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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체포영장이 청구된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31일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체포영장이 청구된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31일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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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마저 절묘했다. 오후 3시. 31일 전격적인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검찰 자진 출두는 검찰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검찰 측과 사전 조율이나 약속도 전혀 없었던 분위기다. 박 원내대표는 불과 한 시간 반 정도를 앞두고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출두를 알렸다.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 관계자는 '사전 조율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조율이 아니라 통보였다"며 "오후에 갑자기 연락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출두 표준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이상득 전 의원이 그랬고, 정두언 의원이 그랬다. 오전부터 속보가 뜨고 전국에 생중계되어 하루 종일 뉴스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스스로 날짜를 택했고, 스스로 시간을 정했다.

게다가 박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로 넘어온 체포동의요구서를 통해 검찰이 자신에 대해 어떤 혐의점을 가지고 있는지 이미 파악하고 출두했다. 반면 검찰 측은 박 원내대표에 대한 조사가 빨라야 8월 3일에야 가능하다고 예상하며 느긋하게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검찰의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 어떤 수사보다 국민 여론이 중요한 정치권 관련 수사에서, 검찰이 불러서 억지로 끌려가듯 출두하는 모양새와, 자기 발로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당당히 출두하는 모양새는, 큰 차이가 있다. 어차피 법리적으로는 똑같이 기소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국회의 체포동의안 처리만 바라보다 허 찔린 검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왼쪽)과 서울중앙지검 청사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왼쪽)과 서울중앙지검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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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출두에 직전까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합동수사단는 부랴부랴 박 원내대표 조사를 준비했다. 조사실은 이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조사를 받았던 대검 11층 1123호. 이미 세 차례나 소환 통보를 했기 때문에 조사 자체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완벽한 준비태세를 갖추기는 힘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질이다. 검찰의 예상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졌다면 대질 요구에 대비해서 임석(구속기소)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이나 오문철(구속기소) 보해저축은행 대표를 미리 대기시켰을 것이다. 체포영장에 따르면, 박 원내대표는 2007년 가을과 2008년 3월 임 회장으로부터 각각 3천만 원과 2천만 원을, 2010년 6월 오 대표로부터 3천만 원 등 모두 8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단 관계자는 이날 오후 "(박 원내대표가) 결국 나오기는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정된 시각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며 "대질은 지금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 나올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측은 의도했던 스케줄이 아니어서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혐의 입증에는 문제 없다는 분위기다. 검찰은 영장에 최소한의 사실만 기재한 것이라며 조사할게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가 혐의를 부인한다 해도 "혐의 입증은 검찰 몫"이라며 "우리가 보는 것과 박 대표가 보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를 받고 사실에 대해 밝히겠다"면서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대검 청사로 들어간 만큼, 자신에 대한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내대표는 약 10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후 1일 오전 1시 10분경 청사를 나왔다. 구속된 이상득 전 의원이 조사받았던 시간은 약 16시간이었고, 정두언 의원은 14시간이었다.

10시간 만에 귀가... 이상득-정두언보다 짧아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1일 새벽 귀가하고 있다.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1일 새벽 귀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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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박 원내대표는 피곤한 표정이었다.

- 지금 심경은?
"황당한 의혹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했기 때문에 검찰에서도 잘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 저축은행에서 돈 받은 혐의 사실을 여전히 부인하는가.
"당연히 터무니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있는 것 그대로 이야기했다."

- 재소환 통보받았나.
"받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80여 명의 의원과 당직자, 지지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대검을 빠져나갔다. 이 자리에는 박영선, 송호창, 박범계, 이춘석, 은수미 의원 등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30여 명이 함께했다.

한편, 이날 박 원내대표의 검찰 출두로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안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72시간 안에 본회의 처리를 거칠 수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표결까지 가는 것은 여야 모두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의 자율성을 살려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태그:#박지원, #검찰, #저축은행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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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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