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한풀 꺾였으나 여전히 무더웠던 지난 9일 오후 3시 인천국제공항은 '피서' 온 노인들이 가득했다. 공항철도 개찰구와 연결되는 공항 입구부터 터미널 벤치와 창가, 화단 등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대부분 등을 기대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일부 노인들은 아예 벤치에 드러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이 노인들은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 더위를 피해 공항철도를 타고 온 피서객들이었다.
"너무 더워 공항으로 피서왔어... 노인들 사이에선 유명해" 경기도 수원에서 온 조성한(가명, 71)씨는 "날씨가 너무 더워 이곳으로 휴가를 왔다"며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 인천공항이 최고로 알아주는 여름 피서지"라고 말했다. 자식들이 쉬는 데 방해가 될까봐 가족 여행에 따라 나서지 않았다는 조씨는 날씨는 더운데 집에 혼자 있기도 그렇고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어 인천공항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일단 지하철이 공짜니까 마음 편히 올 수 있어. 게다가 인천으로 넘어오면서 바다도 한 번 건너고, 한두어 시간 기차 타고 오는 게 마치 여행가는 것 같아. 젊은 사람들이야 언제든 여행 갈 수 있지만 늙은이들은 어디 여행 혼자 다니기도 힘들고, 피서를 가고 싶어도 잘 못가니까… 여기라도 시원하게 쉬러 오는 거지 뭐." 이희준(70, 서울 방배동)씨 역시 "평소 탑골공원에 자주 가지만 요즘 더위에는 있을 수가 없어 공항에 매일 온다"며 "지금 노인들 사이에 최고 인기 장소는 인천공항"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집에 있으면 할 일도 없고 너무 적적하다"면서 "이렇게 여행 오는 기분으로 구경도 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항에서 열리는 공연을 관람하려고 일부러 찾는 노인들도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전통문화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공연을 365일 제공하고 있다.
동네 주민 3명과 함께 왔다는 최금순(80, 서울 영등포구)씨는 "요즘 노인교실이 방학을 해 할 일도 없고 너무 더워서 주민들과 함께 일주일에 서너 번 공항에 온다"며 "시원하고 볼거리도 많아 좋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열리는 공연을 즐겨 본다는 최씨는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오후 늦게까지 있는 날도 많다"며 "집에서 음식을 싸오거나 공항 내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공항 이용객 불편" vs. "공공장소라 문제 없어" 이처럼 노인들이 인천공항으로 몰리는 현상에 대해 공항 이용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켈시 에반스(여, 23)씨는 "공항이 여행객이 아닌 노인으로 붐비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라며 "시카고의 경우 도심에서 공항까지 거리가 멀어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찾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아무개(여, 30대)씨는 "비행기 탑승을 위해 대기 중이었는데 근처 의자에 빈자리가 없어 서 있는 채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노인들이 갈 곳이 없어 공항에 몰리는 건 이해하지만 정작 주가 되어야 할 공항 이용객이 불편을 겪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며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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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이 몰린 공항의 모습을 '탑공공원'이라고 한 트위터리안은 표현했다. |
| ⓒ 박명본 | 관련사진보기 |
한 트위터리안(@neverd*****)도 자신의 트위터에 "노인복지도 좋지만 공항은 승객이 쉴 공간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라며 공항에 노인이 몰리는 현상을 '인천공항의 탑골공원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공항 경비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노인 분들이 오셔서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의자에서 쉬었다 갈 뿐인데 이걸 나쁘게 보거나 제지할 이유도 없다"며 "인천공항은 이용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공장소"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박명본·김희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