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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달 24일 충남공공일반노조와 충남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 등이 충남도의회 현관에서 추경예산안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충남공공일반노조와 충남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 등이 충남도의회 현관에서 추경예산안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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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충남도의회는 올해 첫 추경예산안 3041억 원 중 11.4%인 346억 원을 삭감하기로 의결했다. 그나마 지난 달 예산안 심의 때 삭감했던 821억 원에 비해 절반가량(441억 원)이 회생된 액수다.

도의회가 이처럼 큰 규모의 예산을 삭감한 것은 집행부가 본예산에 의원재량사업비를 반영하지 않는 데 따른 보복이었다. 도의원재량사업비는 예산항목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일명 시책추진보전금이나 소규모숙원사업비로 분류돼 그동안 충남도의원 1인당 7억 원 씩 45명 모두에게 균일하게 예산을 배정해 왔다.

올해 예산에도 본예산을 통해 1인당 5억 원씩을 반영했지만 올해 초 행안부가 감사원 감사결과를 근거로 각 지방자치단체에 의원사업비 폐기를 지시, 도의원 1인당 추가분 2억 원씩을 배정하지 않자 보복성 예산심의를 벌인 것이다.

도의회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와 '집행부 길들이기 식' 의정 운영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 9대 충남도의회 개원식 (2010년 7월, 자료사진)
 제 9대 충남도의회 개원식 (2010년 7월, 자료사진)
ⓒ 충남도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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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지난 해 11월, 충남도의회(의장 유병기)가 본회의를 열고 올해 의정비를 예년보다 3.4%(연간 180만원) 올린 5424만원으로 올리는 안을 기습 처리했다. 3.4% 인상은 도민들의 뜻과 상반된 것이었다. 의정비심의위원회 도민 여론조사 결과는 2.3% 인상안(120만 원)에 대해서도 '높다'는 응답이 대부분(66.7%) 이었다. 그런데도 도의회는 의정비심의위원회에 3.4% 인상안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했다.

결과는? 행정안전부가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지 않으면 위법'이라고 지적하며 재의를 요청했다. '의정비인상 금액을 결정하면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지방자치법 시행령 위반'이라는 지적이었다. 도의회는 같은 해 12월, 의정비를 다시 2.1%(108만원) 올린 5352만 원으로 재조정했다. 이는 행안부가 기준액으로 정한 4873만원보다 9.8% 높은 금액이다.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충남운동본부' 소속 회원 30여명이 충남도의회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충남운동본부' 소속 회원 30여명이 충남도의회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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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


지난 해 3월, 충남도의회 농수산경제위원회는 도의원 29명이 상정한 '친환경 무상급식조례 개정안' 심의를 보류했다.

해당 조례개정안의 골자는 급식지원대상을 ▲기존 보육시설 및 유치원, 초중고교에서 지역아동센터까지 확대하고 지역농산물(로컬푸드)의 보급 확대를 위해 기존 현금지원방식에서 계약 재배를 통한 현물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친환경 농산물과 관련해서는 ▲지역 친환경쌀 또는 지역브랜드쌀을 우선 공급하고 부족한 농산물은 ▲지방자치단체장이 품질을 인정하는 지역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가 안건 심의를 보류하기로 한 이유는 "무상급식 업무가 행정자치위원회 소관인 기획관리실(교육법무담당)로 업무 분장돼 있어 우리 상임위원회 직무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의회 의장은 직권으로 해당 의안 심의를 농수산경제위원회에 회부했었다. 때문에 당시 관련단체에서는 "조례안을 잘 만들어 시행하려하기보다는 안건 처리를 회피할 핑곗거리를 찾는 듯 한 인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이 조례안은 지난 3월 도의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발의된 지 1년 4개월만이었다.

충남 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충남고교평준화 주민조례제정운동본부'는  17일 오전 11시 충남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도교육청을 비난하며 항의농성에 돌입했다.
 충남 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충남고교평준화 주민조례제정운동본부'는 17일 오전 11시 충남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도교육청을 비난하며 항의농성에 돌입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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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3.

지난 2010년 12월. 충남도의회 자유선진당 소속 의원들이 안희정 충남지사의 도민과의 소통행정을 위한 '참여와 소통위원회 조례안'을 본회의에서 부결했다. 당시 충남도는 '참여와 소통위원회 조례안'은 도민들을 참여시켜 일선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대로 수렴, 도정에 반영하기 위한 실효성 높은 조례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부결한 당시 자유선진당 소속 도의원들은 "'참여와 소통위원회 조례안'이 기존위원회 기능과 중복돼 옥상옥이며 (도민들의 도정 참여는) 의회의 권한에 대한 도전"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 조례안은 새로 설치한 것이 아닌 기존에 운영해 오고 있는 도민평가단을 지역별, 성별로 확대하는 것이어서 기능이 중복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에 직면했다. 때문에 도민들의 행정참여 기회 확대를 의회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한 것은 오히려 도민들에 대한 권리침해로 받아들여졌다.

