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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투표시간 연장을 두고 말이 많다. 생계 때문에 투표 못하는 이들이 많으니 투표 시간을 연장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을 새누리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충돌'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율을 높이자는 원칙적인 주장을 반대하는 일이니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속이 빤한 이유를 제외하고는 마땅히 댈 핑계거리가 없으니 스텝이 꼬일 수밖에. 투표시간을 연장해 투표율이 높아지면 불리할 게 뻔한데, 대놓고 "투표율이 낮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새누리당의 난감함이라니.

대의 민주주의에서 투표율은 매우 중요하다
▲ 연령대별 선거인수/투표자수 비율 비교 대의 민주주의에서 투표율은 매우 중요하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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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못하는 게 '성의 문제'라는 새누리당

투표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새누리당의 견해를 들어보자. 우선 그들은 투표를 못하는 이들을 가리켜 "성의가 부족하다"고 훈계한다. 투표일이 임시공휴일이고 투표시간도 06시부터 18시까지 장장 12시간이나 되는데, 투표를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권자 개인이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위해 굳이 투표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많은 사람이 투표 못하는 원인이 단순히 성의 부족 때문일까?

새누리당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현실감 결여이다. 적지 않은 직장인들은 투표 당일에도 출근을 한다. 비록 임시공휴일이라고는 하지만 정해진 주말에도 눈치를 보고, 정해진 퇴근 시간에도 눈치를 보는 게 많은 직장인의 현실이다. 직장 상사가 투표하라며 1시간이라도 일찍 끝내주면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특히 대선은 항상 12월 중순쯤인데 이때는 적지 않은 회사들이 연말 특수를 맞아 한창 바쁠 때다. 시간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는 이들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공휴일에도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 많은 비정규직은 법정 공휴일에도 일을 한다. 임시 공휴일에는 그 사정이 더 딱할 수밖에 없다.

당장 대선 당일 20시 쯤 동네를 둘러보라. 20대 젊은이들은 등록금을 번다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것이며, 택배 기사들은 그 늦은 시간까지 물건을 나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투표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면 새벽에 일찍 나와서 투표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늦게까지 하루 일당을 벌어야 하는 이들이 투표하려고 새벽 일찍 일어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아침밥 대신 꿀같은 새벽잠을 택하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문제는 이렇게 시간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는 이들이, 투표의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정부 정책은 사회의 약한 고리에 위치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투표를 못하는 이들은 대부분 바로 그 고리에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정부는 누구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특히 위와 같은 사람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20~30대의 투표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연령대별 투표율 20~30대의 투표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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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투표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는 바로 비용 문제이다.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하면 그만큼 인건비가 추가로 들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100억 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4대강에 22조 원이나 쏟아부은 이들이 100억 원 앞에서 이렇게 소심해(?)지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100억 원은 작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그 비용을 들여 투표에 좀 더 많은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면 오히려 득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적 갈등은 필연이다. 100억 원을 들여 더 많은 민의를 듣고 갈등의 폭을 줄일 수 있다면, 이보다 효율적인 일도 없다. 게다가 새누리당도 국민대통합을 시대정신이라 외치고 있지 않는가.

비용도 아끼고 투표율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혹자들은 이와 관련해 호주의 선거제도를 주시한다. 호주의 경우 주요 선거에서 평균 95%에 가까운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벌금을 부여하는 강제투표제 덕분인데, 문제는 국가가 개인의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는 우리에게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분단 탓에 정치 지형이 왜곡된 면이 있고, 정치권이 국민 의사를 잘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찍을 사람이 없어 안 찍는데, 벌금을 내라면 강한 반발이 일 수 있다.

그럼 투표시간을 변경하는 것은 어떨까? 즉 기존 06시에서 18시까지의 선거 시간을 08시에서 20시까지로 변경하는 것이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투표를 할 수 없지만, 대신 퇴근하는 많은 이들은 부담없이 투표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4.11총선의 경우 07시까지 투표율이 2.3%, 07시에서 09시까지의 투표율이 6.6%인 반면, 16시에서 17시까지 투표율은 3.5% 17시에서 18시까지의 투표율은 4.9%를 기록했다. 투표시간 마지막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려 줄을 서는 것을 볼 때 투표시간을 뒤로 옮긴다면 투표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투표율은 대의민주주의 건전성의 척도이다. 부디 정치권이 투표율 고양을 위해 협의하길 바란다. 투표하고 싶은데 먹고 살기 위해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비극'은 이제 없어야 하지 않겠나.


태그:#투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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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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