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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에서의 딸입니다.
 지난 여름,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에서의 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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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고백하는데... 사실 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아빠 이름이 아빤 줄 알았다~"

어제 밤, 물 마시려 냉장고를 열던 중에 중학교 2학년 딸이 느닷없이 고백했습니다. 딸은 고백 후 한바탕 웃었습니다. 저는 황당했습니다. 아빠 이름이 임현철이 아니고 아빠라니….

그렇지만 딸에게 속마음을 숨긴 채 "그랬어?"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부지간에도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게 좋다는 의견들이 있나 봅니다. 잠시 김춘수님의 <꽃> 한 수 읊지요.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는 누나가 진짜 마법사인 줄 알았어!"

딸은 아직도 이런 잠옷을 입고 잡니다.
 딸은 아직도 이런 잠옷을 입고 잡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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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말을 듣고 있던 중학교 1학년 아들, 이때다 싶었는지 고백 대열에 동참하고 나섰습니다. 

"누나. 나도 누나한테 고백할 게 있어. 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누나가 진짜 마법사인 줄 알았다~"

헉. 아이들이 쌍으로 황당한 말을 해댔습니다. 누나를 마법사로 알았다니 참으로 어이없이 순진한 아들이었습니다. 딸의 반응이 즉각 나타났습니다.

"진짜? 너 너무 재밌다. 하하하하~"

딸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급기야는 거실 바닥에 쓰러지며 웃었습니다. 누나 반응이 우스웠는지 아들은 다 못한 말을 마저 했습니다.

"내가 그때 왜 누나 말을 믿었는지 이해가 안 가."

딸은 "진짜? 아이고 배야~" 하며 배꼽 잡고 구르며 눈물까지 뺐습니다. 웃다가 우는 딸의 모습에 저까지 덩달아 웃음이 나왔습니다. 딸은 그러면서도 말을 이었습니다.

"누나도 그때 내가 진짜 마법사인 줄 알았어. 난 아직도 마법사야."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마법사를 꿈꿨던 자유로운 영혼의 딸은 꽉 막힌 교육의 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들, 누나가 언제 마법사라 그런 거야?"

이렇게 개구쟁이였던 아들이 그렇게 순진했을 줄이야...
 이렇게 개구쟁이였던 아들이 그렇게 순진했을 줄이야...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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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누나가 언제 마법사라 그런 거야?"
"다섯 살 땐가 누나랑 박스에서 같이 잘 때 그랬어."

이렇게까지 일년 터울 동생을 농락할 줄이야. 그럼에도 어려서부터 동화책을 끼고 살았던 딸의 농간이 갑자기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아들. 그걸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믿었다는 거야?"
"누나가 상상력이 풍부하잖아."

딸은 아직까지 해리포터 책을 끼고 삽니다. 상상력이 너무 재미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딸은 공부보다 마음껏 상상력을 키워주는 게 부모 역할 같습니다.

"누나가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말랬다고 지금껏 말 안 한 거야?"
"우리만의 비밀이었어.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말하면 누나가 마법사가 안 되는 줄 알았거든…."

아이들은 중학생이 된 후 진짜 말 안 듣습니다. 집 청소 한 번 하려면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해야 합니다. 또 가족 여행 가려면 구슬리고 윽박질러야 겨우 갑니다. 사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려 애썼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이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아들, #딸, #잠옷,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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