충남도의회 일부 자유선진당 소속 도의원들은 또 같은 해 10월 충남도가 도내 300여 명의 각계각층 전문가 및 일반 도민 등을 초청, 민선 5기 전략과제 선정을 위한 충남도민정상회의를 개최한 것에 대해서도 "도의회가 도민들과 직접 소통한 것은 의회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사례 4.


지난 해 12월, 충남도의회는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서울을 빼고 가장 늦게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집행부가 제출한 도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을 심의하면서, 위원 수를 100명에서 40명으로 크게 줄였다. 위원 선정 절차에서 '희망 주민 공개모집' 조항을 삭제했다. 또 당초 분과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설치, 예산학교 설치·운영도 없앴다.

특히 도민참여예산제의 핵심인 위원회 운영과 예산교육 경비 7800만 원 가운데 26%인 2000만 원을 줄였다. 도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의 핵심인 '주민 의견수렴'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게 한 데다 관련 예산마저 크게 줄인 것이다.

#사례 5.

30일 오후 롯데 부여리조트에서 충남도의회의원, 충남 도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타운홀 미팅방식으로 '도민과의 대화'를 갖고 있다.
 30일 오후 롯데 부여리조트에서 충남도의회의원, 충남 도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타운홀 미팅방식으로 '도민과의 대화'를 갖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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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소속 충남도의원들은 지난 2010년 말, 안희정 충남지사의 도정운영에 대해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 18명(선진당 14명·한나라당 4명)은 기자회견을 통해 '도민입장을 반영한 도정현안 추진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뭔가 불안한 충남' '뭔가 믿음이 안 가는 충남' '뭔가 위태로운 충남'이 아닌 믿음이 가는 도정을 펼치기를 강력히 권고한다"고 밝혔다.

야당 도의원들이 '뭔가 믿음이 안 가는' 이유로 내세운 이유는 한 마디로 중앙정부와 각을 세우기보다 잘 설득해 도정현안 해결을 위한 예산확보를 해달라는 얘기다. 이들은 우선 4대강 사업과 관련 "안 지사는 정치적 보폭을 늘리기 위한 행보라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중앙정부와의 소모전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서해안 유류피해대책과 관련해서는 "사고 낸 삼성중공업 책임자를 직접 만나는 등 대화와 소통을 위한 적극적인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다"며 "삼성중공업과 중앙정부를 적극적인 자세로 설득해 하루빨리 나머지 배상금이 지급되도록 앞장서 달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충남도가 건의한 '4대강 재검토특별위원회'가 3개월 동안 작성한 방대한 양의 조사 보고서와 대안을 무시했다. '유류오염사고 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와 관련해서도 충남도는 정부가 '2008년 한 차례의 소집 이후 단 한 번도 소집하지 않았다'며 소극적 태도를 비판했다.

하지만 충남도의회는 중앙정부의 이같은 소극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오히려  충남도에 정부와 각을 세우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소통부재' 말하는 언론 ...원칙없는 타협 원하나?

집행부와 도의회 간 논란이 일 때마다 상당수 언론은 매번 안 지사의 '소통부재'를 꼬집었다. 도의원재량사업비문제에 대해서도 의회와 사전 교감이나 소통이 미진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충남지역 국회의원 초청 '도정 간담회'에서는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도의회와의 관계개선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하지만 의원 1인당 예산 7억 원의 돈을 재량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할까 말까를 놓고 의회와 집행부가 소통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안 지사의 방침은 아직까지는 단호하다. 안 지사는 기자브리핑을 통해  "새로운 관행, 그리고 예산 심의와 편성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번 진통을 개선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의원재량사업비 지출에 대한 새로운 규칙과 틀을 만들고 이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안 지사가 끝까지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의욕을 갖고 추진하다 주변 여론과 환경에 밀려 용두사미가 된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지방재정을 왜곡시키고 도민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불나방' 같은 도의회를 바로잡는 일은 도민들의 몫이다. 이기주의를 근간으로 의정활동을 벌이는 충남도의원들을 방치하는 것은 지방자치 위기를 부채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그:#충남도의회, #충남도, #안희정 , #도의원재량사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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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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