열린 경로잔치에서 "지극한 효성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경로 효친의 미풍양속을 선양해 귀감이 된다"며 한 할머니에게 표창을 시상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고부, #며느리, #시어머니, #어버이날,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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