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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남수문이 복원되었다
▲ 남수문 화성 남수문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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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에서 중요한 시설물 중 하나는 아마도 북수문인 화홍문과 더불어 물길을 지켜낼 수 있는 남수문이었을 것이다. 남수문은 1846년의 대홍수 때 부서진 것을 2년 후 다시 지었는데, 1922년의 대홍수 때 또 다시 떠내려갔다. 1910년대의 옛 사진을 보면 일부 부서진 남수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남수문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북수문인 화홍문이 일곱 개의 무지개형 수문을 가진 데 비해, 남수문은 아홉 개의 무지개 형태인 아치형 수문을 냈다. 가히 그 모습만으로도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구간수문(九間水門)'이다. 그런데 왜 아홉 개의 수문을 낸 것일까?

아홉 개의 문 낸 남수문, 왕권 상징?

추측건대, 남수문에 아홉 개의 문을 낸 것은 왕권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9는 양수 중에서 가장 큰 수이며, 꽉 찬 것을 의미한다. 왕의 복장 중 가장 품격이 높은 것이 '구장복'인 것을 보면 남수문은 왕권을 상징했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북수문은 상류의 물이 유입되는 곳이지만, 남수문은 팔달산 등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합쳐지는 곳이기 때문에, 그만큼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중요했을 것이다.

성안에서 본 남수문. 아홉개의 수문이 있다
▲ 성안에서 본 남수문 성안에서 본 남수문. 아홉개의 수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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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에 대비해 물이 넘치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배수시설을 마련하였다
▲ 배수시설 홍수에 대비해 물이 넘치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배수시설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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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북수문과 남수문은 1794년 2월 28일에 장안문, 팔달문에 각각 터를 닦기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남북 수문의 터는 동서로 38보, 남북으로 51보를 파내서 터를 닦고 땅을 14척 깊이로 판다. 모래에 진흙을 섞어서 다져서 쌓은 후 전을 2중으로 깔았다. 다리의 안팎에도 넓게 고기비늘처럼 전을 깔고 그 끝에 장대석을 물리어 굳혔다.'

난공불락의 설치조형물 남수문

남수문은 화강석으로 수문을 쌓고 쇠살문을 달았으며, 수문 위의 구멍을 통해 쇠사슬로 수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9개의 수문 구간 위에는 다리의 넓이를 셋으로 나누어 하나에는 사람을 통행하게 하고, 다리의 길이인 동서 약 28.6m에 남북 3.6m의 검은색 벽돌로 꾸민 '포사(舖舍)'를 길게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포사에는 세 개의 문을 내어 짧은 시간에 많은 군사들이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여장을 검은색 벽돌로 쌓아 57개의 총안을 내었다. 이 총포의 구멍이 수문을 향해 공격을 하는 적을 향하고 있으니,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것이다. 여장 역시 구간수문의 아치형에 어울리게 무지개형으로 조성했다.

남수문은 보를 만들고 그 위에 세웠다
▲ 보 남수문은 보를 만들고 그 위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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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남수문, 과연 복원일까?

남수문이 사라졌던 화성에 남수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는 9일 일반인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남수문의 공사비는 3만446냥7전9푼이다. 동문인 창룡문과 서문인 화서문의 공사비가 1만2000냥 내지 1만3000냥인 것에 견주면 두 배가 넘게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간 이유는 수문이라는 특성상 견고하게 바닥을 다져야 했고, 많은 돌과 여장을 두른 벽돌을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복원한 남수문의 공사비는 162억 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복원된 남수문이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남수문과는 다르다. 한 마디로 '복원'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화성사업소 공사관계자는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아 공사를 했다"고 했다.

천천히 살펴보면, 남수문의 아치부터 다리를 지탱하는 교각의 형태 등이 전혀 다르다.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남수문의 교각을 보면, 물살의 흐름에 지탱할 수 있도록 5각으로 돼 있으며 교각과 교각 사이는 공간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이번에 복원된 남수문의 교각은 통으로 돼 있다. 그리고 <화성성역의궤>에도 없던 수문 앞에 보를 만들어 전혀 다른 모습의 남수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게 윗부분인 여장만 옛 것과 동일할 뿐이다.

그 이유에 대해 화성사업소 담당자는 '홍수에 대비해서'라는 대답으로 일축했다. <화성성역의궤>와 같이 복원을 할 경우 장마 때 떠내려 오는 나뭇가지 등 부유물들이 교각을 쳐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물길은 통하고 부유물만 걸러내는 시설로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

위는 화성성역의궤에 설명한 남수문의 모습이다. 아래는 이번에 많은 예산을 들여 복원한 남수문이다. 전혀 다른 모습의 남수문. 과연 복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남수문의 비교 위는 화성성역의궤에 설명한 남수문의 모습이다. 아래는 이번에 많은 예산을 들여 복원한 남수문이다. 전혀 다른 모습의 남수문. 과연 복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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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번이나 홍수에 남수문이 떠내려가는 아픔을 당했다. 홍수에 대비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화성은 <화성성역의궤>에 따른 복원이었어야 맞다. 물길을 양편으로 돌려 관리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현재는 건축공법이 발달돼 있어 옛 것처럼 복원하더라도 얼마든지 홍수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도 제 모습을 잃은 남수문을 '복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남수문 구간을 복원하는 데만 162억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해괴한 형태의 남수문을 만들었다.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리포트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료는 염상균의 '남수문을 아시나요?'를 참조했습니다.



태그:#화성 남수문, #복원, #보, #배수시설, #화성성역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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