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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대웅전 옆에 서 있는 보물 제983호인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칠장사 대웅전 옆에 서 있는 보물 제983호인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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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에 소재한 칠장사는 국보와 보물을 소유한 고찰이다. 이 칠장사 대웅전 옆에는 보물 제983호인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이 서 있다. 이 입상은 원래 '봉업사지'에 있던 것을 죽산중학교로 옮기고, 그 뒤 다시 현재의 칠장사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인 636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고찰이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인 칠장사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이 되어있기도 하다. 칠장사가 위치한 칠현산은 원래 '아미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이 산 아래 '아란야'를 짓고 기도하던 차에, 선량치 못한 7인이 찾아와 교화되었다고 하여 칠현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뛰어난 조형미 보인 고려 초기 작품

얼굴은 많이 마모가 되어서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다. 뒤편의 광배에는 작은 화불을 새겨넣었다
▲ 얼굴 얼굴은 많이 마모가 되어서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다. 뒤편의 광배에는 작은 화불을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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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어깨에 걸친 법의는 어깨를 감싸 며 밑으로 흘러내린다. 옷 주름은 여러 겹의 U자형 모양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 법의 양 어깨에 걸친 법의는 어깨를 감싸 며 밑으로 흘러내린다. 옷 주름은 여러 겹의 U자형 모양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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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보물 제983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여래입상은 불상과 광배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불상의 높이는 1.57m이고 총 높이는 1.98m이다. 현재 대웅전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석불입상은 눈과 코, 입은 심하게 닳아 제 모습을 판가름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얼굴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비교적 식별이 가능하다. 양어깨에 걸친 법의는 어깨를 감싸며 밑으로 흘러내린다. 옷 주름은 여러 겹의 U자형 모양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치마가 양다리 사이에서 지그재그 모양을 이루고 있다.

석불의 형태는 비교적 비례가 원만한 편이며, 전체적인 신체표현에서 손이 다소 큰 편이다. 하지만 머리와 어깨의 너비 등의 신체비례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불상의 뒷면에는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를 조각하였는데, 두광과 신광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거신광으로 표현하였다.

받침돌은 상하로 구분되어 있다
▲ 받침돌 받침돌은 상하로 구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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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특징을 보이는 봉업사지 석불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면 중앙 문화재와 지역 문화재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앙의 기능이 뛰어난 석공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석불이나 탑 등은 그 화려함이나 섬세한 조각이 뛰어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비해 지방의 석공들이 조성한 석불이나 탑 등은 나름대로 지역적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 7일(금), 안성 답사에서 만난 칠장사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은 당당한 어깨와 발달된 신체표현 그리고 U자형의 옷 주름 등과 그 밖의 조각기법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안성지방 인근의 불상양식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 지방은 그 나름의 기능공들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조성하기 때문에, 그런 점을 잘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래 받침돌의 문양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 문양 아래 받침돌의 문양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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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돌의 표현이 두드러져

받침돌은 아래받침돌과 위바침돌로 구분이 되어있다. 위 받침돌은 둥글게 조성하고 조각을 하였는데, 심하게 마모가 되어 조각을 잘 알아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아래받침돌의 문양으로 볼 때 위받침돌에는 꽃과 구름 등을 새겨 넣었을 것 같다. 또 이 위받침돌이 심하게 훼손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정확지가 않다.

아래받침돌은 문양이 그대로 살아있다. 밑으로 된 넓은 앙련을 새기고 그 안에 꽃을 새겨 넣었다. 이렇게 연꽃잎에 꽃을 사긴 것은 흔히 볼 수 만날 수가 없다. 아래받침돌의 윗부분은 돌출을 시켜 그곳에도 8장의 꽃잎을 가진 꽃을 돌아가면서 조각하였다. 이 받침돌 하나만 보아도 당시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이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제자리를 떠나 안성 칠장사 대웅전 옆에 서 있는 봉업사지 석불입상.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이런저런 이유로 제자리를 떠났다.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속으로 기원을 한다. 앞으로는 이렇게 제자리를 떠나는 문화재들이 없게 해달라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보물, #칠장사,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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